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디퍼 칼럼
디퍼 칼럼은 필진마다 3회 차에 걸쳐 하나의 주제를 풀어가는 연재물이며, 책상에서의 몰입을 통해 성장한 인물들이 배움, 창작, 일 등에 대한 심층적인 사유와 정보를 전합니다. 새로운 지식이 뇌를 자극할 때, 기분 좋은 깨우침이 일어날 거예요.
“돌은 안 돼.” 나는 원고를 작성하다 말고 계속 키보드에서 손을 떼며 중얼거렸다. 손목뼈 부분이 있는 곳을 자꾸 만지작거렸다.
나는 지난번 집 이사와 다음 집 수리 사이에서 갈 곳이 없었다. 집 근처의 풀 옵션 단기 원룸을 급히 임대했다. 그 방 책상은 저렴한 대리석. 책상 바로 위에 에어컨이 있어 여름에도 돌이 차가웠다. 에어컨 냉기를 머금은 돌에 내 팔의 체온이 닿으니 몸과 돌의 온도 차로 자꾸 팔 아랫부분에 이슬이 맺혔다. 축축한 이슬이 맺히니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아울러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돌 책상 바닥은 안된다.
석재 책상 바닥 전 책상 바닥은 원목이었다. 지난번 원고에 잠깐 언급한, 희게 칠한 소나무 원목. 그 책상 역시 곤란한 부분이 있었다. 너무 물렀다. 소나무는 원목 중에서도 무른 편이라 종이 커터 칼만 써도 책상 위에 머리카락 같은 줄이 쭉쭉 그려졌다. 칼질을 자주 하지는 않아도 왕왕 할 때가 있으니 은근히 신경 쓰였다. 나무 특유의 부드럽고 푹신한 감촉은 반대로 보면 유약함이기도 했다. 세상에 장점만 있는 소재가 없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사무용 책상을 썼다. 상판은 저렴하고 튼튼한 MDF. 합리성과 내구성 등 적합성을 인정받은 재료지만 오래 정 붙이기는 어려웠다. 문제도 있었다. MDF는 장기간 이어지는 열과 습기 등의 충격에 약했다. MDF 표면은 열과 습기가 함께 차면 물집처럼 부풀어 오른 뒤 내려앉지 않는다. 그 역시 사용감이고 세월의 흔적인데 별로 예쁘지가 않다. 시간의 흔적이 멋지게 쌓여야 좋은 물건인데 MD는 그 면에서 탈락이었다. 패이지 않는 단단한 나무. 잘 재단된 걸로. 이런 경험 끝에 결론 내린 내 책상 상판 소재의 조건이었다.
MDF와 석재가 내게 잘 맞지 않는 건 지난번 경험에서 알았다. 금속은 더욱 생각하지 않았다. 금속은 대량 생산품을 사는 게 좋지, 개인이 맞춰 쓸 만한 이유가 별로 없다. 특히 책상 상판으로는. 나는 나무 정도의 열 전도성과 나무 정도의 내구성이 좋았다. 나무를 잘 재단하면 실루엣은 인공적이되 그 안의 무늬는 여전히 나무 특유의 비전형적인 패턴이다. 그 상반된 특징도 좋았다.
그 나무를 찾아 떠났다. 내 집 가구를 제작하며 친해진 가구 제작자가 알려준 곳으로. 그는 3개월에 한 번씩 목공용 고급 원목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곳이 안성에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어느 주말 처음 가보는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찍었다. 도착한 곳은 그야말로 나무 쇼룸. 손바닥만 한 크기부터 화물차로 실을 수 있는 크기까지, 나의 인지 규모를 뛰어넘는 나무들 사이에서 수상할 정도로 저렴한 원목 상판을 하나 샀다. 집으로 돌아오는 교통 체증 내내 신이 났다.
