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동네에 살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 회사나 학교, 가족 또는 경제적인 이유로 동네를 선택해 살게 된다. 나 역시 지금 사는 동네를 회사와 집을 오가는 정류장 정도로 여겼다. 지하철역에 내리면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기 바빴다. 동네에 책 읽기 좋은 카페가 있는지, 걷기 좋은 산책로가 어디인지 알지 못했다.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 때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는 ‘뜨는 동네’를 찾았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맞닥뜨리며 본의 아니게 동네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멀리까지 나가는 대신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가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기 시작했다. 하루는 이 골목, 또 다른 날은 저 골목을 걸으며 우연히 발견한 동네 카페와 식당에 정을 붙이니 매일 오가는 길이 다르게 보였다. 산책하기 좋은 둘레길, 사람들이 일부러 찾는 노포, 골목에 숨어 있는 내공 있는 바가 모두 ‘슬세권’에 있었다. 지난날 먼 길을 감수하며 취향에 맞는 공간을 찾아 헤맨 일들이 머쓱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