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참 예민해’란 말이 어떻게 들리는가? 상황에 따라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예민한 감각이 내적, 외적 갈등을 유발할 때도 있지만, 그 갈등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결말은 전적으로 내가 예민함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피 엔딩을 맞이할 수 있을까? 요즘 시대의 구루를 통해 인사이트를 전하는 유튜브 채널 ‘최성운의 사고실험’을 운영하는 최성운 PD,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최신 유행을 선도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MHTL의 맛깔손⋅박럭키 대표, 인문학을 바탕으로 브랜드 컨설팅을 설계하는 LMNT 최장순 대표 등 섬세한 감각을 발휘해 자신만의 독특한 결과물을 선보이는 사람들을 만났다.
예민함은 지나치면 일상을 피곤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적재적소에 활용하면 좋은 결과물을 빚어내는 원료가 된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양면의 얼굴을 지닌 예민함을 어떻게 다룰지 함께 살펴보자.
“예민함을 활용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나요?”
인터뷰 콘텐츠에서는 출연자가 가장 중요해요. 보는 사람이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포인트들이 필요하죠. 그래서 ‘최성운의 사고실험’은 대체로 한 인터뷰이로 영상 2편을 만들어요. 1부에서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2부에서는 특정 분야나 구체적인 노하우 등을 다룹니다. 1부와 2부 중 하나라도 흥미를 가질 수 있게 던져보는 거죠.
영상 콘텐츠는 텍스트가 아닌 만큼 비언어적 표현을 최대한 담아내려고 노력해요. 눈빛이나 표정, 태도 등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야 하죠. 제 장점 중 하나가 ‘예의 바르게 불손한 질문하기’인데요(웃음). 질문을 준비할 때 그 사람의 기본적인 정보는 물론이고 가치관을 파악하려고 애써요. ‘이 사람은 무엇에 열렬히 반대할 것인가?’ 또는 ‘무엇을 지지할 것인가?’를 상상하며 질문을 던지는 거죠. 그럼 상대방의 진솔한 반응이 나와요. 영상을 편집할 때도 그런 부분을 특히 잘 담아내려 해요. 그때의 말투나 뉘앙스에서 그 사람의 매력이 드러나니까요. 그것이 제가 예민하게 감각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이런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선 먼저 인터뷰이에게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내가 당신의 말을 이해할 수 있고, 왜곡하지 않겠다는 믿음을 줘야 하죠. 우리가 함께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낼 것이란 확신을 주는 거예요. 인터뷰란 장르는 타인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해요. 제가 인터뷰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한데요. 더 많은 사람들이 인터뷰 장르에 흥미를 느끼고 유입될 수 있도록 매력적인 콘텐츠를 제작하고 싶어요. 타인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새로운 부분을 발견할 수 있지 않겠어요?
올해에는 라이브 방송에도 도전할 예정이에요. 아무래도 섭외부터 진행, 편집까지 맡다 보니 물리적인 제작 시간을 줄일 필요도 있고, 무엇보다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에요. 원래 도전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불편함을 감수하고 내린 결정들이 저를 더 재미있는 삶으로 이끌어왔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싶어요.
Interviewee 최성운 PD
작가 송길영, 정치학자 김지윤, 방송인 타일러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일과 삶에 대한 인사이트를 전하는 유튜브 채널 ‘최성운의 사고실험’을 만들고 있다. 스타트업, 미래 기술 혁신 등을 다루는 미디어 EO의 간판 시리즈로 시작해, 지난해 채널 독립을 하고 현재 5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모았다. 직접 섭외와 진행, 편집을 도맡아 영상을 제작하며, 제작자이자 크리에이터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는 중이다.
맛깔손 2018년 2월에 박럭키 님을 처음 만나 작업을 했는데, 손발이 잘 맞았어요. 성격이 정반대인 점도 오히려 도움이 되었고, 함께 일하면서 갈등을 겪은 적이 없어요. 디자인에는 정답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니니까,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놓고 대화를 많이 나눠요.
디자인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발현될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목업(mock-up) 작업에 힘을 쏟아요. 포스터, 영상, 사진, 공간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으므로 콘텐츠가 소비자를 만나는 환경까지 상상하며 작업을 진행하고요. 우리 작업물이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고려해요. 그래서 고객사와의 충분한 소통을 통해 많은 정보를 수집하려고 노력하죠.
다행히 저는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 너머에 있는 의미를 잘 캐치해요. 타고난 면이죠. 덕분에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방향을 빨리 파악해 작업 계획을 세울 수 있어요. 이런 감각들이 때로는 피곤할 때도 있어서, 일부러 레이더를 끄곤 해요. 잠을 자거나 밥을 먹거나 본능적인 행위에 집중하면 예민함이 좀 수그러들어요. 제 몸과 정신이 건강해야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으니, 밸런스를 잡으려고 노력해요.
