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닌데,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 오늘만은 진짜 하기 싫다. 책상 앞에 앉아 웹 서핑만 몇십 분째 하다가 결국 침대로 딥 다이브. 그렇게 내일로, 또 내일로 미루며 꿈꿔온 일과 나 사이는 책상과의 사이만큼 멀어진다. 대체 꾸준히 하는 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물론 꾸준히 한다고 해서 항상 좋은 결과를 얻는 건 아니다. 슬프지만 노력도 가끔은 배신을 하니까. 그렇지만 매일 해나가는 과정에서 이룬 하루의 작은 성취는 틀림없이 스스로에게 남는다. 그것이 또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자신감이 된다. 문제는 의지만으로 쉽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뿐. 그렇다면 실제로 한 가지 일을 묵묵히 해온 사람들은 어떨까.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 각자의 꾸준함을 완성했을까.
9년 전 사이드 프로젝트로 시작한 매거진을 통해 제2의 삶을 개척한 ‘아침’의 윤진 대표, ‘솔샤르’라는 이름으로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열어본 광고 기획자 정은우, 50번 넘게 공모전에서 떨어졌으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 소설을 써온 작가 문지혁에게 질문을 던졌다.
“좋아하는 일, 꾸준히 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나요?”
2015년, 처음 <Achim> 매거진을 세상에 내놓았을 땐 1호가 끝일 줄 알았어요. 그저 나를 표현하는 게 재밌어서 한 권, 한 권 만들다 보니 28호까지 나왔네요. 가벼운 마음으로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에요. 사실 일 년에 네 권을 발간해야 했는데, 회사 일이 바빠 그러지 못한 해도 있거든요. 그래도 괜찮아요. 이 일이 부담으로 느껴지면 재미를 잃게 되잖아요. 내 즐거움을 침해받지 않을 정도로만 힘을 줬어요.
하나의 일을 시작했다면 그 결과물을 시각화해 보세요. 저는 아침마다 노션(notion)에 일기를 써요. 눈뜨자마자 든 생각과 묵상 등을 글로 적고 사진 한 장을 섬네일로 지정하죠. 여러 장의 사진이 쌓여가는 걸 눈으로 보니 동기 부여가 되어요. 사진뿐만 아니라 일기에 제목을 붙이는 것도 시각화하는 방법 중 하나예요.
내가 시작한 일을 주변에 알리면 의지가 더 솟아날 거예요. SNS에 매일 한 일을 업로드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응원도 받을 수 있죠. 저는 아침 커뮤니티 멤버인 ‘모닝 오너’에게 일요일 오전 7시마다 뉴스레터를 보내고 있는데요. 벌써 160회가 훌쩍 넘었어요. 매주 제 편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저를 멈추지 않게 해주는 힘이에요.
꾸준히 하는 일도 언젠가는 끝이 있겠죠? 옛날에는 1년, 3년 치 계획을 꼼꼼하게 세웠어요. 지금은 그러지 않아요. 취미 삼아 시작한 매거진이 커뮤니티로, 서비스로, 공간으로 확장된 것처럼, 인생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니까요. <Achim>을 100호 정도 만들면 질릴 수도 있겠죠. 앞으로 30년 뒤의 일이니 미리 떠올리진 않으려고요.
Interviewee Achim 윤진 대표
매거진 <Achim>은 윤진의 개인적인 욕구에서 시작되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해소하지 못한 자기표현의 열망으로 첫 호를 만들었고, 다음 호를 기다려주는 독자들이 있어 28호까지 발간했다. 얇은 종이 한 장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는 커뮤니티가 되고, 온라인 스토어가 되었다. 그리고 올 4월, 서울 후암동에 ‘프로비전’이란 이름의 브랜드 공간을 오픈했다. 하루를 살아갈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 ‘공급처’라는 뜻으로, 신선한 제철 음식과 양질의 커피를 제공한다. 윤진에게 <Achim>은 살아가는 힘이자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은 즐거운 놀이터다. ‣ 윤진이 주말 아침을 보내는 장소는? 기사 보러 가기(Click)
저는 자존감을 ‘스스로를 비하하지 않는 마음’이라고 정의 내려요. 이 마음만 있다면 자신이 하는 일을 밀고 나아갈 수 있어요. 그러니 무언가를 꾸준하게 하고 싶을 때 필요하죠. 그 자존감은 풍부한 기억에서 나온다고 믿거든요. 그래서 일기를 매일 한 줄이라도 써요. 올여름 처음 먹은 복숭아라든지 키우는 고양이의 애교처럼 내가 아니면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을 순간들을 기록해요. 내게 있던 일을 나 자신부터 소중하게 여기면 자연스럽게 내가 귀해져요.
누군가는 인생을 산이나 계곡을 오르는 일에 비유하잖아요. 저는 그런 생각 때문에 좌절이 더 잦게 찾아오는 것 같아요. 노력한다고 반드시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결국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순간도 와요. 그러니 목적지를 떠올리지 말고 오늘 내게 주어진 일을 그냥 해보세요. 다음 날 다른 일을 하게 된다고 해도 불안해하지 말고요. 우리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사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잖아요. 뭘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매사에 성실할 수 있는 동력은 호기심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궁금한 게 없는데 무엇을 더 해볼 마음이 들겠어요? 세상에 더 이상 관심이 없어질 때 사람은 정신적으로 늙는 거죠. 그러니까 항상 눈과 귀를 열어둬야 해요.