나무를 내가 직접 다듬어서 내 집 책상으로 만들었다. 가구 제작자의 작업실 한쪽에 허락을 받고 나무 표면을 갈기 시작했다. ‘샌딩기’라 부르는 전동 사포는 목공의 기본 도구지만 나는 그때 처음 써봤다. 세상에 사포질이 이렇게 편하다니. 나는 문명의 이기를 처음 써본 중세인처럼 감동하며 나무 표면을 다듬었다. 굵은 사포에서 시작해 점점 얇은 사포로. 앞뒷면을 끝내고 옆면도. 옆면을 끝내고 나서는 각진 부분까지 깎아주고 목공 기름도 몇 번씩 발라줬다. 내 손으로 내 물건을 만든다는 쾌감이 컸다.
만들다 보니 쾌감보다 과정이 길었다. 이 나무판 곳곳에 자연 상태의 구멍이 있었다. 처음에는 구멍도 원목의 일부니까 그냥 쓰기로 했다. 막상 써보니 그 구멍에 먼지가 끼어 보기 좋지 않았다. 그 판을 다시 작업실로 가져가 레진을 채웠다. 레진은 채우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한 뒤 또 대패와 사포로 갈아내야 한다. 나는 평소 대형 원목으로 만드는 테이블이 왜 그렇게 비싼지 종종 궁금했는데 내가 다듬어보고 그 이유를 확실히 깨달았다. 나무판을 다듬기 위해서는 절차와 시간과 정성이 필요했다. 모두 현실 세계의 비용 요소다.
구멍까지 채운 뒤에도 나무 상판의 문제가 남았다. 레진 일부가 덜 붙어서 손으로 만졌을 때 거칠었다. 결정적으로 이 나무에서 묘하게 유쾌하지 않은 냄새가 났다. 나무 본연의 냄새인 건 확실한데 향기라 하기 애매한 시큼한 냄새였다. 느티나무를 제대로 건조하지 않았을 때 그런 냄새가 나는 걸 나중에 알았다. 나무가 저렴했던 이유 역시 그때 알았다. 틈새도 있고 냄새도 나니까. 그걸 알았을 때는 모든 게 너무 늦었다. 이미 이 나무에 내가 쓸 수 있는 정성을 다 쏟았다. 미묘한 불편과 시큼한 냄새와 같이 살아가는 수밖에.
이쯤 되어 보니 내가 별로 안 좋아하던 MDF 상판 책상에도 확실한 장점이 있었다. 지불한 가격만큼의 성능을 제공한다는 점. 그 성능을 사용하기 위해 내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그다지 많지는 않다는 점. 무엇보다 돈만 내면 바로 완성된 물건이 온다는 점. 내 소중한 원목 책상 상판에서는 모두 기대할 수 없는 요소였다. MDF와 원목 사이에 있는 건 우열이 아니라 각자의 선명한 장단점임을, 나는 먼 길을 돌아온 뒤 알게 됐다.
지금 바로 그 책상에서 원고를 마무리하는 중이다. 이렇게 썼어도 나는 내 책상 상판을 좋아한다. 이 안에 내 고민과 이상과 착오를 모두 포함한 내 추억이 들어 있다. 물론 무늬도 멋지고, 특유의 냄새에도 이제는 정이 들었다. 다만 내가 만족한 이 모든 과정을 남에게 권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남에게 권한다고 누군가가 이 일을 할까? 이건 알겠다. 안 할 것 같다.
To Be Continued.
✱
🖋️ writer. 박찬용 @parcchanyong
에디터, 저자. <크로노스> <에스콰이어> <아레나> 등에서 일했다. ⟪모던 키친⟫ 등 책 6권을 냈다. 현재 다음 책들을 작업하고 있다.
시간을 들여 오래된 집을 고친 뒤 더 오래된 사무실을 고치려는 중이다.
Illustration Daeun Jung
𝗘𝗱𝗶𝘁 Haeseo Kim
𝗗𝗲𝘀𝗶𝗴𝗻 Jaehyung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