박럭키 평소 백화점이나 쇼핑몰 같은 소비 공간을 자주 찾아요. 같은 브랜드라도 지역에 따라 디스플레이가 달라지고, 찾아오는 고객층도 달라요. 그런 곳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며 요즘 트렌드를 파악하는 거죠. 그렇게 실제 공간에서 관찰을 통해 얻은 데이터가 브랜딩 기획을 할 때 도움이 됩니다.
평소 일상에서 예민한 성격은 아니지만, 필요한 순간에는 주의를 기울여요. 하지만 일을 하는 내내 예민함을 유지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일의 속도를 내야 하는 구간도 있으니까요. 힘을 주어야 할 때와 빼야 할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하죠. 앞으로도 건강하게, MHTL을 잘 운영하고 싶어요. 우리만의 정체성을 잘 쌓아 10년 뒤에도 지속될 수 있기를 바라요. 더 나아가 회사를 물려줄 수 있는 후배가 생기면 좋겠고요.
Interviewee MHTL 맛깔손⋅박럭키 대표
문화와 예술 공간의 포스터와 도록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해, 현재는 K팝, 뷰티, F&B 등 여러 분야의 브랜드와 협업 중이다. 어느 하나의 디자인 스타일을 지향하기보다는 각 콘텐츠와 브랜드에 어울리는 표현을 고민하고 실험하며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스튜디오로 확장할 수 있었다. 이번 겨울에 서울 합정역 근처로 사무실을 이전하며 전열을 가다듬은 이들은 더 넓은 세상으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대학에서 언어학을 공부했어요. 졸업 후 기자 생활을 하던 중에 어느 브랜딩 회사에서 언어학 전공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어요. 그게 ‘브랜드 네이머’란 일이었어요. 그 회사에서 8년 동안 브랜드 기획에 대한 경험을 쌓고 LMNT를 창업하게 됐죠. 우리는 인간 중심적인 관점으로 비즈니스를 다루고자 해요. 여기서 인간은 소비자, 벤더, 자본가 모두를 포함합니다.
흔히 ‘브랜딩’ 하면 로고나 공간 같은 시각적 요소를 먼저 떠올리는데요. 영어로 ‘본다(see)’는 어떤 문장에서는 ‘알다’란 뜻으로 해석돼요. ‘I see you’처럼, 겉모습을 인지한다는 뜻을 넘어 상대의 생각, 의도, 가치관, 기질 등을 이해한다는 의미죠. 이처럼 눈에 보이는 디자인에 앞서 브랜드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기획하는 일이 브랜드 기획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데이션을 할 때는 단어를 뜯어봐요. 계보학적 관점에서 그 단어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변천사를 정리하는 거죠. 결국 단어는 사람과 사람이 약속해 만들어낸 이름이라,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거든요. 사고의 과정이 이렇다 보니, 언어에 예민해요.
이렇게 본질을 파고들다 보면 정말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껴요. LMNT 팀원들에게도 이를 강조하는 편이고요. 만약 제가 하는 이야기에서 새로운 관점이 도출되지 않았다면, 즉시 책을 읽거나 취재를 하러 가야 해요. 더불어 관찰도 많이 해요. 신발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할 땐 몇 날 며칠을 거리에서 사람들의 신발만 보는 식이죠. 이게 습관이 되어서 주변 사람들의 변화도 빠르게 인식해요. 이런 예민함이 성장에도 도움이 되는 듯해요. 메타 인지가 되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예민할수록 자기 자신을 더 빨리 알아차릴 수 있거든요.
프로젝트의 업무 범위에 따라 방향성만 제시하기도 하지만, 그에 따르는 액션 로드맵을 세워야 할 때도 있죠. 그럴 땐 본질인 ‘Why’에 갇히지 말고 ‘Why not’을 떠올릴 차례예요. ‘이건 왜 안 돼?’라고 생각해야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Interviewee LMNT 최장순 대표
‘요소’라는 뜻의 영어 ‘element’에서 유래한 회사 이름처럼, 비즈니스를 이루는 다양한 요소를 검토하고 최소한의 요소를 혁신하여 브랜드를 재정립하는 일을 한다. 인문학적인 사고방식으로 브랜드 기획을 그려나가며, 그 방식을 책 <본질의 발견>과 <의미의 발견>에 담았다. 지난해 오피스 공간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브랜드 ‘에시프’를 론칭했고, 올해 본격적으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벌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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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XT differ Answer
한 가지 질문에 각양각색의 답! 이번 디퍼 앤서의 인터뷰이들은 저마다의 예민한 감각을 일에 어떻게 녹여내 깊이를 더하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섬세한 기질, 과연 나에게도 강점이 될 수 있을까요? 2월에는 또 다른 기민한 감각의 소유자들을 만나 그들이 예민함을 자신의 무기로 바꾼 순간에 대해 들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