저도 블로그를 그만두려 한 적이 있어요. 조회 수나 댓글 같은 타인의 평가가 신경 쓰였거든요. 근데 최선을 다했는지 아닌지는 남이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오직 나만 알죠. 결과가 어떻든 내가 그 순간 열심히 했다면 그걸로써 의미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Interviewee 대학내일 광고 기획자 정은우
‘나는 어떤 사람일까?’ 2008년, 사회에 발을 막 딛은 정은우는 자기 선명성을 고민하며 ‘솔샤르’란 이름으로 네이버 블로그를 시작했다. 주로 재밌게 본 영화나 책, 요즘 빠져 있는 취미, 일상에서 겪은 일화 등을 포스팅했다. 만년필로 그린 풍경화가 주목을 받아 펜화 작가로 활동하게 되며 관련 책을 두 권 펴내기도 했다. 블로그를 운영하며 새로운 일의 가능성을 엿본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평소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글로 정리하는 과정이 세상을 다층적으로 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 이해가 본업인 광고 기획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오늘 정말 하기 싫고 확신이 없는 일이라도 ‘그럼에도 하는 것’, 그 꾸준함이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만든다고 믿는다. ‣ 정은우의 성장을 도운 아이템은? 기사 보러 가기(Click)
소설 쓰기란 실제로 키보드를 치면서 글을 짓는 순간만을 말하진 않아요. 책상 앞을 벗어나 있을 때도 머릿속으로는 계속 쓰고 있어야 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일과 삶을 완전히 분리할 수 없어요. 어려운 일이지만 워크와 라이프가 하나가 될 때, 매순간 쓰고 있을 때, 그럴 때 예술이 만들어져요. 직장인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는데, 예술가를 꿈꾼다면 ‘워라밸’은 포기해야 해요.
글을 쓰기 위해 직장부터 그만두라는 말은 아니에요. 어떤 일이든 시작하기 전에 자신의 열정이 어떤 모습인지 알아봐야 해요. 한순간 튀어 오른 스파크일 수도 있고, 화염 방사기에서 쏟아져 나온 강력한 불길일 수도 있고, 다 타고 남은 장작의 은은한 불씨일 수도 있죠. 이건 직접 부딪혀봐야 알 수 있어요. 그러니 조금 발을 디뎌본 다음에 계속 도전할지 말지 결정하세요.
저는 매일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작업을 하는데요. 책상 앞에 앉자마자 글을 쓰진 않아요. 다른 일만 하다가 시간이 훌쩍 흐르기도 하죠. 그럴 땐 스스로를 속이는 주문을 걸어요. ‘딱 한 줄만 쓰면 된다.’ 막상 시작하면 최소 한두 문장은 더 쓰더라고요.
남들보다 조금은 부족한 현실 감각도 제겐 도움이 되었어요. 스무 살 때부터 10년 동안 신춘문예에 도전하면서도 막연히 ‘나는 소설가가 될 거야’라고 믿었거든요. 끝끝내 등단이란 제도를 통과하지는 못했어요. 무작정 출판사에 투고를 해 겨우 첫 책을 냈고요. 당시에는 그런 작가가 드물었고, 데뷔 이후 10년 동안 이름을 알리지도 못했죠. 그래도 썼어요. 그런 과정에서 제가 이 세계의 이방인이자 애매한 사람이란 생각을 했는데, 그게 제 정체성으로 자리 잡아 <초급 한국어>를 완성할 수 있었죠.
성장의 토대는 꾸준함이 다예요. 재능도 갈고 닦아야 반짝이는 거고요. 20년 동안 무명이었던 저를 보면 알 수 있지 않나요?
Interviewee 소설가 문지혁
“작가는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되는 것이다.” 미국 소설가 폴 오스터의 말처럼, 문지혁은 6세 때부터 자신이 소설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학교 1학년 때 하이텔 ‘과학소설동호회’에 첫 창작 소설을 올렸고, 당시 익명의 사람들로부터 받은 관심에 매료되어 계속 글을 썼다. 하지만 50번이 넘는 공모전 탈락을 경험했고, 우여곡절 끝에 첫 책을 낸 뒤에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다 2020년,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장편 소설 <초급 한국어>가 ‘정체성 문학’의 대표로 불리게 되며 그의 팬이 생겼다. 최근에는 방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집 <고잉 홈>을 냈다.
‣ 문지혁의 하루 루틴이 궁금하다면? 기사 보러 가기(Click)
✦ NEXT differ Answer
하나의 질문에 세 가지 답! 한결같이 하나의 일을 해온 세 사람의 노하우를 들어보았습니다. 오랫동안 생각만 해온 ‘나의 일’에 시동을 켤 수 있는 연료가 되었나요? 이렇게 오늘도 내일도 반복하다 보면 어떤 결과를 얻게 될지 궁금해지는데요. 6월, differ Answer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답’을 통해 성장의 문을 활짝 열어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