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differ STAGE
디퍼 스테이지는 책상을 무대로 깊이 있는 배움과 연결을 만드는 오프라인 워크숍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연사를 초청해 데스커 라운지 홍대의 빅테이블에서 사람과 생각이 만나고, 작업과 대화가 연결됩니다.
에스파, 실리카겔, EXO. 이름만으로도 위력이 상당한 아티스트들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알려진 멜트미러에게서는 허세의 더께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수줍고 정중한 태도로 시종일관 조심스러우면서도 열의에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수년간 연습생 시절을 지나 데뷔한 신인 가수처럼. 그는 자신이 지난 시간 쌓아온 게임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고 드러냈다. TRPG (Tabletop Role-Playing Game)의 가능성을 나눌 수 있는 자리라면 어디서든, 무엇이든 할 기세였다.
급기야 그는 이번 디퍼 스테이지를 위해 직접 TRPG 게임을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게임 개발이라니, 듣는 것만으로도 쉬운 일이 아닌데. 그때 확실히 느꼈다. 그를 움직이는 건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그저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덕분에 differ에서만 볼 수 있는 TRPG 게임이 탄생했고, 이번 디퍼 스테이지는 게임의 세계관으로 꾸려졌다.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어떤 구성이 펼쳐질지 물음표가 수없이 떠올랐지만, 나는 분명 확신했다. 틀림없이 재밌는 광경이 펼쳐질 거라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행사 당일, 청중과 멜트미러 사이에 탁구공을 주고받는 듯한 리드미컬한 기류가 형성됐다. 말을 주거니, 받거니. 게임이라는 세계 안에서 우리 사이의 벽은 희미해지고, 친밀한 마음이 오갔다.
🧤잠깐! 멜트미러 작가가 디퍼 스테이지를 위해 직접 만든 TRPG (Tabletop Role-Playing Game) 방식과 디퍼 툴킷이 궁금하다면? 아티클 하단에서 확인하세요!
TRPG가 진행되는 동시에 그의 수많은 작업 비하인드가 오갔다. 작업을 함께한 스탭들과의 일화, 초기 작업 아이디어에 관한 이야기, 모든 순간마다 얻은 깨달음들. 매순간 뜨거운 가슴으로 창작해온 건 아니었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그는 끊임없이 작업을 해왔다는 것.
“작업하면서 회의감은 항상 오는 거 같아요. 저도 영상 작업을 2년 간 아예 안 한 적이 있어요. 실리카겔 ‘KYO181’ 뮤비 작업을 끝낸 후였죠. 그런데 그렇게 쉬는 순간에도 작업을 멈추진 않았어요. 그때엔 게임 작업에 몰두했었죠. 게임에 몰입하고 나니까, 제가 다시 영상을 해야 할 이유가 생기더라고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은, 누구에게나 고뇌를 동반하는 행위다. 반열에 오른 것처럼 보이는 이에게나, 이제 막 첫 발을 떼는 이에게나.
“몇 년 전만 해도 저는 저만 힘든 줄 알았어요. 특히 거장이라고 불리는 분들은 되게 강인해 보이잖아요. 그런데 그분들 인터뷰를 보니까 저희랑 똑같더라고요. 기예르모 델 토르라는 멕시코의 거장 영화 감독도 ‘영화 작업은 샌드위치에 똥을 발라 먹는 것과 똑같은 일이다. 다만 영화를 계속 만들수록 똥이 좀 더 얇게 발리는 것 같다’라고 얘기하시더라고요. 그 말이 너무 와닿았어요. 유명해지고 인지도가 쌓일수록 더 고통스러울 뿐이에요. 근데 창작을 하지 않고는 ‘나’라는 사람이 견딜 수가 없으니까 계속 하는 것 같아요.”
거장의 좌절을 보고 위안이 되었다는 그의 말에 공감이 됐다. 나 역시 ‘자신도 끊임없이 회의감을 느낀다’는 그의 고백에 위로가 됐으니까.
’NO PAIN’ 뮤비를 완성하고 제가 느낀 감정은 사실 ‘망했다’였어요. 뮤비 전체에 다양한 형태의 그래픽을 활용했는데, 마감을 하고 보니 그 사용이 너무 과했단 생각이 드는 거예요. 아… 판단 미스구나. 사람들이 나를 한 물 간 사람으로 보면 어쩌지 싶었어요. 근데 의외로 반응이 나쁘지 않은 거예요. 오히려 좋았죠. 그때 처음 알았어요 나의 판단을 넘어서는 대중의 감각이 존재한다는 것을요. 저는 운 좋게 좋은 순간에 작업을 멈춘 거였죠. 그 이후론 작업을 완성한다고 생각하기보다 좋은 순간에 멈춘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어요.”
