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폐소재 오브제 제작자. 플라스틱 베이커리 대표.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많이 떠올린 질문
Q. 물건의 사용 주기는 왜 이렇게 짧을까?
애니미즘 전시를 인상 깊게 본 적 있다. 무생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세계관에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물건을 의인화하기 시작했다. 버려진 물건을 보면 연민을 느꼈다. 쓰레기가 되기 전까지 역할이 있었고 최선을 다했을 텐데. 제품에 대한 연구를 하던 중 물건마다 사용 주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용 주기가 생명이라면, 물건의 삶은 왜 이토록 짧은지 고민하게 됐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물질과 소재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일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효율적으로 하자.’ 처음에는 작은 오븐으로 시작했다. 예산이 확보되면 더 좋은 스펙의 오븐으로 계속 교체하며 효율적인 시스템과 공정을 만들어갔다. 오븐이 내게 가장 좋은 도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제빵사니까.
오래전부터 버려진 물건들에 관심이 많았다고 들었어요.
애니미즘 전시를 인상 깊게 본 후 물건과 쓰레기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많은 곳에서 다양한 쓰임새로 사용되다가 한순간에 버림 받잖아요. ‘고생했어’ 라는 말 한마디도 못 듣고요. 어쩐지 배은망덕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 무렵 셰어오피스를 쓰고 있었는데, 사무실에서 버리려는 물건들을 일주일 정도 모아 상을 차렸어요. 음식을 올리긴 애매한 것 같아 국화꽃 한송이를 올리고 잘 가라는 인사를 했죠.
물건 장례식을 치른 후 마음에 변화가 있었나요?
물건에 대한 생각이 바뀌진 않았어요. 그동안 하고 있던 생각을 표현한 의식이었죠.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의 일들이 플라스틱 베이커리로 이어진 것 같아요. 사람들이 버린 물건들과 재활용에 대한 아카이빙을 계속 해왔는데, 그걸 언젠가 작업으로 만들고 싶었거든요. 물건 장례식은 중간점이었어요.
플라스틱을 빵처럼 구워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베이킹 오븐의 스펙이 플라스틱과 녹는점이 똑같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실험 삼아 병뚜껑을 오븐에 넣고 구워봤어요. 두 번 정도 테스트했는데 미니 피자 같은 모양이 나왔죠. 와플 기계도 사서 병뚜껑을 올려놓고 찍어 눌렀죠. 진짜 빵처럼 잘 구워지더라고요. 플라스틱을 굽는 과정이 베이킹과 거의 똑같아요. 밀가루처럼 가루로 분쇄해 저울에 계량한 후 틀에 담아 구워 내요.
플라스틱 베이커리를 운영하며 버려지는 병뚜껑을 모으고 플라스틱이라는 소재를 깊이 탐구하게 되잖아요.
플라스틱이 생각보다 예민해요. 도자 등 공예 소재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은근히 까다로워요. 온도에 민감하고 생각보다 다루기 쉽지 않은 녀석이죠. 업사이클링 관점에서는 갈 길이 굉장히 멀다고 봐요. 플라스틱 베이커리에서는 재생 플레이크로 병뚜껑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미 병뚜껑을 분쇄해 판매하는 곳이 있어요. 달리 얘기하면, 병뚜껑을 재활용하는 곳은 많았지만 재활용한 병뚜껑을 예쁘게 포장하는 법을 몰랐다는 거죠. 플라스틱 베이커리는 그 역할을 하고 있고요.
와플과 카눌레를 만들었는데 앞으로의 베이킹 계획은 어떤가요?
병뚜껑 이외의 다른 소재를 재료로 사용해 보려 해요. 플라스틱 베이커리를 시작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인데 병뚜껑 말고도 문제가 되는 쓰레기들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쌀 껍질, 폐식용유, 음식물 쓰레기 같은 바이오매스도 환경에는 큰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요즘 굴 껍데기를 테스트하고 있는데 바다에 그대로 폐기되는 굴 껍데기가 바다 사막화의 원인이 되기도 해요. 더 다양한 소재를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