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명
에코 (Echo)
의미
‘에코’라는 단어의 모양과 소리, 뜻을 예전부터 좋아했다. 레게에서 에코는 악기라고 봐도 좋을 만한 테크닉이다.
탄생 시기
2021년 4월
핵심 가치
레게의 태도와 무드를 기본으로 다양한 장르를 즐길 수 있는 대중음악 감상실.
브랜드 준비 초기에 가장 많이 했던 질문
Q. 어떻게 하면 완벽한 음악 바를 만들 수 있을까?
모두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나 완벽한 공간이란 존재할 수 없다. 나의 관점으로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음료부터 인테리어까지, 그 선택의 이유를 잘 찾는 것이 곧 완벽함의 윤리라고 생각했
성장 포인트
수익만 두고 본다면 에코는 비효율적이다. 나는 이곳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여흥으로 공간을 운영할 정도로 부자도 아니다. 하지만 에코는 개인적인 눈높이를, 또 서울의 눈높이를 높여보려는 시도다. 과정이 힘들더라도 한번 높은 곳에 닿고 나면 그 아래로 내려가기는 좀처럼 힘들다.
에디터, 뮤지션, 음악 페스티벌 프로그래머… 본업과 사이드 프로젝트 사이 여러 정체성을 갖고 있었죠. 거기에 ‘레코드 바 오너’라는 한 줄이 추가됐어요.
10년 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어요. 프리랜스 디렉터로 재택근무를 시작하자 이전과 비할 수 없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죠. 그 와중에 전 세계적으로 레코드 바 붐이 있었고요. 오랜 친구와 농담을 나누다가 순식간에 하게 됐어요.
다른 레코드 바에는 찾아보기 힘든 에코만의 특징이 있을까요?
서울에서 자메이칸 사운드 시스템이 있는 유일한 공간이에요. 장르에 제약은 없지만 일관되게 레어 그루브를 추구하며, 한 장 한 장 레코드로 튼다는 점도 지켜가려는 부분이에요.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게 스피커예요.
에코의 시작은 자메이칸 사운드 시스템을 갖고 싶다는 사심이었어요. 오랫동안 사운드 시스템이 없는 한국에서 레게를 즐긴다는 게 불운하게 느껴졌거든요. 음향적으로 레게를 들을 때 그보다 더 나은 선택이 없는데 출력이 커서 야외나 큰 공간이 아니면 소화하기 어려워요. 너무 특별하지만 시도해볼 수 없는 꿈이었죠. 그러다 일본의 작은 술집에서 소형으로 개량한 시스템을 본 거예요. 아 이게 가능하구나. 나도 할 수 있겠구나. 나고야의 제작자와 상의하며 사운드 시스템을 구축했어요.
레코드에 대한 이야기도 할게요. 어째서 바이닐만을 트는 뮤직 바를 생각했나요?
오랫동안 레코드를 디깅하며 제가 음악을 듣는 방법의 루틴이 됐어요. 에코는 자연스러운 결론이었죠. 잘 갖춰진 시스템에서 오리지널 레코드를 틀면 그 음악의 가장 이상적인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하지만 바이닐이 음향만의 문제는 아니에요. 인류의 온갖 음악적 유산이 묻힌 광산이니까요. 오래전 바이닐로 생산된 음악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12인치와 7인치 싱글에 담긴 수많은 버전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해요.
레코드를 처음 모으기 시작한 계기가 기억나세요?
2000년 즈음 힙합 그룹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가 운영하던 ‘레어 그루브 라디오’를 정말 열심히 들었어요. 곡목과 함께 음악만 24시간 틀어주는데, 전부 새롭고 독특했어요. 그런데 이게 대부분 80년대 이전 음악들인 거예요. 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제게는 90년대야말로 첨단이었거든요. 음악 스트리밍도 없던 시절이라 한 곡 한 곡 전부 기록해두고 인터넷에서 찾는데, 전부 CD가 아닌 바이닐 레코드로만 구할 수 있었어요. 호기심이 일었죠. 세상에 재미있는 음악이 이렇게 많다니
20년 전 국내에서 원하는 레코드를 디깅하기는 쉽지 않았겠죠?
가요에 관심이 있었다면 또 달랐겠지만, 그때 저는 해외 음악들을 주로 디깅했거든요. 하지만 진짜 열심히 디깅하는 디제이들은 그때도 원하는 판들을 찾았어요. 열심히 디깅한다는 건 중고 음반점의 A부터 Z까지 모든 판을 다 보는 거예요. 쉽지 않죠.
정말 ‘채굴’이라는 표현이 붙을 만 하네요. 사금을 캐는 광부들 이야기 같아요.
맞아요. 그런데 저는 무모하게 디깅하지는 않았어요. 상대적으로 좋은 음반을 쉽게 발견할 확률이 높은 해외에 나갔을 때 열심히 디깅했고, 대부분 인터넷으로 샀어요. ‘문제의식’이라는 표현을 좋아하는데, 제 문제의식 안에 들어오는 음반들 위주로 디깅하는 효율을 추구했으니 전통적 의미에서 디깅이라 불러도 될지 모르겠어요.
