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지금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중요한 걸 잘 잊고 쓸데없고 사소한 것만 기억하는 이상한 재능이 있는 나에게는 흔한 일이 아니다.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가도 어느새 쉽게 잊으니 자신 있게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벌써 10년이 지났는데도 잊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2012년 5월, 이자람의 〈억척가〉 공연이 끝나고 극장 밖으로 나오는 길이었다. 주말 낮 공연이라 밖이 여전히 밝았다. 극장에서 지하철역을 향해 걷는 몇 분 동안 같은 생각을 반복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공연을 봤다고. 공연의 세세한 내용이나 눈으로 담아둔 장면들은 차차 잊히겠지만, 내가 이자람의 공연을 봤다는 사실 하나만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이 공연을 본 일은 두고두고 내 삶의 자랑이 될 것이라고. 앞으로 이자람이 한국 예술의 역사에 길이길이 남게 될 때,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이자람의 〈사천가〉와 〈억척가〉를 봤어. 이자람이 30대였을 때야. 커다란 극장과 거기 모인 사람들의 영혼을 쥐고 흔드는 이자람을, 내 눈으로 똑똑히 봤어.”

이자람의 에세이 〈오늘도 자람〉을 읽다가 눈을 의심할 만큼 놀랐던 이유는 바로 이 기억 때문이었다. 판소리 추임새에 관한 기억을 나누고 더 많은 관객을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전하며 이자람은 이렇게 썼다.

“하지만 괜히 한 번 더 말해두자면 세상이 멸망하지 않는 한 나의 이름은 한국 판소리 역사에 아주 중요하게 남을 것이니 당신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 한 번이라도 내 작품을 직접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래야 ‘나 이자람 공연 봤어! 나 이자람 살아 있을 때 객석에서 같이 추임새 했어!’ 하고 자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오늘도 자람〉, 84쪽)

이자람의 책 날개 속 자기소개는 이렇게 시작한다. “주변 사람들은 이잘함이라고 부른다. 웬만한 건 다 잘해서 이름 앞에 포지션을 붙이기 어려운 사람이다.” 소리꾼이고 뮤지션이며 배우이고 음악 감독이며 작가인 이자람은 어쩌면 이름마저 ‘이잘함’으로 읽힌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곧잘 ‘예체능’이라는 이상한 분류법으로 묶여있는 예술과 스포츠의 세계에는 천재가 있다. 범인은 어떻게 해도 다다를 수 없는 재능을 가진 사람을 그렇게 부른다.운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진실을 알기에 이제 재능을 그리 특별한 무엇으로 여기지도 않고, 천재의 존재를 그리 특별하게 생각하지도 않지만, 예체능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잘하는 사람이 잘한다는 사실만은 자연스럽게 인정하게 된다. 학창 시절에 운동을 해봤고 이런저런 예술 활동을 학업 중에도, 취미로도 조금씩 접해봤을 테니 다들 알지 않는가. 잘해야 재밌고, 재밌으니 열심히 하게 되고, 그래서 더 잘하게 되는 단순하고도 아름다운 재능의 선순환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잘하는 사람이 잘하는 세계, 소리와 이야기의 세계에서, 이자람은 잘한다. 이보다 더 잘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 즈음에는 더 잘한다. 〈억척가〉를 본 그날로부터 10년 동안 소리꾼 이자람의 공연이라면 놓치지 않으려고 애써온 한 팬으로서, 이자람의 목격자로서 남기는 일종의 증언이다.

이런 이자람이니 책의 제목은 ‘오늘도 잘함’으로 읽히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 같다. 하지만 책장을 펼치면 기대와는 조금 다른 무대 뒤, 무대와는 멀리 떨어진 집, 학교, 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오늘도 자람〉은 이자람의 어느 평범한 하루의 일정과 “나는 특별히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사천가〉와 〈억척가〉를 만들고 공연하던 시기에 쏟아졌다던 찬사와 같이 온갖 멋지고 화려하고 특별한 형용사들이 이자람을 수식할 것 같지만, 책 속에서는 다른 단어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고민과 망설임, 반성과 질문, 연습과 성장이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