구입 시기
2019년 9월, 대구에서 처음 롤드페인트를 오픈할 때 구입했다.
책상과의 시간
오전 10시 정도에 출근해 퇴근할 때까지 책상 앞에 앉아 있다. 롤드페인트 업무와 개인 작업이 모두 이 책상에서 이뤄진다.
책상 앞 루틴
출근하자마자 가방을 의자에 걸어둔다. 필요한 물건이 가방에 들어 있기 때문에 곁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 컴퓨터가 부팅되는 시간 동안 따뜻한 차 한 잔을 우리고, 오늘의 할 일을 정리한다. 롤드페인트 업무를 할 땐 이렇게만 준비하면 시작할 수 있는데, 개인 작업에 들어갈 땐 다소 부산스러운 편이다. 작업 동안 들을 음악도 고르고, 간식도 든든하게 먹고, 미뤄둔 일들과 정리 정돈을 한다. 긴 집중 시간을 앞두고 예열이 필요한 듯하다.
몰입하는 주제
일상을 관찰하는 일. 최근에는 일기를 쓰듯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마스킹 테이프를 활용하는 방법을 더 많이 알리기 위해서도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한다.
성장의 원동력
꾸준함. 마스킹 테이프로 하는 작업은 좋아하는 일이자 몸의 고통으로부터 구해 준 ‘약’이다. 하지만 항상 명심하는 건 꾸준히 하되 방법은 바뀌어도 된다는 것. 작업을 하는 이유는 나를 표현하기 위해서다. 이 목적을 이룰 수 있다면 도구는 바뀔 수도 있다.
길게 이어 붙인 마스킹 테이프가 서로 겹쳐 음영을 만들고, 하나의 모양을 이뤄 풍경이 되고, 장면이 된다. 종이 소재인 마스킹 테이프로 그린 그림은 동화적이면서도 포근하다. 채민지 작가가 책상 앞에 뭉근히 앉아 마스킹 테이프를 찢고 자르고 뗐다 붙였다 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만든 그림이다. 그는 국내 유일한 마스킹 테이프 전문점인 ‘롤드페인트’를 운영하며 자신의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일본의 마스킹 테이프 전문 브랜드 MT사에서 아트 콘테스트를 열었는데, 그곳에서 우승을 했어요. 당시 국내에 수입되는 색상이 한정적인 데에 아쉬움을 느끼던 터라 브랜드 담당자에게 농담으로 ‘내가 수입해 판매해도 괜찮으냐?’ 물었고, 브랜드에서 흔쾌히 수락해 가게까지 오픈하게 되었죠.”
2019년 10월,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구에서 작업실 겸 쇼룸을 열었는데 의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예상보다 더 많은 손님이 온 것이다. “정말 감사한 일인데도 막상 작업할 시간이 없으니 정체성에 혼란이 왔어요. 다행히 남편이 함께 운영을 맡아주었고, 지난해에는 직원도 한 명 들어왔어요.” 혼자 운영하던 공간에 3명이 있다 보니 규모에 한계를 느꼈고, 올해 5월 서울로 매장을 이전하게 되었다. “대구에서 더 큰 공간을 구할 수도 있겠지만 방문객의 수가 변하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용기를 내 서울로 진출했어요. 마침 지난해 롤드페인트 운영이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기도 했고요.” 브랜드를 이끌며 여러 번의 기복을 경험했던 그는 지금의 안정감이 영원할 수 없기에, 자발적으로 지역을 옮기는 불안정함을 택하기로 했다.
