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노선도는 지하철과 달리 길이 복잡해 한눈에 확인하기 어렵다. 영국 런던의 버스 정류장에는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둔 버스 맵이 있다. 정류장에서 이 지도만 확인하면 도시 어디든 갈 수 있다. 박예솔 디자이너는 영국 유학 시절에 이 지도를 보고 서울에서 지도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런던 버스 맵은 100여 년간 여러 디자이너가 힘을 보태어 만들었어요. 저 같은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지역별로 하나씩만 지도를 만들기 시작하면 100년 뒤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지도가 될 것 같았어요.”
박예솔 디자이너는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자연히 동네를 걷게 되니 버스 맵과 함께 마을 지도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는 지도와 달리 그가 만든 마을 지도에는 지역 주민들의 시선이 녹아 있다. 마을 지도 워크숍을 통해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해 지도 위에 표기한 것이다. 그렇게 만든 지도가 차곡차곡 쌓였고, 이를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매드맵에 모았다.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요즘,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 마을 지도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데요. 여러 사람의 수고와 비용이 들어간 지도가 지역에서 잠깐 배포되고 사라지는 것이 정말 아까웠어요. 지도를 만든 사람들의 기록이 온라인으로 잘 유통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했던 생각이 매드맵을 시작하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박예솔 디자이너도 처음부터 동네에 애정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학창 시절을 보낸 동네를 떠났다 다시 돌아와 정착하면서 동네와 더 가까워졌다. 마을 지도 만들기 워크숍을 수년간 진행하면서 여러 동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우리 동네’의 장점도 보이기 시작했다. “동네 가게, 가까운 도서관, 시장을 오가면서 친해진 이웃들이 많아졌어요. 가게 사장님, 동네 친구 등 네트워크가 끈끈해지니 ‘이 동네를 떠나서 살면 재미가 있을까?’ 싶었죠.”
그는 오래도록 살고 있는 동네인 서울 응암동의 이야기가 담긴 마을 지도, 엽서, 가게 지도, 가게 자석 등을 제작하며 프로젝트를 점차 확장해 나갔다. “동네에 애정이 생긴다는 건 죽을 때까지 여기서 살아도 좋겠다는 마음일 것 같아요. 이웃들과 함께 우리가 사는 곳을 다양한 콘텐츠와 활동으로 채우는 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동네의 모습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