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윤진은 수프나 쿠키의 포장지도 잘 모은다. 그러나 특히 시리얼 박스가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게 된 데에는 좀 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뉴욕이라는 낯선 환경에 놓여 있을 때 혼자 헤쳐 나가야 한다는 부담감 속에서 시리얼은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의 주에너지원이었기 때문이다. “저는 늘 아침을 챙겨 먹어요. 뉴욕 생활을 하면서는 일부러 더 잘 챙겨 먹으려고 했어요. 대단하게 차려 먹을 시간도 없고, 따로 챙겨 주는 사람도 없었으니까요. 이때 제일 쉽고 맛있고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게 시리얼이었어요.” 그때부터 시리얼은 그에게 하루를 시작할 용기를 주는 존재가 됐다.
지금까지 구입한 시리얼만 500박스. 애용하는 직구 사이트의 신상품 업데이트 주기가 너무 느리다고 생각될 정도로 안 먹어본 제품이 없다. 이렇다 보니 좋아하는 맛과 패키지 디자인의 브랜드도 명확해졌다. 단맛보다는 곡물 본연의 맛이 느껴지는 시리얼을 좋아해 ‘네이처스 패스 Nature’s Path’ 제품을 선호한다고. “그중에서도 ‘헤리티지 플레이크’를 제일 좋아해요. 다른 어떤 걸 첨가해도 다 잘 어울려서 베이스로 활용하기 좋거든요.” 최근에 가장 좋았던 패키지 디자인을 꼽는다면 ‘라라바 Lärabar’다.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시리얼 박스를 모으면서 나눌 일도 많아졌다. 촬영 소품으로 빌려주기도 하고, 노트를 만드는 지인에게 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수집 행위의 가장 큰 수확은 시리얼을 매개로 새로운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지금 이 인터뷰도 시리얼 덕분에 하게 된 거잖아요. 이런 게 참 신기한 것 같아요. 잘 모르는 친구와도 시리얼이 있으면 친해질 수 있어요. 집에 놀러 왔을 때 한 그릇 말아 주기도 하고, 좋아할 만한 걸 추천해 주기도 하고요.” 무언가를 진정으로 좋아하는 마음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법. 그가 시리얼을 대하는 태도에서 진심을 느낀 사람들이 주위로 모여들었고, 그렇게 파생된 경험들이 지금의 윤진을 만들었다. 지속적인 컬렉팅이 계속해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