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differ column
디퍼 칼럼은 필진마다 3회 차에 걸쳐 하나의 주제를 풀어가는 연재물이며, 책상에서의 몰입을 통해 성장한 인물들이 배움, 창작, 일 등에 대한 심층적인 사유와 정보를 전합니다. 새로운 지식이 뇌를 자극할 때, 기분 좋은 깨우침이 일어날 거예요.
해외 여행지. 고가 시계. 이따금 고가 오디오나 전자제품.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라이프스타일 잡지 업계에서 담당했던 분야들이다. 그런 제품과 서비스는 지금 생각해도 한숨이 나올 만큼 비쌌다. 나는 1박 투숙료가 당시 내 월급보다 비싸던 몰디브의 리조트에 취재차 묵어본 적이 있다. 카드 한도가 200만 원인데 비즈니스클래스로 상하이에 도착해 기사 딸린 차를 타고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이런 경험이 좋았냐고? 전혀. 계속 이런 걸 누리고 싶었을까? 절대. 내 업무 경험과 현실 사이의 낙차에 헛웃음이 날 뿐이었다.
황홀한 순간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이런 경험에 익숙해지면 안 된다고. 캐시미어를 두르고 선선한 밤바다에 앉아 있는 듯 호화로운 느낌이 내가 일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다행히 호사는 잠깐이고 현실이 길었다. 현실 속 내 사무실 책상은 기능에 충실한 MDF 가구였었다. 저런 물건에 미적 기준 운운하면 실례인 듯한 모양새의 물건들. 한국형 사무 표준에 수렴하는 만큼 어떤 식으로든 존재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몇 개의 회사와 사무실을 거쳤지만 ‘아 그때 사무실 책상이 그거였지’ 싶은 건 없다.
오히려 기억나는 건 책상이 없는 상황에서 뭐라도 해야 했던 때다. 잡지 에디터 업계는 에디터라는 직장 생활을 해도 업무에 방해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외부 원고나 집필 등 창작 관련된 일을 한다면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30대 중반부터 온갖 일을 했다. 늘 일이 넘쳤으니 장소를 가릴 경황이 없었다. 사람 없는 도서관에서. 급한 연락을 받으면 버스나 택시 안에서. 이코노미 클래스의 접이식 테이블 위에서. 도서관 책상은 묵직해서 좋았고 이코노미 클래스 테이블은 역시 흔들렸다.
흔들리지 않는 것. 그 사이에서 깨달은 좋은 책상의 조건이다. 그 전에 나는 만사에 순진하고 철이 없었다. 책상을 볼 때도 당시 내 눈에 예쁜 게 다였고, 내 일상 속 책상들이 그리 예뻐 보이지는 않았고, 내 눈에 예뻐 보이는 책상들은 역시 비쌌다. 한참 일을 많이 할 때쯤 독립해 혼자 살기 시작했다. 모든 가구를 내 돈으로 사야 할 때 거듭 깨달았다. 책상의 기본은 다른 게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것이라고. 이사 간 월셋집엔 가구가 없어 당장 우체국 택배 상자 위에 랩탑을 올려두고 마감을 했다. 키보드를 칠 때마다 종이 상자가 흔들렸다. 작은 소리로 피아노를 치듯 약하게 키보드를 두드려야 했다.
내 형편이 궁색했어도 우체국 택배 상자를 책상 삼아야 할 만큼 무일푼은 아니었다. 아무 책상이나 사지 않은 이유는 재정이 아니라 심리였다. 나는 여러모로 불안정했으나 아무거나 집에 갖다 두고 싶지도 않았다. 시중의 가구는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쓸만하다. 이 ‘어느 정도 쓸만’이라는 게 묘하다. 만취 후의 귀갓길처럼 세상에는 어딘가 삐걱거리지만 자기 기능을 하는 가구가 있다. 그런 가구가 싸다. 나는 그게 싫었다. 아무렇게나 샀더니 영 별로인데 버리자니 덩치만 커서 애매한 물건들. 그렇다고 무리해서 비싼 책상을 사고 싶지도 않았다. 비싼 물건은 아무래도 느끼했다.
그런 고민을 달고 살던 차에 당시 집 근처 고가도로 옆 낡은 건물 2층 중고품 가게에 우연히 들어갔다. 거기에 내게 꼭 맞는 책상이 있었다. 저렴한 소나무 원목으로 튼튼하게 만든 책상 두 개. 폭과 높이는 같았고, 둘을 붙이면 3m는 될 만큼 길었다. 가게 사장님은 폐업한 학원에서 가져온 거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상판 곳곳에 어린이들의 연필 낙서가 남아 있었다. 다리 몇 개는 개가 물어서 뜯긴 자국이 보였다. 그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찌 그리 뻔뻔했나 싶을 정도로 깎고 깎아 두 개를 4만 원에 샀다. 그 가게는 몇 년 뒤 문을 닫았는데 그때 내가 너무 깎았기 때문인가 싶어 아직도 조금 죄송스럽다.
그 책상도 집에 바로 두지 못했다. 일단 상판에 적힌 애틋한 메시지를 사포로 모두 갈았다. 굵은 걸로 메시지를 지우고 고운 사포로 표면을 다듬었다. 그 후 색을 칠했다. 그때 나는 방안의 모든 가구를 흰색으로 맞추던 때라 이 책상 역시 흰색으로 정했다. 색도 두 번은 칠해야 깊어지니까 한번 칠하고 말린 뒤 또 말렸다. 책상 아래쪽을 칠할 때 고민했다. 안 보이는데 둘까 말까. 나는 그런 걸 넘기지 못한다. 뒤집어서 눈에 안 보이는 곳까지 다 칠했다. 회사 생활과 외부 원고를 해 가면서 그걸 하자니 몇 달이 걸렸다.
그래도 책상을 놓자, 방의 쓰임새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흔들림 걱정 없이 원고를 할 수 있었다. 합치면 약 3m쯤 될 긴 책상이었으니 둘 수 있는 물건도 많았다. 하나는 책이나 자료를 가득 놓고 다른 하나에는 오디오와 잡동사니를 잔뜩 쌓아뒀다. 양 끝에는 북쉘프 스피커를 놓았다. 그 책상에서 책 네 권을 썼다.
그 책상은 충분히 좋았지만 계속 함께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언젠가 형편이 나아지면 이것보다는 좋은 책상을 이 집보다는 좋은 곳에 두고 싶다고 몇 번씩 생각했다. 그 집에서의 월세 계약이 끝나고 나는 지금 집에 살기까지 약 4년 동안 책상 없이 살았다. 처음 혼자 살 때와 똑같았다. 카우치서핑처럼 ‘책상 서핑’을 하듯 온갖 곳에서 작업을 해야 했다. 그 시간 덕에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책상을.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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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iter. 박찬용 @parcchanyong
에디터, 저자. <크로노스> <에스콰이어> <아레나> 등에서 일했다. ⟪모던 키친⟫ 등 책 6권을 냈다. 현재 다음 책들을 작업하고 있다.
시간을 들여 오래된 집을 고친 뒤 더 오래된 사무실을 고치려는 중이다.
Illustration Daeun Jung
𝗘𝗱𝗶𝘁 Haeseo Kim
𝗗𝗲𝘀𝗶𝗴𝗻 Jaehyung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