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단 하나의 꿈과 직업만 가지라는 법이 있을까? ‘아니’라고 몸소 답을 보여주는 용감한 사람들이 있다. 호기심, 열정, 의지와 더불어 재능까지 충만한 다능인들은 기존 직업의 틀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분석, 기획, 설계, 제작, 운영 등 자신의 성향과 능력에 맞는 작업 프로세스를 체득해, 이를 다양한 업종에 적용한다. 여러 일을 결합해 나만의 직업을 만들거나, 다채로운 정체성으로 자신을 정의하기도 한다. 산업 간 경계가 흐려지고 협업이 왕성한 이 시대가 곧 다능인의 존재와 역할을 증명하는 것!
‘헤맨 만큼 내 땅’이라는 말처럼, 다능인은 도전한 만큼 자기 영토를 한 뼘씩 넓혀왔다. 이들의 양손에는 무엇이 들렸고, 배낭에는 어떤 물건이 담겨 있을까? 낯선 땅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지, 나만의 주력 기술을 발전시키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 무기를 하나씩 들여다보고자 한다.
‘코사이어티’, ‘타운홀’ 등을 통해 일과 휴식의 대안적 공간 솔루션을 제시한 데 이어 최근 카페 ‘포틀러’로 F&B 시장에 새로 진입한 언맷피플의 공동 대표 이민수·위태양, 성우이자 아나운서, 요가 강사, 댄스 강사 등 무려 7가지 직업을 가진 이다슬, 낮밤에 따라 촬영 감독과 바텐더로 유연하게 변신하는 에프온스튜디오 대표 조은기에게 질문했다.
“다능인으로 살아가는 비결이 무엇인가요?”
이민수 언맷피플을 창업하고 지난 5년 동안 정말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어요. 코사이어티 서울숲, 제주 코사이어티 빌리지, 타운홀, 포틀러 등을 론칭하며 건축, 부동산, 숙박, 문화, 식음 업계에 이르기까지 매번 새로운 업종에 과감하게 뛰어들었죠. 코사이어티 서울숲을 본진으로 삼되, 각 브랜드를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모듈화함으로써 더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어요. 개별 브랜드는 고유의 개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서로 다른 취향의 고객들을 포용하고 있죠.
워낙 많은 정보를 처리하다 보니 글보다는 시각화 작업을 더 선호해요. 뒤죽박죽 섞이고 흩어진 개념들을 시각적으로 분류하고 정리하죠. 흐릿한 생각을 텍스트로 옮기면 많은 부분이 사라지기도 하거든요. 보통 스케치나 그림처럼 무형적인 형태로 자유롭게 남겨 둡니다. 나중에 그 흔적을 보면 당시의 생각과 느낌이 총체적으로 떠올라요.
위태양 최근 일하는 문화에서 가장 큰 화두는 건강한 충돌이 사라졌다는 점이에요. 근무 유연도가 높아지고 원격 근무가 늘어나면서 나타난 현상이죠. 저희는 개인화된 공간에 적절한 충돌을 만들어내고 싶었어요. 그리고 ‘사람들을 어떻게 모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으로, 판교의 성장하는 기업들이 모여 일에 대해 소통할 수 있는 브랜드 타운홀을 론칭했죠.
저에게 건강한 충돌이란, 사람들과 스몰 토크를 나누며 정신적으로 환기하는 일이에요.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만들어 대화하면 스위치가 잠시 꺼지는 것 같거든요. 물론 이것도 일의 연장선이지만요. 일을 제때 완수하고 싶을 땐 데드라인을 설정해 보세요. 마감 기한만큼 창작자에게 강력한 원동력이 있을까요? 오직 데드라인만이 저를 움직이게 합니다(웃음).
Interviewee 언맷피플 공동 대표 이민수·위태양
언맷피플을 창업한 이민수·위태양 대표는 각각 공간 디자인과 브랜딩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공간과 브랜딩이 결국 ‘한 몸’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창업을 결심했다. 그동안 창작자를 위한 문화 라운지, 워케이션 공간, 콘퍼런스 룸 등 업무 중심의 공간 솔루션을 제시해 왔으며, 최근에는 포틀랜드 콘셉트 카페인 포틀러를 통해 새로운 영역을 탐색 중이다. 앞으로 건강한 삶과 좋은 공간을 창출하는 ‘브랜드 빌더’로 자리매김할 계획이다.
저의 첫 직업은 댄서였고, 아나운서를 거쳐 서른 살에 성우가 되었어요. 평생 성우만 할 줄 알았는데, 당시 직장 생활이 너무 힘들어 에너지를 분산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죠. 10년 넘게 취미로 지속해 온 요가에 매진해 요가 강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고, 스피치 강사나 라이브 커머스 진행자 등 새로운 직업에 끊임없이 도전했어요. 최근에는 에세이를 펴내면서 작가라는 7번째 직업도 갖게 되었죠. 숨 쉴 구멍을 찾아 뚫다 보니 결국 볕이 들어온 것 같아요.
