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여성 집수리 기사.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많이 떠올린 질문
Q. 여성 수리 기사는 왜 찾아보기 힘들까?
여성과 남성이 지원하면 남성을 채용하는 게 이 분야인데, 여성들은 정말 이런 일을 할 수 없는 걸까 하는 의문이 가장 컸다.
일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우리가 가진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는 것. 단순히 기존의 남성 수리 기사를 여성으로 대체할 것이란 생각이 아니라 이 업계가 가진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게 목표다.
여성을 위한 집수리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혼자 살았어요. 집을 여러 번 옮기면서 여기저기 고칠 일도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두 가지 고민이 있었어요. 하나는 너무 불편하고 불친절하다는 거예요. 요금을 미리 알 수도 없고 거의 현금 지불을 강요받다시피 하고요. 두 번째는 여성 1인 가구로서 느끼는 불안감이었습니다. 저는 수리 기사의 전화번호 정도밖에 모르는데 상대방은 나의 집 주소, 주거 환경, 전화번호까지 모든 정보를 알고 있잖아요. 여성들이 제공하는 집수리 서비스가 있으면 정말 편하게 이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라이커스(LIKE-US)라는 이름에 담긴 뜻은 무엇인가요?
‘우리와 같은’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라는 이름이에요. 수리를 하는 사람이나 수리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 모두 여성이라는 의미에서요. 현재 서울, 인천 및 경기 지역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요.
라이커스의 첫 시작이 궁금해요. 우선 집수리 기술을 배워야 했을 텐데요.
처음에는 집수리 분야가 너무 광범위하다 보니 우왕좌왕했어요. 그러다가 지인이 한국주택환경연구원이라는 사설 교육 기관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알려주셔서 찾아갔죠. 그곳의 커리큘럼이 딱 제가 배우기 적합한 내용이었어요. 도배나 장판, 타일 같은 분야는 전문적으로 공부해야 하지만, 저는 얕고 넓게 최대한 많이 알고 싶었거든요. 혼자 하기에는 어렵고 인테리어 업체를 부르기에는 너무 번잡스러운, 애매하고 사소한 부분들을 수리하고 싶었어요. 기존의 철물점 사장님들이 해오시던 영역이죠. 교육 기관에 등록해서 한두 달 정도를 배웠고, 실습을 했고, 또 현장에 다니며 경험치를 쌓았습니다. 첫 오픈 때는 체험단을 모집했어요. 부품비만 받고 무료로 수리를 해드리는데 대신 처음이다 보니 소요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며 양해를 구했고요. 금요일에 체험단 모집 글을 작성해 올린 뒤 ‘10명만 됐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주말 동안 100명 가까이 신청해 주셨어요. 웹사이트에 과부하가 걸려서 접속이 안 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거죠.
첫 수리 현장은 어땠는지 기억나나요?
기억나죠. 천장까지 이어진 긴 신발장의 경첩을 새로 다는 일이었어요. 사실 기술 교육에서 굉장히 간단하게 넘어가는 부분인데, 신발장이 길다 보니 경첩이 워낙 많기도 하고 제가 알던 부품과 다르더라고요. 다행히 가져간 부품이 맞기는 했는데, 굉장히 서툴고 오래 걸렸던 기억이 나요.
교육 과정을 수료한 후에도 배움은 계속될 것 같아요.
현장을 다니며 배우는 게 정말 많고, 건축박람회에 가서 건축용 자재들을 살펴보기도 해요. 건설업까지는 아니지만, 집수리에 사용되는 부품들이 계속 업데이트되다 보니 그런 부분은 알아둬야 하죠. 전등 같은 것도 종류가 꽤 많고 자주 바뀌거든요.
여성들을 위한 집수리 교육 워크숍 ‘고쳐볼LAB’도 운영하고 있는데요.
사업 초반 단계에서 했던 고민이 ‘여성들이 이 일을 못하는가’, 혹은 ‘여성들이 이 일을 과연 원하는가’였어요. 여성이 남성에 비해 생애 주기에서 공구를 만져볼 기회가 현저하게 적은 환경이었기 때문일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여성들이 ‘내가 집수리를 좋아하고 잘하는지’ 알아볼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싶었어요.
고쳐볼LAB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나요?
온라인상에서 지역에 대한 교육 서비스 수요를 먼저 파악하고 각 지역으로 갑니다. 전체 커리큘럼은 10개 정도이고 각각 3시간씩 진행하는데, 그중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기술만을 모아 하루에 2강씩 이틀 과정으로 압축해서 강의를 해요. 최근에 서울 서대문구 50 플러스 센터에서 중장년층 대상 직업 교육을 요청하셨는데, 이런 경우에는 10가지 커리큘럼을 모두 진행하고요. 강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성차별적 언행을 하지 말고, 속도가 더디더라도 누군가에게 대신해 달라고 하기보다 차라리 강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가이드를 드려요. 2인 1조로 운영하는데, 처음에는 어색해하다가도 막상 실습을 시작하면 수강생 얼굴에 화색이 돌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에너지를 많이 얻습니다.
워크숍을 운영하며 고민하는 지점이 또 있나요?
워크숍 초기에 집수리를 직업적으로 접근하고 싶어 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따로 미팅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그런 분들이 예상보다 많아요. 전체 수료자의 30% 정도죠. 여성들이 이 직업에 관심이 많고 배울 의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런데 워크숍을 통해 수리 기술을 배워도 이후에 수리 기사로 활동할 수 있도록 저희가 직접 지원해 드릴 방법이 없어서 아쉬움이 남아요. 이 분야가 주로 혼자 하는 일이다 보니 직업으로 삼을 만큼 안정감 있게 일을 따낼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거든요.
라이커스가 확장해서 그분들을 직접 고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조금 더 바빠져야 할 텐데요. 라이커스를 시작하고 4년을 꽉 채웠는데 아직 5인 이하 사업장이에요. 포부가 있다면 ‘집수리’ 하면 라이커스를 바로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남성분들도 이 커리큘럼을 접하거나 서비스에 대해 듣고 관심을 많이 보이거든요. 그들도 견적을 알 수 없는 등 정보의 불투명성에 대해 불편을 많이 느끼고 있는 거죠. 향후 남성들에게까지 서비스를 확대할 생각입니다. 라이커스가 좀 더 대중화됐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