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책상의 시간
‘책상의시간’은 책상 앞에서 저마다의 가능성을 꿈꾸는 이들의 ‘시작’과 ‘지속’을 조명합니다. 책상 앞에서 쌓인 시간의 이야기로 영감과 용기를 전할게요.
나이는 경력의 증거가 아니다. 진짜 내공은, 얼마나 오래 했느냐보다 얼마나 깊이 들어가봤느냐로 판가름 난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명확히 알고, 하고 싶은 것을 향해 시간의 밀도를 쌓아온 사람. 그런 사람에게는 어떤 단단함이 있다.
로제의 <아파트> 뮤직비디오를 3D 애니메이션으로 커버해 유튜브에서 1천만 조회수를 찍고, 올데이 프로젝트, 에스파, 스트레이 키즈 등 엔터와 광고 업계에서 러브콜을 받으며 함께 협업하고 싶은 라이징 스타로 떠오르고 있는 3D 아티스트 김온유. 그의 나이는 이제 막 스무 살. 누군가는 ‘이제 시작하는 나이’라고 말하겠지만, 그가 쌓아온 시간은 결코 시작점에 머물러 있지 않다.
친구들이 모두 수능을 준비할 때 3D 영상 만들기에만 푹 빠져있던 고3 학생 김온유부터 뮤직비디오 감독 입봉작을 준비하는 지금까지. 어린 나이에도 부서지지 않는 단단함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힘일까.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지금의 내가 되었다고, 몸을 훈련시켜 쌓아온 시간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 그가 몰입해온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그 시작의 감각을 따라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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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끝내고 메일 보내드립니다’ 온유 작가님의 메일이 새벽에 도착한 것을 보고 놀랐어요. 보통 책상 앞에서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시나요? 작업이 새벽 늦게 끝나시나요?
정말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보니 일어나자마자 밥을 먹고 회사든, 집이든 앉아서 계속 작업을 하다가 자러 가는 일상이 끝입니다. 잠들고 일어나는 시간은 정말 매일 달라요. 좀 적게 자더라도 최대한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3일만 지나면 항상 깨지더라고요.
여기 이렇게 매일 수면 패턴을 재고 있는데요. 올해 들어 어두울 때 잔 적이 거의 없는 것 같긴 해요. 대부분 오전까지 작업을 마무리하고 낮에 잠이 듭니다.
작업을 하며 몰입하게 되다 보니 늦게 잠드시는 걸까요?
몰입을 해서 늦게 자는 것도 있겠지만 마감 시간을 지켜야 하거나, 요즘 같은 경우에는 많은 일들이 동시에 진행되다 보니 밤을 꼬박 새워 이틀 내 작업만 한 적도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몇 개의 프로젝트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어요?
지난달에는 프로젝트 4개를 동시에 진행하느라 조금 힘들었고, 최근에 전시회가 끝나서 지금은 2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지금까지는 3D 아티스트로 많은 활동들을 해왔는데, 3D 아티스트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감독으로의 입봉작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뮤직비디오 감독 첫 데뷔 준비를 하고 계셨군요! 혹시 어떤 작품인지 조심스럽게 여쭤봐도 될까요?
준비중인 작품이 8월에 공개 예정이라 구체적으로 얘기드릴 수는 없지만 한 아티스트의 신곡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데 총 감독을 맡게 되었습니다. 올데이 프로젝트의 티저 작업을 먼저 시작했는데 그 프로젝트가 잘 되어서 큰 프로젝트가 들어왔어요. 많은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보니 시간이 부족해서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 열심히 준비해 보고 있습니다.
감독으로서 첫 데뷔를 준비하는 기분이 어떠신가요.
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함께 일하는 팀원들에게 영향을 미치다 보니 부담감이 배로 드는 것 같아요. 제가 실수를 해서 안 해도 되는 작업을 팀원들이 하게 되면 헛수고가 되는 것이기도 하고, 더 힘들게 작업을 하게 되는 것이다 보니까 말의 무게가 전보다 훨씬 더 무겁다는 걸 느껴요.
