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호탄은 힙합 음악에 빠져 있던 사람이었다. ‘THE GOOD BOYS’라는 동갑내기 친구 두 명과 힙합 트리오를 꾸려 다섯 곡의 앨범을 낸 래퍼이기도 했다. 음악밖에 몰라 미술에 문외한이었던 그는 우연히 콜라주 전시를 보게 되면서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어느 작가의 어린 시절 사진으로 만든 콜라주 작품을 보고 말이다. 당시 그는 아티스트란 본인만의 이야기를 전달할 때 진정한 멋이 나온다고 생각하던 때였으니 은유를 적절히 섞어가며 풋내기 시절의 꿈을 표현한 작품에 마음을 뺏길 수밖에 없었다. 문득 조던 신발을 신고 덕수궁 앞에서 찍었던 어릴 적 사진 한 장이 떠올랐고, ‘내 사진으로도 저렇게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는 집에 돌아와 자신이 모아둔 재료를 한데 모았다. 어릴 때부터 물건을 잘 주워 오고 잘 버리지도 않았기에 의외로 쓰일 것들이 넉넉했다. 제품 태그와 스티커, 신발을 사면 달려오는 부자재들을 비롯해 언제 모았을까 싶을 정도로 수집해두었던 재료들을 책상 위에 흩트려 놓고, 사진 위에 제멋대로 배치하면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에 몰두했다. 처음 해보는 작업이라 모든 과정이 즉흥적이었다. 이토록 순간적인 감정들에 집중하고 있으니 음악을 만들 때 받았던 자기 검열과 압박감이 한데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창작으로 받은 스트레스를 또다시 창작으로 풀었어요. 기준점도 없었고 뭐가 잘하는 건지도 몰랐기 때문에 더욱 마음대로 할 수 있었죠.” 그렇게 콜라주에 매료된 그는 좀더 본격적으로 콜라주의 재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콜라주를 시작한 지 6년이 흐른 지금, 그가 수집하는 재료에는 이렇다 할 구분이 없다. 길을 가다 받은 전단지나 카페에 비치된 티슈, 버려진 쓰레기들이 작품에 녹아든다. 쓰레기일지라도 예뻐 보이면 거리낌 없이 주머니에 넣는다. “버려진 물건이나 고서적을 구할 때는 동묘에 많이 갔어요. 분리수거장에서 버려진 박스들을 주워 와 캔버스로 사용한 적도 있죠.” 그 말을 들으며 둘러본 그의 작업실에는 일상에서 발견한 오브제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영수증, 테이프, 잡지에서 오려낸 페이지들, 라벨 등이 작품 속 재료로 탈바꿈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용도가 다한 것들에서 어떤 매력을 발견하는지 궁금해졌다. “익숙하지만 조금씩 낯선 것들이 멋있어 보여요. 쓰레기야말로 우리에게 제일 익숙한 거잖아요. 그래서 일상에서 가장 흔히 접하는 존재들을 작품으로 멋있게 승화시켜보고 싶었어요.” 그의 작품을 보는 대부분의 관객은 단번에 재료를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한다. 쓰레기로 만든 작품이라고 말하면 대체로 놀라워 하는데, 그는 이런 장면들에서 일종의 통쾌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에게 재료는 악기로 비유하면 베이스 기타다. 주인공은 아닐지라도 기초를 책임지는 존재. 그 위로 멜로디를 얹고 리듬을 만들 수 있도록 재료는 후방에서 든든히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재료가 있기 때문에 시각적인 질감을 갖출 수 있고, 메인 이미지를 그려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좋은 재료를 발견하기 위해 특별한 곳을 찾기도 할까. 예쁜 쓰레기가 유독 잘 나오는 곳들 말이다.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장소는 없어요. 정말 다양한 곳에서 재료를 들이거든요. 다만 작품의 메시지를 얻는 곳은 주로 정해져 있어요. 작업 시간 외에는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는데, 거기에서 메시지를 얻어요.” 그는 격렬하고 극적인 감동이 있는 작품들, 특히 클라이맥스가 절정으로 치닫는 작품들에서 느낀 감상을 작업에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작품의 제목은 대개 ‘비상’, ‘질주’, ‘진격’ 등 여러 개념이 함축된 단어들로 이루어진다.
