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타고난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 능력의 정도와 깊이, 다양성에 따라 추구하는 삶의 방향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과거에는 특정 감각을 표출하는 일이 예민하거나 유별난 것으로 간주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평균보다 민감한 감각의 소유자들이 그를 바탕으로 전에 없던 참신한 결과물을 선보이거나 새로운 시각의 브랜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남들보다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을 가진다는 것은 어쩌면 크나큰 매력이자 장점이다. 자신이 궁금해하는 세계를 더욱 깊게 파고들거나 보다 다양한 시각과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으니까. 독일의 심리학자 롤프 젤린 역시 “예민한 감각은 특별한 재능이자 무기”라고 말했듯, 남다른 감각은 곧 독창적인 안목과 맞닿아 있다. 자신의 고유한 특질과 마주하고 내면을 발견하는 시간은 우리의 인생에 그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는 셈이다.
자신의 상상을 초현실적인 3D 세계로 창조해 내는 3D 그래픽 아티스트 성치영, 편안한 매트리스를 통해 온전한 휴식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김한정 디렉터, 작은 안경으로 보다 넓은 시야를 제안하고 싶은 윤지윤 디렉터. 자신의 타고난 직관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발휘하고 있는 세 사람에게 물었다.
“당신은 자신의 감각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나요?”
처음부터 3D 그래픽 디자인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더 넓은 분야에서 제 감각을 자유롭게 펼치고 싶어서 수업 시간에 접한 3D 프로그램을 심도 있게 배우기 시작했죠. 유튜브에서 궁금한 기술을 하나씩 습득하며 독학으로 실력을 쌓았는데, 작업할수록 흥미진진했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참가한 대규모 공모전에서 우승했고, 또 다른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자신감을 얻었죠. ‘오, 나 이거 좀 잘하는데?’ 생각했어요(웃음).
아이돌 뮤직비디오 작업을 시작하게 된 건 우연이었어요. 데뷔 전이라 아무런 정보 없이 맡았던 작업이 알고 보니 뉴진스의 ‘하입 보이’의 하니 버전을 위한 그래픽이었거든요. 그 뒤로 에스파, 르세라핌, 라이즈, NCT드림 등 반짝이는 아이돌의 뮤직비디오 장면들을 디자인하게 됐어요. 특히 에스파의 ‘아마겟돈’은 상상 속의 예술적인 크리처를 머리카락 한 올까지 온전히 만들어낸 작업이어서 유독 기억에 남아요. 팬들의 반응도 놀랄 만큼 뜨거웠죠.
이 모든 일이 2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일어났어요.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저에게는 가장 청춘인 시절에 일상생활이나 친구들과의 추억을 포기하고 열심히 일궈낸 성과예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고 공상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9개의 서로 다른 도시를 만들고, 각 도시에 성격과 언어를 부여하며 건물을 세우며 놀았죠. 현실에 없는 무한한 세계를 완성하기를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것 같아요.
간혹 타고난 재능과 감각은 뛰어나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남들이 좋아할 법한 작업만 하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자신의 진짜 내면을 드러내기가 창피하거나 두려울 수도 있죠. 하지만 제가 지금처럼 멋진 작업을 하게 된 것은 정형화되지 않은 저만의 고유한 색깔을 두려움 없이 꾸준히 드러냈기 때문이에요. 그런 도전이 예상치 못한 큰 기회로 이어지게 되죠. 지금은 정해진 콘셉트와 영역 안에서 전개해야 하는 작업이 많아 저의 감각과 취향을 모두 발휘한 결과물을 보여주긴 어렵지만, 언젠가는 저만의 스타일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요.
Interviewee 3D 그래픽 아티스트 성치영
‘콜미치’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3D 그래픽 아티스트 성치영은 남다르고 세련된 감각으로 창조적인 그래픽을 만들어낸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매력적인 터치와 화려한 색채 팔레트는 그만의 독보적인 강점이다. 케이팝 아이돌 뮤직비디오의 특별한 신을 창조하기 위해 그는 오늘도 수많은 낮과 밤을 지새우고 있다.