작품의 퀄리티 뿐만 아니라 다방면으로 신경 써야 할 것들이 훨씬 많아지셨겠어요. 리더의 자리는 참 쉽지 않죠. 그나저나 작가님 안경이 참 독특해요. 감독님으로서의 카리스마가 느껴진달까요.
감사해요. 젠틀몬스터 안경인데 독특한 옆 라인이 마음에 들어요. 나이가 어리다 보니 현장에서 조금 더 프로페셔널 해 보일 수 있도록 마음에 드는 안경을 장만해 봤는데 카리스마가 느껴진다니 좋네요.(웃음)
초등학교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영상을 만들게 되셨다는 말을 듣고 참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요. 온유 작가님이 레고를 만들면, 아버님께서 레고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해 스톱모션을 만들어주셨다고요. 본격적으로 영상을 나의 일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동기가 있으셨는지 궁금했어요.
영상 만드는 일이 제 꿈은 전혀 아니었어요. 초등학생 때는 레고 디자이너가 꿈이었는데요. 초등학생 이후부터는 오히려 꿈이라는 것을 굳이 생각 안 하고 산 것 같아요. 꿈은 없는데 대신 좋아하는 게 좀 있었어요. 운동도 좋아하고, 레고도 좋아하고, 카메라를 다루고 영상 찍는 걸 특히 좋아했고요.
아버지께서 취미로 카메라를 다루는 일에 능숙하셨는데 그러다 보니 저도 자연스럽게 카메라로 찍는 걸 좋아했어요. 많이 찍다 보니 편집을 하고 싶어지고 편집을 배우다 보니까 기술적으로 부족한 부분들을 좀 채우고 싶어지더라고요. 기술 중에 최고의 난이도가 전 3D 쪽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3D로 왔는데 생각보다 3D로 표현할 수 있는 게 굉장히 광범위하다 보니 점점 촬영보다 3D 쪽이 좀 더 마음에 끌렸던 것 같아요.
꿈이 없는 대신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것들을 계속해서 좇아오신 거네요. 어렸을 때부터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으니 게임처럼, 놀이하듯이, 재밌게 영상을 만들지 않았을까 궁금했거든요.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보면 유튜브에서 어떤 사람이 만든 멋진 영상을 보고 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스튜디오 같은 걸 찾아서 시도해 보고 성공하면 기분이 좋고, 또 누군가의 멋진 영상을 보고 시도해 보고,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계속 해왔던 것 같아요.
작가님의 첫 작품 <JERRY BEER>를 봤을 때 저는 첫 작품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작품이 담고 있는 철학과 스토리, 연출 등이 너무 훌륭하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그때를 좀 돌이켜 보면 어떤 생각으로 그 작품을 만드셨나요?
3D를 시작하기 시작했던 그 해에 넷플릭스에서 ‘러브, 데스+로봇’ 시리즈를 봤는데 나도 저 정도의 퀄리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왠지 모르게 있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3학년 시작하기 전에 시놉시스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 당시에도 누군가의 작품을 보고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작을 하셨던 거네요.
네. 원래 영화과를 준비했다 보니까 시놉시스 쓰는 연습을 많이 했었는데, 영화 문법 지식과 3D 기술을 좀 더 엮어보면 더 재밌는 영상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쓴 시놉시스에 스토리보드를 그려서 영화학과 선생님들에게 피드백을 부탁드렸죠. 캐릭터라든지 간단한 배경, 미장센 같은 것들을 먼저 만들고 있으면서 부족한 부분은 계속 수정했어요. 스토리보드가 나왔을 땐 모션을 잡으면서 하나씩 콘티를 맞췄고요.
그렇게 4개월이 흐르고, 6월 18일쯤이었나 그럴 거예요. 그때 <JERRY BEER>라는 저의 첫 작품이 세상에 나오게 됐죠. 친구들이 진짜 잘 만들었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더라고요. 어쩌다 보니까 ‘한국예술종합학교’ 특기자 전형 포트폴리오로, 그리고 ‘대한민국청소년미디어대전’에도 출품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어요. 대학을 갈 생각이 아예 없었는데 그래도 한예종이면 한 번 해볼 만하지 않을까 싶어서 제출했어요. 다행히 저 혼자 합격을 했는데 정말 느낌이 이상했어요. ‘이게 되네’ 하고요.