멜트미러가 영상 작업자로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여러 아티스트들의 뮤직비디오에 함께한 작업들이 주목받으면서였다. 최근 에스파의 ‘위플래시’ 작업 이후엔 해외 팬들도 많이 늘었다. 순식간에 인스타그램 팔로워 1만 명이 급증했다. 그에게는 지난 10여 년 영상 작업을 해오면서 꼿꼿이 유지해온 독창성이 있다. 그러나 많은 아티스트가 그렇듯이, 그의 크리에이티브도 스타일로 인정받지 못했다. 오히려 고집스러운 파트너라는 평가를 견뎌야 했다. 더군다나 뮤직비디오 작업은 클라이언트의 요구가 명확한, 상업적인 작업의 영역 아니던가.
그의 수많은 영상 작업을 오래 관심 가져온 한 청중이 물었다. 상업 작업을 하면서도 어떻게 작가로서의 문체를 지켜나가는지. 그의 대답은 단순하고 솔직했다.
“저는 가장 단호하고 명확한 걸 보여주려고 노력해요. 단호한 태도로 작업하면서도 절대 원곡을 등한시하지 않죠. 곡이 가진 구조적 가능성을 가장 명확하게 추적할 때 직관적이고 좋은 뮤직비디오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결론적으로 주관은 지키려면 지킬 수 있어요. 다만 그 주관을 남들에게 인정받고, 모두가 그걸 스타일로 봐주는 데엔 시간이 오래 걸려요. 저도 처음 영상했을 땐 다들 제 단호함을 반기지 않았던 것 같아요. ‘너무 단호한 거 아니냐’는 얘기도 정말 많이 들었어요. 2014-2015년에는요.
그러다가 2016년에 <IF YOU FEEL LIKE ME>라는 모션그래픽 뮤직비디오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희한하게 작업 마감을 해서 완성본을 넘기면 발매 일정이 계속 밀리는 거예요. 결국 4번 정도 재작업을 하면서 최종 마감을 했던 걸로 기억해요. 그런데 그 희한한 경험에서 분명히 깨달았어요. ‘나는 강박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더 좋은 작업을 하는 사람이구나’. 괴롭기 보다 즐거웠고, 판단의 기준이 점점 더 선명해지더라고요. 그리고 운 좋게도 vimeo라는 사이트에서 그 영상이 스탭 픽으로 추천이 되면서 대외적인 결실까지 얻게 되었죠. 그때부터 사람들이 제 강박을 이해해 주기 시작했어요. 좋은 날카로움이자 완성도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거죠. 그리고 저 자신도 그 시기를 거치며 완성도의 기준, 제 주관의 기틀을 잡을 수 있었답니다.”
그의 인스타그램(@meltmirror)에 들어가면 프로필 대문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모든 종류의 영상 의뢰받지 않습니다.” 예사말로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는 것 아닐까? 영상 작업자로 한창 명성을 떨치는 와중에 영상 의뢰를 받지 않는다니. 그는 올해는 자신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게임을 개발하는 데 에너지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처음 디퍼 스테이지 강연을 의뢰했을 때도 모두가 궁금해하는 영상 작업 이야기와 더불어 ‘게임’ 이야기도 많이 해보고 싶다고 했다.
반갑게도 청중도 그런 그의 마음을 궁금해 했다. 영상과 게임 작업을 모두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아직 게임 업계에서는 신인인데, 현실적으로 두 가지 업을 병행해 이어올 수 있는 힘이 무엇인지. 우선 그는 게임에서 기존과 다른 가능성을 발견했다.
“우리는 게임의 시각적인 요소에 주목하는 시대를 살고 있어요. 게임을 영화의 대안으로 바라보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러한 흐름이 게임의 본질을 일정 부분 해친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그래서 그래픽은 단순해도 <BABA IS YOU>처럼 메커니즘에 충실한 게임을 좋아합니다. 제가 만들고 싶은 게임 역시 메커니즘의 가치적 방향성을 확인하는 게임이에요.”