우연성에 기대어 수집하는 그이지만, 그런데도 눈에 띄는 재료들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이국적이고 채도가 높은 원색이라는 점이다. 오브제가 켜켜이 쌓이는 느낌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친숙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이질적인 재료를 선호한다. 코로나19 전에는 외국에 나가는 지인의 소식을 들으면, 곧장 연락해 그곳에서 받은 영수증을 버리지 말고 갖다 달라며 부탁할 정도였다고. 한편 의도적으로 수집하지는 않아도, 모으고 나니 일종의 공통점을 발견하기도 할 텐데 그에겐 사람의 형상이 그랬다. “최근에 제 작품들을 한군데에 모아두고 훑어보니까 대부분 사람이 등장하더라고요. 스크랩해 둔 자료들도 사람의 얼굴 혹은 특정 부위, 전신 등이 나온 것이 많았고요.” 그는 사람의 모습에 특정 요소를 추가하거나 신체에 레이어를 덧대어 다른 이미지를 연출할 때 흥미로움을 느낀다. 그러면서 자신이 사람과 어울리는 걸 좋아한다고 덧붙였는데, 모르는 사람과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 보내는 걸 유독 즐기고 아낀다. 이따금 수집한 것들에서 사람의 성향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우연히 콜라주 작품을 보게 되고, 자신도 그 길로 접어들기까지의 과정을 지탱했던 콜라주의 매력은 무엇일까. “콜라주는 세상의 모든 것이 예술의 재료가 되고, 누구나 재료를 발견할 수 있어요. 프로모션 용도로 제작된 전단지라고 할지라도 전단지라는 기능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면, 정말 훌륭한 비주얼 요소로 쓰임새가 확장될 수 있거든요.” 그는 이 말이 자신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대변한다고 말했다. 아마도 그는 이 순간 자신이 깊게 들여다보지 않고 허투루 지나쳤다면 작품으로 승화하지 못했을 재료들을 떠올렸을 거다. 그의 말은 결국 누구나 컬렉터가 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대단한 무언가를 모으는 게 아닐지라도 혹은 당장 거창한 의미를 찾을 수 없을지라도 수집하는 행위나 결과물이 미래의 나의 아이디어를 끌어내는 자극제가 될 수 있다는 걸 자신이 증명하고 싶은 듯 보였다.
낭비되고 용도가 다한 쓰레기와 예술 작품 사이엔 간극이 크기도 할 터. 그는 간극을 줄이기 위해서 어떤 고민을 할까. 그의 답은 명쾌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을 만들려고 노력해요. 그럴 때 저는 불시에 찾아오는 영감을 믿어요. 전적으로 영감에 의지하고 있어요.” 영감에 더해 자주 사용하는 기법이 있는데, 기존 이미지를 그대로 붙이기보다 말풍선을 추가해 넣거나 상반된 이미지를 얹는 등 위트를 더하는 식이다. 재료가 가진 기존 성질을 뛰어넘어 다시 구상하고 변형하는 것. 하나의 이미지로 촉발된 머릿속 상상을 시각화하는 작업은 초기의 상상과 비슷하게 나오기도 하지만, 의도한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이 연출되기도 한다. 이게 바로 콜라주가 유발하는 위트이자 이름다움이다.
워낙 다양한 질감의 재료를 사용하는 만큼 작품에 통일성을 갖추기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오브제의 질감을 만져보면 머릿속에서 완성본이 그려져요. 이를테면 테이프나 비닐 같은 재료를 사용하면 작품에서 매끈하고 탄탄한 느낌이 나고, 살짝 이염된 지류나 두꺼운 박스를 사용하면 좀 거칠고 빈티지한 효과가 묻어나죠. 그것들이 만들 효과를 상상하면서 일관성을 갖추고 있어요.” 재료만 만져도 어느 정도 질감이 가질 분위기가 떠오른다고. 또 접착제에 따라 풍기는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주로 사용하는 본드나 테이프, 풀 외에도, 벽화 작품을 할 때는 래커 스프레이 본드를, 자연스럽게 묻어나길 원하는 작품이라면 아크릴 물감을 접착제로 사용한다. 캔버스 하나에 담길 수 있는 것들이 이렇게나 다양하다.
최근 그는 수집한 재료를 활용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표현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제 인생 시리즈의 1편이 시작된 것 같아요. 제가 그동안 쌓아온 아이덴티티를 보여주고 증명하면서 아티스트로서 이제 막 이야기가 발화되는 자리였어요.” 전시장에는 별도의 캡션이나 도슨트를 마련하지 않았다. 어떠한 해설도 주어지지 않았으니 질감 위주로 보는 관객도 있겠고, 조그맣게 쓰인 글씨에서 영감을 받는 사람도 있을 테다. 자유로운 해석을 위한 전시는 그의 작업 방식과도 닮아 있다. 규칙 없이 재료를 수집하고 하나의 이미지를 완성해가는 그처럼, 관객 또한 캔버스를 통해 무한의 세계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