친구들이 모두 수능 공부를 할 때 작가님은 영상 제작에만 몰입해 첫 작품을 만드셨던 거잖아요. 그렇게 만든 영상으로 대학교 입학까지 하게 되고. 감회가 정말 남다르셨을 것 같아요.
맞아요. ‘대한민국청소년미디어대전’에 제출했을 때는 제출 후 얼마 뒤에 연락이 왔어요. 혼자 만든 작품이 맞는지, 어떻게 혼자 만들게 됐는지 증빙 자료를 첨부해 달라고요. 제가 그동안 그려왔던 스토리보드를 제출했더니 1차 통과가 되었다고 연락이 오더라고요.
시상식에서 가장 마지막에 이름이 불리며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1등을 했고, 서울 시장님에게 상을 받게 되면서 신기한 기분을 느꼈어요. 그래서 그때 사람들이 내가 만든 애니메이션을 이렇게 좋아해 주는구나 하는 것도 처음 알게 됐어요.
좀 전에 ‘이게 되네’라는 감각을 처음 느꼈다는 포인트가 굉장히 뭉클했는데요. 작품을 통해 처음 느낀 감정이셨을까요?
제가 생각했을 때 그 용기는 보드를 타면서 알게 된 감각인 것 같아요. 어렸을 때 보드를 정말 많이 탔어요. 중학교 3학년 때 딱 처음 시작했는데 점프를 뛰기까지 6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 연습을 했거든요. 그때, 점프를 한 번 성공하니까 자신감이 좀 생기더라고요. 노력하면 되네, 이걸 그때 처음 느낀 것 같아요. 내가 진짜 열심히 몸을 훈련시켜서 딱 성공했을 때의 짜릿한 기분, 내가 못 했던 걸 해내고 나서의 자유로움을 느낄 때 정말 기분이 좋더라고요.
작은 성공의 첫 감각을 보드를 타면서 배우셨군요! 그리고 그때의 그 감각이 영상을 제작하면서도 이어져 계속해서 무언가를 도전하고 성공하는 것을 반복하고 계시는 거고요.
보드 탈 때 되새기는 게 어차피 실패해서 넘어져도 크게 다쳐봤자 뼈밖에 안 부러진다, 절대 죽지 않는다는 생각을 항상 하거든요. 그래서 첫 작품을 만들 때도 어차피 망해봤자 인생 망하는 거 아니라는 마인드로 작업을 했어요.
프로젝트를 할 때도 한 달에 네다섯 개 이렇게 했었잖아요. 그때도 진짜 이걸 할 수 있을지 두려움에 차 있었는데 이것도 했는데 못할 게 또 있겠어라는 마인드로 접근을 하다 보면 어떻게든 다 되더라고요. 걱정할 시간에 조금 더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노력해요. 사람들이 저에 대한 기대가 높다는 걸 인지하고 있어서 그 기대에 좀 더 부응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실패해도 뼈밖에 안 부러진다, 강렬하게 다가오는 말이었어요. 그럼 작가님은 작은 확신들이 쌓여 내 길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편이신거죠?
네, 저는 재능도 중요하지만 내가 갈고닦아온 시간과 노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노력한 시간은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않는 것 같거든요.
그런데 요즘 걱정되는 건 이렇게 하나씩 해내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이것도 되겠다’하는 마음으로 무리한 작업을 하게 될 때가 있을 거란 말이죠.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오인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항상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제 감독으로 데뷔를 준비하면서도 쉽지 않은 순간들이 많겠지만 작가님이라면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멋진 작품들을 계속해서 만들어주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업을 하며 가장 뿌듯할 때는 언제이신가요?