“개인적으로 제가 뮤직비디오 작업을 이어오는 건 현실적인 수입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규모 있는 뮤비 작업이 들어올 땐 수입 규모도 괜찮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에스파에게 감사합니다(웃음). 물론 어떤 작업이건 억지로 하는 건 없어요. 다만 저는 1년에 1~2개 정도만 작업하며 제 시간을 확보할 뿐이에요. 아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영상업 종사자 분들은 보통 한 달에 3~4개씩 하거든요.
작업을 많이 하는 게 좋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해서 좋은 퀄리티가 유지될지 걱정이에요. 작업이라는 건 결국 나를 갉아먹고 나의 표현들을 써먹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그걸 몇 개월 단위로 지속한다면 결국 내 자산이 다 고갈될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일을 좀 적게 하되, 충분히 자율권이 있는 일을 하고, 일을 할 때 적정선의 수익을 벌어두자는 마음이 확고해요. 그렇다고 해도 다른 감독님들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입일 거예요. 제가 집도 전세 살고, 차도 없으니 고정비가 크지 않아 다행이죠 (웃음).”
물론 게임 업계에 들어와 보니 막상 쉽지 않은 순간도 있었다고 했다. 오랜 작업 기간을 필요로 하기도 하지만, 결과물을 완성하더라도 바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만큼 인내가 필요한 곳이었다.
“게임 업계에 마음먹고 왔을 때 피로감이 너무 강해서 놀랐어요. 뮤직비디오는 짧은 기간 안에 무언가를 이뤄 선보이면 나를 입증할 수 있는데요. 게임으로는 2년 가까이 고군분투 해도 쉽게 성과가 나지 않는 거예요. 제가 ‘KYO181’ 이후 ‘NO PAIN’으로 다시 뮤직비디오 작업을 병행한 이유예요. 저의 행복을 다시 찾기 위해서(웃음).”
멜트미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게임의 가능성을 더 많이 보여주며, 판매되는 좋은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제껏 그가 영상 작업을 대하는 태도와도 맞닿은 꿈이었다.
“게임은 실제 사용자에게 판매되어 플레이 되는 게 가장 아름다운 형태라고 생각해요. 상업성은 배제하지 않되, 다른 게임들과 차별화된 면모를 갖추는 것. 그게 제 바람이에요.”
TRPG 방식으로 진행돼 오던 디퍼 스테이지 강연은 마지막 30분을 남긴 후부터는 자율적인 Q&A로 진행됐다. 게임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동시에 청중과의 Q&A를 진행하다 보니, 많은 분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고. 아직 고유 번호가 불리지 않아 질문 타이밍을 못 잡았던 분들은 스스럼없이 손을 들어 질문을 건네며 멜트미러와 대화를 나눴다.
그 모습을 보니 멜트미러가 강연 내내 말했던 게임 언어의 가능성이 무엇인지 알 것도 같았다. 시각적인 영역에 대한 이야기나 내러티브를 만들어나가는 체계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내게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게임의 가능성은 사람의 마음을 여는 데 핵심이 있지 않을까 하고. 게임 언어에 친숙한 문화가 형성될수록 우리에게는 상대를 더 잘 이해하고자 애쓰는 ‘공동체적 힘’이 길러질지도 모르겠다. 게임에는 경계의 벽을 허무는 능력이 있으니까.
TRPG는 말 그대로 테이블에 앉아서 자신의 캐릭터를 생성하고, 그 캐릭터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게임이다. 보통 보드게임은 참여자들이 규칙에 따라 자발적으로 플레이 하는 형태로 별도의 진행자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TRPG에서는 진행자 역할을 맡을 롤 마스터가 필요하다. 어떤 TRPG에서는 롤 북의 두께가 상당해서 롤 마스터가 아예 그 책을 가져와 뒤져가며 롤을 알려주기도 한다고. 롤 마스터는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모두 알고 있으며, 이야기가 전개될 때 어떤 캐릭터가 언제 등장해야 재밌는 서사가 만들어지는지를 모두 다 알고 있는 사람이다. 즉, 롤 마스터가 어떻게 리드 하느냐에 따라 그 게임의 재미 여부가 판가름 난다. 이렇듯 참여자들의 캐릭터 생성과 진행자의 역할이 중요한 게임인데, 그래서 TRPG 진행자는 GM(Game Master), 참여자는 PC(Player Character)로 지칭한다.
