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디퍼 칼럼
디퍼 칼럼은 필진마다 3회 차에 걸쳐 하나의 주제를 풀어가는 연재물이며, 책상에서의 몰입을 통해 성장한 인물들이 배움, 창작, 일 등에 대한 심층적인 사유와 정보를 전합니다. 새로운 지식이 뇌를 자극할 때, 기분 좋은 깨우침이 일어날 거예요.
책상 앞에 가장 편안한 자세로 앉아,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는 법을 알고 있는가? 심지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더군다나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날 수도 있다. 한 번에 여러 명을 만날 수도 있고, 한 사람의 이야기에만 집중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자신의 책상에 앉아서. 당연히 별로 에너지가 들지도 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냐고? 간단하다. 책만 펼치면 된다.
두 눈을 의심하는 중인가? 2025년에 책에서 답을 찾을 생각이냐고? 그렇다. Open AI로 순식간에 유능해질 수 있고, 숏폼 영상으로 촘촘히 즐거울 수 있는 이 시대에, 느리고 비효율적인 독서에서 답을 찾으려는 사람이라니, 한심해 보이는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내가 그런 한심한 인간인걸. 20년간 광고 회사에서 충분히 바쁘게 살았다.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답도 지겨울 만큼 찾았다. 나는 더 이상 그런 답을 찾고 싶지 않았다.
답은 책이었다. 느리고 깊은 답이 그곳에는 무수히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집에는 이미 믿기 힘들 정도로 빼곡한 책의 숲이 있었고, 회사를 그만둔 내겐 넘칠 만큼 많은 시간이 있었다. 무언가에 쫓기지 않고 책의 숲을 산책할 수 있는 시간이 내게도 찾아온 것이었다. 지겨울 만큼 책을 읽고 싶다는 오래된 바람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그렇게 책을 읽던 어느 날이었다. 마음속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가진 적이 없는 생각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북클럽을 만들어서, 사람들과 같이 책을 읽으면 어떨까?’ 웃음부터 터져 나왔다. 나에게는 무척이나 생소한 욕구였기 때문이다. 내향형 인간의 대표주자가, 북클럽이라니. 하지만 도무지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 욕구가 무서울 정도로 생생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걱정도 동시에 나를 찾아왔다. 그중 가장 큰 걱정 하나. ‘사람들이 나를 맹신하면 어떡하지?’ 작가가 여는 북클럽이다. 보나 마나 사람들은 나의 해석을 신뢰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고 있긴 하지만, 나는 결코 책의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나 역시 한 명의 독자일 뿐이고, 나의 해석 역시 수많은 해석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나를 신뢰한다고? 내가 뭐라고? 두려움이 몰려와 순식간에 북클럽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착착 접어주었다. 그래, 될 리가 없지. 그 순간 한 단어가 찾아와 나를 구원해 주었다. 바로 ‘오독’.
언뜻 보면 책은 종이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고정불변의 활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다. 한 권의 책은 수만 갈래의 길을 내포한 거대한 숲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나’를 통과해서 책을 읽어낼 수밖에 없다. 언뜻 ‘객관적’인 책을 읽는 것 같지만, 우리는 모두 ‘주관적’으로 책을 읽어낼 수밖에 없다. 각자의 삶에 비추어서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해 낼 수밖에 없는 것이 독서인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독서는 기본적으로 오독이다. ‘오독 클럽’으로 이름을 지으면 어떨까? 그 생각만으로도 엄청나게 큰 해방감이 밀려왔다. 자, 그럼 다음 문제를 해결해 볼까?
다음 문제는 솔직히, 해결 불가능해 보였다. 바로 나라는 인간 자체가 문제였기 때문이다. 나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는데, 바로 어떤 책을 읽어도, 모든 내용과 문장을 모조리 잊어버리는 능력이다. 좋아하는 시 한 편쯤은 외우는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시 한 편은 고사하고 내가 쓴 문장 하나도 외우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누군가 말했다. 충분히 감동하지 않아서 못 외우는 거라고. 하지만 내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본다면, 책을 읽으며 흥분하는 모습을 본다면 그 충고는 틀렸다. 한 번 읽어서는 안 되고, 좋아하는 구절은 여러 번 곱씹으며 읽으면 기억할 수 있다는 사람도 많았다. 그 충고 역시 틀렸다. 나는 20년 넘게 읽은 모든 책의 좋아하는 부분을 다 타이핑해 놓고 수시로 꺼내보는 사람이니까.
그러니 문제는 이것이다. 북클럽을 운영하려면, 리더가 책 내용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할 텐데, 나의 기억력으로 가능할 것인가? 이 문제를 앞에 두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에겐 타고난 (빌어먹을) 기억력이 있지만, 동시에 나에겐 타고난 성실성이 있었다. 책임감도 강했다. 그렇다면 내가 북클럽의 리더가 된다면, 같은 책을 읽고 읽고 또 읽지 않을까? 잘 해내고 싶을 테니까. 잘 해내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까. 그렇다면 나는 읽은 책을 읽고 읽고 또 읽을 것이다. 그렇게 책 한 권을 ‘오독오독’ 씹어서 소화한다면, 여러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더 좋지 않을까?
첫 번째 고민은 ‘오독’이라는 단어가 해결해 주었다. 두 번째 고민은 ‘오독오독’이라는 단어가 해결해 주었다. 그리하여 북클럽의 이름은 운명적으로, 아니 필연적으로, ‘오독오독 북클럽’이 되었다. 2024년 1월, 오독오독 북클럽의 문을 열었다. 얼마나 떨렸나 모르겠다. 3개월 동안 3권의 책을 각자의 방식으로 ‘오독’하며, ‘오독오독’ 씹어 먹어보자, 라는 나의 제안을 누가 받아들일까. 다시 말하지만, 이런 시대에 나와 같이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까? 책을 같이 읽기 위해 돈을 내는 사람이 있을까?
놀랍게도 그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있다’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무수히 많다’였다. 덕분에 오독오독 북클럽은 벌써 4기를 마치고 5기를 앞두고 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말이었다. 특히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결말이었다. 2025년에도 책이 답이 될 수 있다니.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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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iter. 김민철 @ylem14
20년 동안 광고 회사를 다니며 ‘일룸’의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했으며, 현재는 오독오독 북클럽 운영자이자 작가로 활동을 하고 있다. ⟪무정형의 삶⟫, ⟪내 일로 건너가는 법⟫, ⟪모든 요일의 기록⟫ 등의 책을 썼다.
𝗘𝗱𝗶𝘁 Haeseo Kim
Illustration Eomju
𝗗𝗲𝘀𝗶𝗴𝗻 Jaehyung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