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LINE]
[00:00-00:55] 센스 있는 막내가 되고 싶어
[00:56-02:04] 좋은 정보를 널리 알리려는 책임감
[02:05-02:21] 소소하고 작은 성과 이루기
[02:22-02:45] 나의 성장은 지역에 뿌리내리는 것
“막내야, 오늘 뭐 먹으러 갈까?” 신입 사원에게는 종종 팀 구성원의 입맛을 두루 고려하면서도 뻔하지 않은 메뉴를 제안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진다. 증권 회사에 근무하는 황인호 역시 신입 시절에 ‘젊은 피’의 센스를 보여주기 위해 여의도 맛집 지도를 부단히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의도 구석구석을 누비며 혼자 알기 아까운 맛집 데이터를 모았고, 이를 바탕으로 인스타그램 계정 ‘여의도 테이스티(@yeouido_tasty)’를 열었다. 친구에게 일기장을 보여주듯 가볍게 시작한 일이었는데, 5년이 흐른 지금은 약 2만 7천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여의도의 대표 로컬 큐레이터 계정으로 성장했다. 이제는 맛집을 리뷰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의 음식을 주제로 한 ‘모음집’ 콘텐츠를 기획하거나 여의도의 다양한 생활 정보를 소개하는 등 활동 범위도 한층 넓어졌다.
‘모음집’은 같은 메뉴를 판매하는 여러 식당을 묶어 소개하는 콘텐츠다. 예를 들어 순댓국을 주제로 삼았을 때는 여의도의 순댓국집을 돌아다니며 한 그릇 안에 들어간 순대와 머릿고기 양, 밑반찬 구성과 가격 등 다양한 기준으로 가게들을 비교 분석했다. “돈가스 편을 준비할 땐 ‘이제 더 못 먹겠다’ 싶어서 잠시 쉬어 가느라 취재를 끝내는 데 반년이나 걸렸죠(웃음). 그래도 여의도에서만큼은 그 음식에 대해 완전히 통달했다는 뿌듯함이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만의 시각으로 편집한 큐레이션 콘텐츠가 늘어나면서 여의도 테이스티만의 색도 점차 뚜렷해졌다.
여의도 테이스티의 시작이 회사 생활을 더 잘하기 위한 고민에서 비롯된 만큼, 계정의 성장은 황인호 ‘본캐’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조직에서 일하다 보면 내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일이 많잖아요. 여의도 테이스티 활동은 게시글 하나하나가 저의 성취이고,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자신감을 충전하는 창구가 돼요. 덕분에 다시 힘을 내어 업무로 돌아갈 수 있죠. 오늘 방문할 식당이 미리 정해져 있으면 출근길이 더 즐거워지는 효과도 있고요(웃음).”
여의도 테이스티를 키우기 위한 도전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오프라인 모임을 여는 것이 다음 숙제였어요. 평범한 직장인인 저로서는 팔로워 분들과 직접 만나는 일이 정말 떨리더라고요. 하지만 용기를 내어 자리를 마련하고 소통하니 든든한 아군이 생긴 기분이 들었고, 함께 도모할 수 있는 일도 새롭게 그려보게 되었어요.”
황인호는 여의도 불꽃축제로 인한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는 기사를 읽고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고는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행사 다음 날 여의도 일대의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 행사를 열었다. 로컬 큐레이터의 역할에 ‘여의도를 지키는 일’까지 포함하게 된 것이다. “갈수록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꾸준히 노력해 오신 가게 사장님들, 그리고 제 리뷰에 피드백을 주시거나 몰랐던 공간을 제보해 주신 팔로워 분들 덕분에 여의도 테이스티가 존재할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여의도의 좋은 공간과 소식을 찾아 알리려는 책임감이 더 커졌어요.”
이제 여의도는 그에게 ‘일하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지역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여의도에 뿌리내리며 직장인으로서의 삶도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고, 로컬 큐레이터로서 뜻밖의 만남과 놀라운 성장을 경험했다. 근무 지역을 단순히 ‘회사가 있는 동네’쯤으로 여겨왔다면, 이제 그 안에 각자의 관심사와 흥미를 투영해 보는 것은 어떨까? 매일 오가며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변화와 이야기가 분명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