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디퍼 칼럼
디퍼 칼럼은 필진마다 3회 차에 걸쳐 하나의 주제를 풀어가는 연재물이며, 책상에서의 몰입을 통해 성장한 인물들이 배움, 창작, 일 등에 대한 심층적인 사유와 정보를 전합니다. 새로운 지식이 뇌를 자극할 때, 기분 좋은 깨우침이 일어날 거예요.
올여름 나는 다시 책상 상판을 깎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책상이 될지 테이블이 될지 모르는 원목 판이다. 석 달에 한 번 열리는 원목 바자회에 갔다가 홀린 듯 샀다. 무늬도 멋있고 가격도 적당했고 무게도 가벼웠고 크기도 적당했다. 그 나무를 친한 가구 제작자의 공방에 가져가서 표면을 다듬기 시작했다.
원목 표면을 다듬는 건 생각보다 까다롭다. 육체적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어디까지 다듬을까’를 정하기가 어렵다. 이 나무토막 같은 경우는 측면이 사실상 원목 상태라 무척 거칠다. 이걸 어디까지 갈아내야 할까? 너무 갈아내면 느낌이 안 사고 안 갈면 뾰족해 위험하다. 이 나무판은 곳곳에 구멍도 많다. 그 구멍을 어디까지 메꿔야 할까? 구멍을 메꾸는 플라스틱에는 색소를 섞을 수도 있다. 어느 색을 섞어야 할까? 색을 넣지 않는 게 나을까?
이렇게 답 없는 고민을 하다 보면 표준화된 공산품이 얼마나 편리한지 깨닫는다. 의사결정은 세세하게 하다 보면 끝도 없다. 누군가가 생각해서 제작해 준 걸 그냥 사기만 하는 것도 생각보다 좋다. 이런 요소들을 느끼며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이 나무판을 어디 쓸지도 고민이다. 책상으로 쓸까 작은 다이닝 테이블로 쓸까. 책상으로 쓴다면 어디에 둬야 할까. 망상은 환승역처럼 끊이지 않고 이어져서 결국 이 질문에 닿는다. 나의 다음 책상은 어때야 할까. 나는 어떤 책상을 원하는가.
이상적인 책상에 대한 나의 첫 질문은 이거다. 기성품이 좋을까 맞춤이 좋을까. 가구를 몇 번 사보고 주문해 본 입장에서는 이제 둘 다 상관없다. 맞춤이 아니어도 된다. 내 마음에 들면 기성품이어도 좋다. 만약 맞춘다면 ‘맞춤 책상’ 특유의 요란한 느낌이 전혀 안 들게 맞추고 싶다. 누군가 그 이상적인 책상을 본 뒤에도 “맞춤이었어? 몰랐어”라는 소감이 나오는 책상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헌것도 자주 사기 때문에 신품과 빈티지 중에선 뭐가 좋을지도 생각한다. 여기서도 나는 중간을 원한다. 신품을 산다면 너무 새것처럼 보이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 동시에 빈티지를 산다면 너무 헌것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옛날 남성복 광고 카피 중 ‘방금 사도 1년 된 것 같은 옷, 10년을 입어도 1년 된 것 같은 옷’ 같은 게 있었다. 그런 책상이면 딱 좋겠다.
개념적인 것 말고 실질적인 기능은 어떨까. 오늘날 책상의 요소들은 갖춰야 할까. 말하자면 오늘날의 필수품인 전기 친화도를 얼마나 갖춰야 할까. 모니터 암이나 전동 높낮이 조절 장치 같은 것들은 있는 게 좋을까 없는 게 좋을까. 내게는 이것도 정도의 문제다. 나는 최첨단 책상을 원하지 않으나 중세의 수도사 같은 책상을 원하지도 않는다. 전체적인 완성도가 중요하다. 전자적 기능이나 옵션을 넣을 거라면 처음부터 설계된 것처럼 흠 없이 매끈하거나, 아니면 파리 퐁피두 센터의 구조처럼 각종 구조체를 다 드러내거나. 나는 예전부터 의도와 맥락에 관심이 있었다. 단순히 예쁘다거나 인기 있거나 하는 요소들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돈 쓰고 줄 서서 사면 남들이 알아봐 주는 물건들에 나는 관심이 없다.
의도와 맥락이 중요하다면 조금 더 막연한 의도와 맥락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이를테면 이상적인 책상 같은 게 과연 필요할까? 책상의 이데아보다, 내가 책상에서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닐까?
적어도 나의 지난날은 그랬다. 내 삶은 예나 지금이나 보잘것없지만 나름 보잘것없음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살고 있다. 그런 생각으로 내가 여러 일들에 열중하고 있을 때 내가 쓰던 책상들은 전혀 고급스러운 책상이 아니었다. 값비싼 물건을 구경한 뒤 신데렐라의 호박마차 같은 대중교통을 타고 집으로 돌아온 뒤. 내가 뭔가를 열심히 해 나가고 생각하고 있을 때 내 책상이 어떤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생각이 비행이고 책상이 활주로라면 일단 날아오른 뒤엔 책상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요즘 직업상 요즘 물건 이야기를 할 때가 많다. 그때 내가 조심하는 부분이 이것이기도 하다. 솔직히 고급 책상에 대한 양적인 이야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공학적 설계, 값비싼 재료, 매끄러운 디자인, 공예적인 마무리. 그 덕에 한 마리 돌고래처럼 매끄럽고 값비싼 책상. 세상엔 그런 물건에 대한 동경도 있는 걸 안다. 하지만 그런 식의 물건 이야기는 결과적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을 소외시키는지도 모른다.
이상적인 책상을 떠올릴 때 나는 세상 어딘가에서 조금은 열악한 책상 앞에 앉아 뭐든 열심히 해 보려는 분들을 생각한다. 그 책상에서 공부를 하든, 편지를 쓰든, 뭔가 세상에 없던 걸 만들어내든, 가장 중요한 건 그 안에서 무르익어가는 그들의 꿈과 노력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책상이 가장 아름다운 책상이라고 여긴다. 열악한 상황 속에 계신 분들께 알고리즘이 우연히 내 원고를 띄웠는데 거기에 ‘값비싼 것 어쩌구’라는 내용만 가득하다면? 그 내용이 그들에게 말 못 할 불편감이나 허망함을 준다면? 나는 내 열악했던 시간을 기억하기 때문에 마냥 그런 식의 물신숭배적 원고를 적을 수가 없다.
그러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누군가 그 앞에 앉아 꿈을 꾸며 노력하고 있는 책상이 가장 아름다운 책상이라고. 그 책상 위에서의 시간이 당장은 고통스러워도 나중에 보면 자신을 만들어낸 시간이었음을 깨달을 거라고. 나 역시 지금 내 삶의 시점에서 가질 수 있는 이상을 따라가고 싶다. 나무 냄새 나고 조금 좁은 나의 원목 책상 위에서. 그러고 보니 내 이상이 커나가는 책상이 내게 이상적인 책상 같다.
The End.
✱
🖋️ writer. 박찬용 @parcchanyong
에디터, 저자. <크로노스> <에스콰이어> <아레나> 등에서 일했다. ⟪모던 키친⟫등 책 6권을 냈다. 현재 다음 책들을 작업하고 있다.
시간을 들여 오래된 집을 고친 뒤 더 오래된 사무실을 고치려는 중이다.
Illustration Daeun Jung
𝗘𝗱𝗶𝘁 Haeseo Kim
𝗗𝗲𝘀𝗶𝗴𝗻 Jaehyung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