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사용하게 된 도구가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게 해주고 인생의 항로를 바꾸기도 한다. 글씨를 잘 쓸 수 있단 얘기를 듣고 써보게 된 만년필은 펜크래프트를 손 글씨의 세계로 이끌었다. 처음 만년필을 잡던 순간만 해도 글씨 콘텐츠를 통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서 주목 받고 문구점 주인장까지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동안 문구점에서 사서 쓰던 볼펜과는 필기감이 확연히 달랐어요. 종이에 잉크가 스며들도록 해 글씨를 쓰는 만년필이 독특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첫 만년필은 3천 원을 주고 산 중국 브랜드 영웅의 616 모델. 쓰다 보니 재미가 있어 그다음은 3만 원대의 라미 사파리를 사는 등 점차 가격대를 올려가며 더 좋은 만년필을 쓰기 시작했다. 만년필이라는 새로운 애착 도구는 ‘글씨를 잘 쓰고 싶다’는 마음에도 불을 지폈다. 글씨 교정을 위해 학원도 다니기 시작했지만 가르쳐주는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아 서울 종각 영풍문고의 손 글씨 코너와 서예 코너를 돌며 책을 사 따라 썼다. 폰트 관련 책을 수없이 뒤져보며 잘 쓰는 법을 연구하고 자신만의 글씨체를 찾아 나갔다.
손 글씨의 매력에 빠진 후 독서량도 어마어마하게 늘었다. 필사할 글감을 찾다 보니 책에 푹 빠지게 된 것이다. 책 속 좋은 문장을 예쁜 글씨로 알리기 위해 인스타그램을 하다 보니 6만 명의 팔로워를 불러 모았고 사진보단 영상이 손 글씨와 더 맞겠다는 생각이 들어 유튜브 ‘ASMR 펜크래프트’ 채널도 시작했다. 그의 손 글씨를 보고 따라 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책 집필과 강연도 하게 되었다. 그러다 글씨 쓰기 좋은 제품을 소개하는 문구점을 열기에 이르렀다. “온라인으로만 활동하다 보니 소통할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언젠가는 세계의 노트들을 모아 놓은 편집 숍을 하고 싶어요.” 이게 다 우연히 써본 만년필이 일으킨 나비 효과다.
펜크래프트가 가장 ‘애착’하는 만년필은 자신이 태어난 해 한정판으로 출시된 몽블랑 아가사 크리스티. 디자인이 독특할 뿐 아니라 초기 몽블랑 만년필의 아이덴티티도 가지고 있어 남다르다. 초보자에게 추천하는 필기구는 연필이나 만년필, 라이너 류다. 펜 끝에 볼이 없어 원하는 만큼 획을 그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맞는 도구를 찾기 위해서는 직접 써보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사람마다 손의 크기부터 다르고 필기구를 잡는 방법, 필압 등 많은 변수가 있거든요.” 필기구만큼이나 노트도 중요하다. 모눈이나 줄노트 등 가이드가 있는 것이 도움 되고 줄 간격이 좁은 노트는 피하는 편이 글씨를 크게 쓰면서 교정하기에 좋다.
몸에 딱 맞는 옷을 발견한 것처럼 자꾸만 손이 가는 도구로 좋아하는 글씨를 쓰다 보면 절로 자신만의 글씨체를 발견하게 된다. 같은 글씨를 배우더라도 각자 미의 기준이 달라 본인만의 글씨가 나오기 때문이다. 필사를 하다 보면 따라오는 생각지도 못한 장점들도 있다. “어휘나 띄어쓰기 실력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향상되는 걸 경험했어요. 최근에 가장 크게 느낀 건 책을 쓴 작가의 문체를 알게 모르게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에요.” 마음에 드는 물건을 보면 소유하고 싶듯 좋아하는 글귀를 손으로 직접 써보면 내 것이 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 과정에서 명상을 하듯 스트레스가 풀리는 경험도 하게 된다. 글씨를 잘 쓰게 되면 자신감도 절로 생긴다.
“살면서 급하게 무언가를 쓸 일이 아주 많이 생기잖아요. 글씨가 부끄럽다면 어쩐지 위축되죠. 글씨를 잘 쓰는 데서 오는 해방감이 무척 크답니다. 글씨가 그 사람의 이미지가 되기 때문에 호감도도 높일 수 있죠.” 글씨 교정을 하면서 따라온 효과들을 몸소 체험한 펜크래프트는 오프라인 강의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의 글씨 고민을 해결해 주고 싶다. 글씨 교정 이후 달라진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들을 만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다.
손글씨의 장점은 알지만 이를 꾸준히 연습을 하는 건 쉽지 않다. 무려 10년 동안 매일 필사를 해 온 펜크레프트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것을 권한다. “처음 시작했을 때와 지금 달라진 건 크게 없어요. 글씨가 점점 손에 익으며 필사량은 늘었습니다. 문구점을 여는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하루 1시간 반 정도 필사를 하고 있어요. 그 이상 하면 몸에 무리가 오거나 질릴 수 있기 때문에 딱 즐거운 정도만 하는 편입니다. 문구점을 열기 전에는 하루 30분씩 매일 조금씩 썼죠.”
잠깐의 흥미로 그치는 것이 아닌 꾸준히 글씨를 교정하고 싶다면 SNS를 활용해볼 것을 추천한다. 연습 기록을 쌓아가는데도 동기부여가 되지만 업로드 하기 위해 찍어둔 글씨 사진을 보는 순간 미처 발견하지 못한 글씨의 흠이 보이기 때문이다. 필사 모임에 참여해 강제로라도 주 1회 정도 쓰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일기, 택배 상자, 편지 봉투, 연하장, 공지문, 청첩장, 서명… 일상의 사소한 순간과 인생의 중요한 마디마다 손글씨가 함께한다. 그동안 제대로 글씨 연습을 해본 적 없다면 나만의 글씨체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 보자. 시작도 장비발, 글씨 연습을 위해보다 확실한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면 문구점으로 가 마음에 드는 필기구를 장만해 보자. 매일 조금씩 즐거운 마음으로 쓰다 보면 내 안의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