그렇다고 TRPG가 진행자를 위한 게임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TRPG는 참여자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완성되는 게임이다. 이야기와 세계관을 만들어가는 게임인만큼 정교한 규칙을 갖고 있지만, 규칙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많고 참여자의 의도와 엇나가는 결과가 벌어지는 경우도 많다. TRPG에서 주사위를 활용하면 더 정교한 이야기 설정이 가능한데, 주사위를 굴려 나온 값에 따라 참여자들은 세부적인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주사위 결과 값에 따라 A와 B의 선택지를 고를 권한이 부여되는 것이다.
멜트미러는 TRPG의 역사를 소개하며 특히 ‘던전 앤 드래곤’ 게임을 오래 설명했다. 1970년대에 최초로 출시된 TRPG 게임인데, 지금까지도 수많은 판타지 소설과 컴퓨터 게임이 이것의 게임 설정과 규칙을 차용한다고 한다. 처음엔 전쟁이나 모험의 시뮬레이터 목적을 가진 ‘워 게임(War Game)’으로 시작된 TRPG. 그러나 이제 TRPG는 공동 창작에 기반을 두고,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걸 좋아하는 모든 이가 향유하는 문화로 확장되어 가고 있다.
멜트미러가 데스커 라운지 홍대의 문을 열고 들어왔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여느 강연에서는 강연자가 짐을 가득 들고 오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멜트미러의 양손은 커다란 가방으로 무거웠기 때문이다. 강연 전날까지 그는 강연에 활용할 캠코더와 게임적 세계관을 만들어줄 여러 잡동사니를 직접 세팅해보며 리허설까지 했다. 그만큼 상당한 정성을 들여 이번 시간을 준비한 그였다.
이번 디퍼 스테이지는 롤 플레잉 게임을 이해하고 직접 해보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도 필요했기에 크게 2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오후 4시부터 5시 반까지는 멜트미러가 TRPG의 역사부터 개념까지 직접 설명하며 디퍼 툴킷으로 개발한 게임의 룰을 참여자들에게 이해시키는 시간이었다. 대학 시절 강의를 청강하듯 우리는 멜트미러가 직접 준비해온 자료들을 바탕으로 TRPG를 이해하고, 디퍼 툴킷을 활용해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저녁 시간 이후 오후 6시 반부터 9시까지는 생성한 캐릭터로 함께 TRPG를 이어가며 멜트미러의 작업에 대한 질문과 답을 듣는 시간으로 구성됐다. 게임의 주인공으로 설정한 피규어가 책상 위에서 떠나는 모험 이야기와 멜트미러의 개인적인 작업 서사는 TRPG 안에서 자연스레 섞였다.
청중이 저녁 시간으로 잠시 쉴 동안, 그는 라운지의 빅 테이블 앞쪽을 하나의 마을처럼 꾸몄다. 그의 묵직한 가방에 들어 있던 건 모두 이 게임을 위한 도구였다. 손톱만 한 피규어들, 쓸모를 알 수 없는 플라스틱, 고양이 털뭉치, 토끼 저금통, 6면체, 8면체 혹은 20면체 주사위들… 셀 수 없이 많은 물건들이 놀이동산에 세워진 조형물처럼 자리를 차지했다.
멜트미러는 이렇게 세팅된 책상 위 작은 마을을 직접 캠코더로 비춰가며 모험 스토리를 시작했다. 그는 손톱만 한 크기의 투명 피규어를 이번 모험의 주인공으로 세웠는데, 그가 캠코더의 줌을 당겨 어느 물체를 비출 때마다 주인공 피규어의 시선에서 장면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본격 TRPG 세계관이 어우러진 강연이 시작됐다. 시작 전에 멜트미러는 각 참여자에게 무작위로 고유 번호를 부여했다. 게임이 플레이 되면서 멜트미러가 팔면체 주사위 1~2개, 혹은 육면체 1개를 굴려 나온 값과 매칭되는 참여자에겐 모험 이야기를 전개할 선택지와 함께 질문 기회가 주어졌다. 호명된 PC(Player Character)는 자신이 설정한 캐릭터의 이름과 직업, 그리고 쓸 수 있는 주문, 능력치 같은 것들을 소개한 후 멜트미러에게 묻고 싶은 것과, 책상 위 모험자의 선택을 결정했다. 묻는다고 모두 원하는 만큼 답을 들을 수 있는 건 아니다. PC가 가진 능력치가 판정을 위해 굴린 주사위 숫자보다 커야 자세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멜트미러 (GM): 자, 계속해서 모험을 떠나는 투명 인간입니다. 어라, 석상과 커피 간판이 보이네요? 이곳에서 투명 인간은 고민합니다. 커피를 마실지, 석상의 비밀을 파헤칠지! 석상을 바라보던 이웃 주민 중 하나가 이런 말을 합니다. “저 석상은 흰색에게 관대한 것 같아.” (주사위를 굴린다.) 숫자 15 나왔습니다. 15번 누구시죠?