항상 본업을 중심에 두는 것이 중요해요. 확고한 규율과 기준이 없으면 이리저리 끌려다니기 십상이거든요. 이때 본업이 바로 나를 잡아주는 기준이 됩니다. 나무처럼 하나의 굵은 줄기를 중심으로 뿌리와 가지를 뻗어 가야 해요. 줄기까지 쪼개면 나무는 생명력을 잃고 말잖아요. 요가 강사, 댄스 강사, 스피치 강사 같은 직업들은 호흡과 체력, 표현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줬고, 궁극적으로 성우라는 본업의 줄기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어요.
스스로와 대화를 많이 나눠야 해요. 사람들이 쉽사리 무언가를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는 탐색만 하다 결정을 포기하기 때문이에요. 내 안에서 불을 낼 만한 부싯돌 하나를 갖지 못한 거죠.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 진정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다못해 소개팅을 나가도 ‘어떤 음식을 좋아해요?’ ‘인생 영화가 있나요?’라고 묻잖아요. 나를 알아가는 질문을 스스로에게도 자주 건네보세요.
저는 한 우물을 깊고 넓게 파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일단 삽질을 시작하면 물이 나올 때까지 파거나, 물을 퍼다 부어서라도 새로운 우물을 만들어내요. 그러기까지 엄청난 노력과 정성을 기울이죠. 제가 시작한 일 중에 제 손으로 놓은 건 단 하나도 없어요. 고생스럽게 여러 우물을 파는 건 오히려 애정이란 동력이 크기 때문이에요.
Interviewee 이다슬 성우
KBS 공채 41기 성우 출신인 이다슬은 아나운서, 요가 강사, 스피치 강사, 라이브 커머스 진행자 등 7가지 직업을 경험한 프로 N잡러다. 에너지를 분산하고 발산하기 위해 도전해 온 다양한 직업이 그를 새로운 차원의 삶으로 이끌었다. 현재 TBN 교통방송의 라디오 프로그램 ‘행복한 밤, TBN과 함께’를 진행 중이며, 행사와 강연 활동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웹툰이나 드라마의 서사를 담당하는 스토리 작가라는 또 다른 직업을 꿈꾼다.
낮에는 촬영을 하고 밤에는 칵테일을 만들어요. 본업은 영상과 사진을 다루는 촬영 감독으로, 영상에 사용할 음원도 제작하는 종합적인 미디어 작업을 맡고 있어요. 바텐더에게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을 살려 일일 바텐더로 활동하거나 작업실에 지인들을 초대해 칵테일을 만들어 주기도 해요. 칵테일은 사람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매개체예요. 상대방의 취향과 기분에 맞춰 즉흥적으로 칵테일 레시피를 만드는 일은 창작에도 큰 도움을 주죠. 무형의 감정이나 생각을 미각과 시각으로 표현하는 작업이니까요.
‘좋아하는 게 뭐야?’라는 질문을 즐겨 해요. 상대방의 취향이나 목표, 일상을 엿볼 수 있거든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도 자주 던져요.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 뭘까?’ 하고요. 다능인으로서의 삶은 결국,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삶이라고 생각해요. 사소하더라도 마음이 끌리는 대상을 탐색하고, 그 순간을 흘려보내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격증은 나를 표현하는 매력적인 도구이자 목표를 이루기 위한 좋은 방법이에요. 한식조리기능사, 전자출판기능사, 도자공예기능사, 조주기능사 등 다양한 자격증을 갖고 있는데요. 저에게 자격증은 일종의 게임 같아요. 퀘스트를 설정하면 그 목표를 원동력 삼아 끝까지 노력하게 되죠. 자격증이 없는 예술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피아노라면 ‘이 곡을 완주할 거야’, 사진이라면 ‘내가 만족하는 사진 한 장을 대형 인화할 거야’ 같은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는 거예요.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다’라고 정의를 내려보세요. 예전에는 “너는 무슨 일을 해?”라는 질문에 답하기 어려운 적이 있었거든요. 저는 스스로를 ‘낮에는 촬영하고, 밤에는 칵테일을 만드는 사람’이란 한 문장으로 정리했어요. 이렇게 스스로를 규정하니 사람들도 저를 그 정의대로 기억해 주더라고요.
Interviewee 에프온스튜디오 대표 조은기
“대체 못하는 게 뭐예요?”라는 질문을 종종 듣는 조은기 대표는 낮에는 촬영을 총괄하는 감독으로, 밤에는 칵테일을 만드는 바텐더로 변신한다. 밴드 아른아른의 멤버로 활동하며 싱글 앨범 <빗속에 널 담아>를 발표한 뮤지션이기도 하다. 작업실에 설치한 선반과 서랍장은 목공소와 철제소를 오가며 직접 제작한 것. 앞으로 서울 문래동 예술촌의 다양한 창작자들을 소개하는 미디어를 만들고, 에프온스튜디오를 브랜드로서 널리 알릴 예정이다.
✦ NEXT differ Answer
한 가지 질문에 각양각색의 답! 이번 디퍼 앤서의 인터뷰이들은 저마다의 무기를 갈고 닦으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꼭 한 우물만 파야 할까요? 여러 일을 동시에 병행하면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까요? 10월에는 또 다른 다능인들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