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다’ 이주연 대표는 공간과 사람을 고려해 식물을 매칭해 주는 ‘식물 큐레이터’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우리나라 최초의 식물 큐레이터다. 이제는 이 직업을 대표하는 인물이지만 놀랍게도 꽤 오랜 기간 식물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어느 날 결혼 선물로 6~7그루의 식물을 받은 것이 식물 생활의 시작이었다. 함께 따라온 관리 수칙을 보며 열심히 돌봤지만 결국 모두 죽고 말았다. 검게 변한 떡갈나무 잎을 바라보는데 마치 자신이 비참해지는 것과 같은, 속상함 그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고. 자신감도 사라졌고 두려웠지만 여기서 멈추면 다시는 식물을 키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는 이 경험을 실패로 여기진 않았다. 식물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었고, 이를 토대로 가이드만 따라서는 안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식물의 상태와 주변 환경을 매일 기록하기로 했다.

식물을 키운다는 건 그저 물만 준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매일매일 바라보며 작지만 명확한 ‘변화’를 알아차려 기록하는 것부터 시작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식물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고, 오늘의 날씨, 어제와는 다른 바람과 햇살의 차이 등을 파악해 기록했다. 식물을 키우는 데 100% 정답은 있을 수 없다. 식물이 있는 공간에 대한 이해와 하루하루 변화하는 식물의 모습을 예민하게 감지하며 나와 식물과의 관계를 이어나갈 때, 비로소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자연스레 깨달았다. 기록이 알려준 가장 큰 수확이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을 뿐이지 식물도 인간과 똑같이 모든 걸 느낀다. 식물이 고통받지 않고, 더 잘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그들의 손과 발이 되어줘야 하는 이유다. 환경에 맞춰 그들을 옮겨주는 건 오로지 식물의 보호자인 우리의 몫인 것. 이를 위해 한 번 더 봐주고, 한 번 더 기록하는 것은 반려식물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일과 같다. 기록의 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혹여 식물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원인을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된다. 매번 물을 줬던 시간과 양을 파악해 물 주기 습관에 문제가 있었는지 알아챌 수 있고, 기록한 빛과 흙의 상태를 통해 내 식물이 현재 무엇을 더 필요로 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