아무래도 제 영상을 보신 분들이 멋지다는 좋은 반응을 보내주실 때 가장 큰 뿌듯함을 느껴요.
ⓒ 김온유 작가의 유튜브 @ooonukim
이번에 로제 님의 <아파트> 3D 애니메이션 커버 영상이 천만 회가 넘었을 때는 어떠셨어요! 깜짝 놀라셨을 것 같은데요.
딱 조회수 10만 회만 나오면 좋겠다 하고 올렸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리그램해주시고, 아파트 뮤직비디오 감독님도 태그해 주시고, 천만 회까지 갈 줄은 몰랐는데 예상 못 했던 결과라 정말 놀랐어요. 로제 님 소속사에서 연락이 와서 이번에 올데이 프로젝트 그룹의 티저 영상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감독 입봉으로 이번 작업까지 할 수 있게 됐고요.
심지어 그때 에스파 위플래시 작업한 것까지 둘 다 같이 조회 수가 터져서 어안이 벙벙하고 신기했어요. 너무 한 번에 급진적으로 조회 수가 폭발되고 바이럴되다 보니까 좀 걱정이 되기도 했고요.
걱정이 됐다는 건 어떤 포인트였을까요?
반응이 너무 빠르게 확산되고, 좋은 프로젝트들이 많이 들어오다 보니 내가 너무 건방져지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그래서 평소에 늘 나를 객관화하려고 많이 노력해요.
요즘은 바쁘셔서 스케이트보드는 잘 못 타시겠어요.
네, 요즘 보드는 거의 못 타고 있어요. 제가 마스터하고 싶던 동작들이 몇 개 있었는데 그 동작들을 그때 마스터했어야 했는데 못해서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바빠서 보드를 타지 못하는 대신에 요즘엔 주로 책상에서 핑거 보드를 타요.
핑거 보드라니, 추억의 장난감이에요! 예전에 학창 시절에 핑거 보드 가지고 노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말이죠. 핑거 보드 말고도 책상에서 좋아하는 시간도 있으신가요?
작업을 시작하기 전엔 늘 타이핑웍스로 타자 연습을 합니다. 매일 10분 정도? 요즘 로프리 키보드에 빠져있는데 타이핑을 하다 보면 또각또각 소리와 키보드를 누르는 기분이 좋아요. 오타 없이 잘 쳐지는 날에는 괜히 작업도 쭉쭉 진행이 잘 되는 기분도 들고요.
작업 전에 타이핑웍스라니, 저도 한 번 해봐야겠는데요!
그리고 최근에는 일절 하지 않던 컴퓨터 게임을 시작했어요. 원래 보드 타고, 농구하고, 탁구하고 나가서 운동하며 노는 걸 좋아했는데 운동을 하면 이동하고, 운동하고, 씻으며 네다섯 시간은 훌쩍 지나가 있으니까 안되겠더라고요. 스트레스는 풀어야겠는데 짧게 틈을 내 쉴 수 있는 방법으로 어쩔 수 없이 컴퓨터 게임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시기도 분명히 있는 거니까요. 언젠가 다시 좋아하는 일을 맘껏 할 수 있는 날이 분명히 올 거예요.
맞아요. 이제 또 다른 시작 앞에 서 있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으니까요! 지금은 내게 주어진 것들을 또 하나씩 시도하고 작은 성공을 쌓아가며 저만의 길을 갈고닦아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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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함이란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해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의 결이다. 수없이 실패하고 넘어지기를 반복하며 끝내 도달한 작은 성취들이, 결국엔 다시 시작할 용기가 되어준다. 김온유 작가는 그 감각을, 좋아하는 보드를 타며 몸으로 먼저 익혔다. 그 단단한 몸의 기억이, 언젠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는 그의 말이 왠지 내 안에 오래 머물렀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자꾸 마음에 걸리는 질문이 하나 떠올랐다. ‘나는 정말 좋아했던 무언가를, 실패해도 끝까지 밀어붙여 본 적이 있었던가?’
✱ 3D 아티스트 김온유 작가님의 인터뷰 영상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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