“공간이 넓어지며 오랫동안 꿈꿔온 진열장을 만들었어요. 색색의 마스킹 테이프가 칸칸이 놓여 있는 모습이 거대한 팔레트 같지 않나요?” 매장의 벽을 가득 채운 진열장에는 물감처럼 다양한 색감과 독특한 그림과 패턴을 담은 마스킹 테이프가 줄지어 담겨 있다. 진열장 옆에 있는 가림막을 열고 들어가면 사무실 겸 작업실이 있다. 채민지 작가는 가게 오픈 시간인 낮 12시가 되기 2시간 전에 출근해 이곳에서 업무를 보고 작업을 한다. “한번 작업을 시작하면 굉장히 몰입하는 편이에요. 여러 번 수정을 하는 편이라 시간도 많이 필요하고요. 이렇게 집중할 수 있어서 마스킹 테이프 작업에 빠진 것 같아요.”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앓던 아토피 때문에 회사까지 그만두게 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을 견디기 위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관심을 두었다. 몸을 긁지 않기 위해 자신의 손을 어딘가에 묶어두고 싶은 심정이었다. “처음엔 캘리그래피를 했어요. 독학으로 공부해 일을 받아 작업을 할 정도가 되었는데요. 건강이 악화된 상황에서 생각과 감정을 글자로 옮겨내는 작업이 쉽지 않았어요. 그때 우연히 눈에 들어온 게 마스킹 테이프였어요.” 손으로 한 줄씩 쭉 찢어 겹쳐 붙였더니 화분 모양이 되는 게 신기했다. 그 뒤로 캘리그래피에 마스킹 테이프를 섞어 작업을 하다가 점차 마스킹 테이프 하나만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일본에는 마스킹 테이프를 활용하는 작가들이 많은 편이나 국내에는 흔하지 않았기에, 그는 혼자 도구를 이리저리 사용해 보며 기법들을 연구했다. 긴 시간,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그림을 만드는 시간이 좋아 지금까지도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작업 초기에는 바라는 것들을 표현했어요. 요즘은 일상에서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기록하듯 그림을 만들어요. 평소에도 관찰을 많이 하게 되니 작업으로 고스란히 이어지기도 해요.” 주변의 사물이나 사람, 풍경을 눈에 담는 게 습관이 되니 사진을 찍을 때도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를 떠올리며 셔터를 누르게 되었다. 그는 그렇게 작업한 그림을 스캔해 엽서로 판매하거나 매장에서 제품을 구입한 분들에게 나눠주는 달력 굿즈로 제작한다. “그림 작업을 하며 익힌 기법을 활용해 생활용품을 꾸미기도 해요. 마스킹 테이프를 교차하거나 잘게 찢어 붙여 일종의 패턴을 만들어요.” 그의 공간에는 마스킹 테이프로 장식한 화병, 탁상 선풍기, 거울 등을 비롯해 테이프만 길게 이어 만든 테이블 매트나 끈이 곳곳에 놓여 있다. 이렇게 소품을 장식하거나 만드는 법을 매장을 방문한 손님과 나누거나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린다.
“여전히 ‘마스킹 테이프 하나만으로도 장사가 가능해?’라는 질문을 하는 분들이 있어요.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 수 있는지 궁금한 거죠. 저는 그 질문의 답이 롤드페인트 자체가 되었으면 해요. 아주 작은 것도 꾸준히 붙잡고 지속한다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싶어요.” 손바닥보다 작은 마스킹 테이프를 손에 꼭 쥔 채 오늘도 작업을 하는 채민지 작가의 책상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에게 책상은 가장 좋아하는 도구로 자신을 표현하는 장소이자 꿈을 이루는 공간이다.
[on the DESK]
1. 마스킹 테이프. 주로 패턴이 없는 단색 마스킹 테이프를 활용해 작업을 하는 편이다. 디자인의 재미와 디테일을 더할 땐 패턴 마스킹 테이프도 사용한다.
2. 커팅 매트. 마스킹 테이프를 자를 때 사용한다. 흔들리면 위험할 수 있어 작업을 할 땐 커팅 매트를 마스킹 테이프로 책상에 고정시켜 둔다.
3. 아트 나이프와 가위. 섬세하게 오려낼 땐 아트 나이프로, 성큼성큼 큼직하게 자를 땐 가위를 쓴다. 하지만 종이 소재인 마스킹 테이프의 특성을 드러낼 땐 손으로 찢어 단면을 드러낸다.
4. 하얀색 젤 펜. 자르고 싶은 부위를 표시할 때 사용하는 펜. 마스킹 테이프 단면이 매끈해 젤 펜으로 표시한 뒤, 물에 적신 면봉이나 휴지로 문지르면 깔끔하게 지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