가구 회사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후, 동료의 제안으로 매트리스 브랜드를 창업했어요. ‘60초 안에 잠들고 60초 더 머물고 싶은 잠자리’라는 뜻을 지닌 ‘식스티세컨즈’의 시작이었죠. 처음에는 주변의 우려가 많았어요. 매트리스 하나만으로는 새로운 변화나 스토리가 부족하다는 의견이었죠. 하지만 저는 매트리스만큼 사람의 일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가구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매트리스가 불편하면 바로 다음 날 아침에 그 영향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어떤 매트리스에서 잠을 자느냐에 따라 하루의 컨디션과 감정, 건강 상태가 달라질 수 있는데, 이를 개선할 수 있다는 점이 매트리스 브랜드만의 매력이에요. 이제 식스티세컨즈는 편안한 매트리스와 침구를 제안하는 것뿐 아니라,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환경과 수면 루틴을 만들고 정신 건강을 돌보는 아이템도 함께 연구하고 있어요. 자신의 감각에 꼭 맞는 아이템을 찾는 것 역시 삶의 행복 지수를 높이고 본질적으로 수면을 돕는 방법 중 하나거든요.
어릴 때부터 소리와 냄새, 감촉에 민감한 편이었어요. 작고 마르고 조금은 예민한 아이였죠. 하지만 그 타고난 감각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일이나 삶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생각하려 했어요. 지금은 그 섬세한 감각들이 식스티세컨즈를 운영하는 데 다각도로 도움이 되고 있죠. 누구보다 자신의 기질을 정확히 바라보고 긍정적으로 인지하는 것에 노력을 기울여야 해요.
수많은 정보와 변화하는 트렌드 속에서 나 자신의 감각과 취향을 지키는 방법은 결국 내가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명확히 아는 일이에요. 그러면 한때의 유행에 눈길이 가더라도 결국 본연의 기준과 정체성으로 돌아오게 되거든요. 저도 SNS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면 일단 기록해 두지만, 모든 걸 그대로 적용하려 하지는 않아요. 간혹 눈에 띄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어떻게 식스티세컨즈답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부터 고민하죠.
Interviewee 식스티세컨즈 디렉터 김한정
무엇보다 수면과 휴식에 진심이기에, 60초 안에 잠들 수 있을 만큼 안락한 매트리스를 제작한 지 어느새 10년이 넘었다. 재료, 설계 방법, 제작 프로세스에 따라 섬세하게 달라지는 매트리스를 연구할 때 그의 세밀한 감각이 더욱 빛을 발한다. 브랜드의 노하우와 철학이 담긴 제품들은 공기마저 편안하게 느껴지는 식스티세컨즈 도산과 라운지에서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윤’은 30년간 렌즈 제조 회사를 운영해 오신 아버지와 함께 이끌고 있는 안경 브랜드예요.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관련 회사에 다니다가 새로운 도전을 해보기로 결심했죠. 안경 디자인이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분야라, 현장에서 하나씩 부딪히며 배워야 했어요. 아버지께서 좋은 선생님이 되어주셨죠. 패션 회사에서 일했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트렌드를 캐치해 컬렉션에 적용하는 방식이나 제품을 촬영하고 브랜드의 방향성을 콘텐츠로 표현하는 과정은 비슷하기 때문이에요.
안경은 이성과 감성이 조합된 결과물로, 여러 가지 감각을 균형 있게 사용해야 해요. 단순히 아름답기만 해서는 좋은 안경이 될 수 없고, 기능적인 외형과 미적인 감각을 모두 만족시켜야 하죠. 새롭게 개발되는 안경 재료의 물성과 특성도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고요. 이전에는 몰랐던 분야들을 접할 때면 가끔은 ‘내게 이런 감각이 있었나’ 싶은 순간도 있어요. 윤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저의 잠재된 수많은 감각이 일깨워지고 있는 거예요.
텍스타일 디자인 스튜디오 ‘쿤스트 호이테’, 일본 가방 브랜드 ‘템베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오유’, 가방 브랜드 ‘덱케’ 등 윤의 이념과 결이 맞는 브랜드들과 꾸준히 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안경을 매개체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브랜드의 범위를 확장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죠. ‘윤의 안경을 착용하는 사람들은 어떤 물건과 문화를 좋아할까’를 늘 상상하며 브랜드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어요.
윤은 안경을 통해 다양한 시야의 확장을 이끄는 브랜드예요. 안경이 단순히 눈을 보호하고 시력 교정을 돕는 아이템에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 안경을 통해 사람들이 더 건강하고 편안하며 균형 잡힌 삶을 지향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안경 형태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존재하지만, 작은 디테일의 변화만으로도 사용자의 인상과 스타일이 단번에 바뀌는 액세서리는 안경이 유일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Interviewee 윤 디렉터 윤지윤
아버지와 함께 시작한 안경 브랜드 윤은 독일 베를린에 첫 쇼룸을 오픈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베를린에서의 성공은 서울로 이어졌고, 도시 곳곳에 위치한 윤의 쇼룸에서는 매 시즌마다 감각적인 안경이 새롭게 등장하며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과 전시, 이벤트가 지루할 틈 없이 계속 펼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