참여자 (PC): (손을 들고 마이크를 잡는다.) 제 이름은 유리, 직업은 초록빛의 검투사입니다. 예의바른 유리병을 아이템으로 갖고 있습니다. 저는 ‘지혜’ 능력(작업의 초기 작업 및 레퍼런스에 대해 들을 수 있는 능력)을 활용해서 실리카겔의 ‘APEX’ 작업에 대해 묻겠습니다. 우선, 이 지혜 능력으로 주변의 초록색 물건을 아무거나 집어서 APEX 뮤비 속 주인공 김한주 씨의 손전등으로 그 물건을 비춰 흰색으로 만들게요. 그리고 석상 쪽에 그 빛을 반사시켜 석상의 비밀을 파헤치겠습니다! 제 ‘지혜’ 능력치는 6입니다.
멜트미러 (GM): 네, 그럼 주사위 판정 하겠습니다. (주사위를 굴린다.) 오, 2가 나왔습니다. 초록빛의 검투사가 이겼네요. 구체적으로 곡 ‘APEX’의 어떤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지혜’ 능력을 사용하셨으니 초기 작업에 대한 얘기가 듣고 싶은 거겠죠?
참여자 (PC): 제 생각에 ‘APEX’에서는 유독 오브제가 많이 등장하는 거 같아요. 그렇게 수많은 오브제들을 어떻게 떠올렸으며, 레퍼런스로 삼은 작업물이 있는지 궁금해요.
멜트미러 (GM): 좋습니다, 우선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할게요. ‘APEX’에서는 그동안 다른 작업물들에서 제가 만든 세계관을 통합시켜 다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소품을 많이 사용했는데, 곡 ‘NEO SOUL’을 상징하는 석상도 사용했죠. ‘APEX’는 실리카겔의 모든 뮤직비디오 합본 같았어요. 작업물의 레퍼런스를 외부에서 찾지 말고 내 작업이 레퍼런스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한 번 출연시킨 사물들을 몽땅 끌어들였죠. 동시에 이전과 같은 식으로 반복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전엔 A 인물에게 쓰인 물체를 B 인물이 쥐도록 만들기도 했어요. 화면 이동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로 어떤 건 왼편에서 출발해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구도를 잡았고, 어떤 건 왼편으로 빠져나오는 식으로 구성을 만들었죠. APEX 뮤비는 여태 만든 것 중에 가장 복잡해요.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렇게까지 복잡한 작업물은 없는데 (웃음). 하지만 그땐 그렇게 해야 했어요. 바로 직전 작업물 ‘Mercurial’이 제게 슬럼프를 느끼게 했다면, APEX는 슬럼프에서 벗어났다고 느낀 작업이었어요. 제 안의 모든 걸 털어낸 작업. 그래서 이후 에스파의 ‘위플레시’는 심플하게 만들 수 있었어요.
참여자 (PC): 답변 감사합니다!
멜트미러 (GM): (다시 캠코더로 석상을 비추며) 모험도 이어가겠습니다. 초록빛 검투사의 능력은 정확히 석상에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석상은 검투사에게 길을 내어줬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모험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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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도 멜트미러가 직접 만든 TRPG를 활용해 보다 재밌는 대화의 장을 만들어보세요. TRPG 세계에서 이야기를 나누면 상상력을 동반한 대화로 확장될 수 있어요!
✱ 멜트미러의 TRPG가 담긴 디퍼 툴킷 다운받기
𝗖𝗮𝘀𝘁 멜트미러
𝗗𝗶𝗿𝗲𝗰𝘁𝗼𝗿/𝗠𝗼𝗱𝗲𝗿𝗮𝘁𝗼𝗿 Hyeyoon Chung
𝗣𝗵𝗼𝘁𝗼 & 𝗩𝗶𝗱𝗲𝗼 Sanghee Kim
𝗘𝗱𝗶𝘁 Seulgi Lee
𝗗𝗲𝘀𝗶𝗴𝗻 Jaehyung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