콜렉터보다는 디제이 혹은 에디터에 가까운 태도처럼 보여요.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음반 콜렉터라고 생각한 적 없었어요. 부자였다면 수집가가 됐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효율적인 소비를 할 필요가 있었어요. 또 하나 중요한 욕구가 있어요. 좀 더 나에 가까운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찾고 싶다. 그래서 모으기보다 버리는 게 더 의미 있었죠. 내 것이 아닌 듯한 음반들은 중고로 팔고, 한정된 재화를 돌리며 콜렉션을 압축하려고 노력해요. 10대 시절부터 쭉 그랬어요.
‘나에 가까운 것’을 생각해왔다면, 디깅은 당신을 성장시켰을까요?
그럼요. 제게는 엄청나게 긴 실패의 목록이 있어요. 음악을 좋아하고 그 안에서 선택을 거듭하며, 결국 내가 아니었던 것들을 택한 경험이 있잖아요.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 하죠. 스스로를 더 잘 알아가는 거예요.
‘문제의식 안에 들어오는 음반’ 이란 어떤 걸까요?
작년 여름 태평(太平)이라는 믹스테이프를 발매했는데, 그때 디깅한 가요 음반들이 좋은 예가 될 것 같아요. 가끔 파티에서 디제잉을 할 때 룰라, 투투, 마로니에 같은 레게팝을 틀곤 했어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보며 한국 레게를 디깅해보고 싶어졌죠. 그런데 오랫동안 생각만 했어요. 국내에 레게가 잠깐 유행했던 90년대 한철, 그때 나온 음반들이 전부일 거 같았거든요. 그러다 조금씩 찾아보기 시작하고 관심을 가지니 이미 알던 노래가 다시 들렸어요. 이를테면 신촌블루스의 ‘골목길’이 루츠 레게라는 건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는데.
에코에서 플레이하는 음악도 레게 중심인가요?
에코는 레게의 태도를 갖고 있지만, 레게만 트는 공간은 아니에요. 모든 장르를 선곡하죠. 앤드류 웨더롤이라는 프로듀서가 영국의 펑크 밴드 클래시에 대해 한 얘기가 있어요. 웨더롤의 또래 친구들은 스스로를 특정한 장르로 정의해둔 상태였다고 해요. 스카보이가 되고 싶은 친구, 펑크록 뮤지션을 목표로 하는 친구도 있었죠. 그러나 클래시의 음악을 들으며 웨더롤은 자신이 어떤 선택도 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죠. ‘너는 그 모든 것이 될 수 있다’고. 저도 같은 입장이에요. ‘이 공간, 이 음악의 흐름은 레게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만들었다’고 손님이 느낄 수 있으면 충분할 것 같아요.
손님 입장에서 에코의 관점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은 음악 외에도 다양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공간 어디를 보나 세 가지 키컬러가 눈에 띄어요.
에코의 핑크, 연노랑, 연두는 ‘라스타파리언 컬러’로 알려진 레드와 골드, 그린을 조금 비튼 결과예요. 디제이 부스와 로고, 굿즈까지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어요. 라스타 컬러의 역사적 맥락이 있는데, 예를 들면 레드는 ‘희생당한 아프리카인의 피’에요. 그게 지금 서울에서 의미를 갖긴 어렵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핑크가 21세기의 역사성을 잘 보여주는 컬러 아닐까요?
레게지만 동시에 콘셉트나 기획으로서의 레게가 아니려는 결심처럼 들려요. 에코는 뮤직 ‘바’니까, 드링크 리스트는 어떨까요?
저는 값싼 술에도 행복했던 사람이라 술을 잘 안다고 할 수 없었어요. 주류 라인업을 결정하기까지 술에 대한 공부와 전문가 친구들의 조언, 제 이유가 계속 필요했죠. 예를 들면 에코에서 토닉 워터 기반의 한국식 하이볼을 팔고 싶진 않았어요. 그건 위스키를 조금 가볍게, 마시기 좋게 만드는 하이볼의 역할을 왜곡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이름도 굳이 귀찮게 ‘위스키 앤 소다’라고 붙였어요. 캐리비안 클래식 곡 ‘위스키 앤 소다Whiskey and Soda’도 있고요.
오리지널 칵테일 러버스록은 레게 장르로부터 이름을 따왔죠.
러버스록은 70년대 영국의 자메이카 이주민들에 의해 폭발한 장르에요.영국과 자메이카의 술이 만나면 좋겠다는 막연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영국 리큐어와 자메이카 럼을 섞는 실험을 하다가 탄생했어요. 칵테일을 선보일 즈음, 러버스록 파티와 스웨트셔츠도 함께 준비했죠.
그야말로 바는 술과 음악, 스타일이 함께 모이는 현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당신에게 음악과 레코드, 더 나아가 이 공간은 앞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에코에서 음악을 틀며, 지금 우리가 미국 음악 이외의 낯선 음악에 대해 열려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됐어요. 저는 영국과 미국에만 사로잡혀 있던 세대가 답답했던 사람이거든요. 2010년대 이후 클럽 문화의 부흥, 유튜브의 광대한 데이터베이스가 불러온 것은 정보가 아니라 오히려 음악에 대한 호기심과 태도인 것 같아요. 그 호기심과 태도를 새로운 세대와 계속 나누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