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명
트락타트(TRAKTAT)
의미
사실을 논리적으로 정렬하는 대신 단순히 배열함으로써 진리에 가까워진다는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글쓰기 방식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우리 역시 위계적인 상징이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길 원한다. 별들이 모여 별자리를 이루듯, 각자가 지닌 고유의 이야기를 지키며 서로 연대하고 싶다.
탄생 시기
2022년 봄
핵심 가치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 맺기. 모순을 마주할 때 결코 눈을 감지 않을 것.
브랜드 준비 초기에 가장 많이 했던 질문
Q. 이름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
첫 단추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기에 매우 신중하게 이름을 고민했다. 존경하는 발터 벤야민의 개념으로 이름을 짓고 나니 브랜드가 나아가야 할 방향도 자연스레 정해졌다. 우리는 트락타트를 통해 흠모하는 철학가들과 그들의 사상을 소개하고 싶다.
성장 포인트
두 사람(이재영, 남아름)이 트락타트를 창업한 후, 팀에 새로운 멤버(조수근)가 합류하면서 브랜드 운영에 새로운 엔진을 달았다. 그 덕분에 제품마다 각자의 색을 유지하면서도 브랜드의 전체 무드가 조화롭게 통일되었고, 실루엣과 소재 면에서도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다.
세 분은 어떻게 만났고, 트락타트를 시작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요?
이재영 저희 셋은 대학교에서 만났어요. 철학책을 함께 강독하고, 교지를 만들고, 서울 동묘 벼룩시장에 빈티지 옷 구경을 다니며 가까워졌죠. 저는 대학교와 대학원을 거치며 오랫동안 정치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남아름 대학원에서 시 비평을 공부했어요. 코로나19 시기에 연구가 난항을 겪으면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되었죠. 문학과 철학을 날것 그대로 다룰 방법을 찾고 있었어요.
조수근 글로 먹고살고 싶어서 기자로 일했습니다. 커리어 면에서는 비전이 있었지만, 일과 일상의 극심한 불균형 탓에 개인의 삶에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어요. 결국 신문사를 그만두고, 재영과 아름의 설득으로 트락타트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분야 중에서도 왜 패션을 선택했나요?
이재영 어릴 때 부모님이 고생하며 옷 만드시는 모습을 보고 자란 터라 의류 업계에는 절대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러다 코로나19 시기에 부모님을 도우면서 패션 산업의 구조를 자연스레 탐구하게 되었는데요. 한국처럼 봉제 기술이 뛰어나고 원단 시장과 부자재 시장이 잘 갖춰진 나라도 드물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이러한 시장 환경의 조건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고 싶었죠.
남아름 어떤 옷을 만들지 아이디어는 이미 준비된 상태였어요. 대학생 때 발터 벤야민과 미셸 푸코의 사진으로 티셔츠를 만들어 친구들과 입고 다닌 적이 있거든요. 그런 옷을 좋은 품질로 재현해 보고 싶었어요. 책에 비유하자면 튼튼한 만듦새의 양장본처럼요.
의류 제작에 필요한 전문 지식은 어떻게 쌓았어요?
조수근 동묘가 저의 패션 스승일 만큼 빈티지 옷을 좋아해요. 수백 벌의 옷을 모으다 보니 실측과 핏에 대한 감을 조금씩 익힐 수 있었죠. 버릴 옷이 생기면 하나씩 분해해 가며 옷의 구조를 공부했고요.
이재영 현장에서 배운 것이 많아요. 패션 업계 용어는 스페인에서 일본을 거쳐 들어온 경우가 많아, 그냥 들어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더라고요. 모르는 단어는 공장 사장님들께 물어보고, 이론서를 펼쳐보기도 했어요. 저희의 강점은 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거예요(웃음).
공부했던 철학이 사업에 어떤 도움을 주나요?
이재영 철학과 사업은 통하는 부분이 많아요. 어떤 이해에 다다르기 위해 아주 좁은 구멍을 통과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죠. 또 사업의 모든 과정이 설득의 연속이더라고요. 그럴 때 정치 철학을 공부하며 배운 논리가 큰 도움이 됐어요. 그래서 저희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확실한 근거를 바탕으로 의사 결정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요.
남아름 저희가 사업에 접근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사업적 체계 면에서는 부족함이 많지만, 인문학적 방법론을 활용해 트락타트만의 방식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트락타트의 옷은 어떤 과정으로 제작하나요?
남아름 브랜드 초기에는 철학가를 선정하고 그래픽 작업을 한 후에 옷을 제작했어요. 책을 만드는 과정과 비슷했죠. 주제를 정하고 내용을 채운 뒤 내지를 디자인하는 것처럼요. 최근에는 품목이 티셔츠 외에도 재킷, 바지 등 다양한 카테고리로 확장되면서, 먼저 실루엣과 소재를 정한 후에 이와 어울리는 그래픽 디자인을 고민하는 방식으로 변화했어요.
옷에 프린트된 강렬한 그래픽이 눈에 띄어요. 특히 철학가의 초상을 활용해 디자인할 때 어떤 점에 유의하나요?
이재영 우선 잘 아는 철학가를 선택합니다(웃음). 그 철학가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소비자를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또한 그래픽을 옷 뒷면에 배치하지 않아요. 옷을 입은 사람의 시선이 그래픽과 일치할 때 상징성이 잘 발휘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마지막으로, 대상을 희화화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꼭 지켜요. 늘 존경과 애정을 담아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읽고 쓰는 사람을 위한 옷’이라는 콘셉트는 어떻게 정했나요?
남아름 저와 재영은 당시 대학원생으로서 연구자라는 자부심을 담은 옷이 필요했어요. 독서와 장시간 앉아 있는 생활에 적합한 옷을 만들고 싶었죠.
이재영 도서관에서 기성복을 입고 느낀 불편함을 하나씩 개선하면서 ‘연구자를 위한 옷’이라는 정체성이 생겨났어요. 작은 책이나 노트를 넣을 수 있는 주머니, 앉아 있을 때 상의가 엉덩이에 걸리지 않는 기장, 오래 구부리고 있어도 무릎이 늘어나지 않는 3중 봉제 구조 등 다양한 시도를 했죠.
2024 F/W 시즌의 주제인 ‘우회로UMWEG’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이재영 초여름부터 디자인을 구상하며, 저희의 작업 방식이 굉장히 ‘우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우회로’라는 주제 아래, 직선 도로 위에서의 질주를 멈추고 조금 멀리 돌아가보자는 메시지를 담으려 했어요. 일단 주제를 정하면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돼요. 이번 시즌에는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스>에서 영감 받은 도시 풍경과 비보호 좌회전 표지판, 어린이 보호 구역 등의 상징을 사용했습니다.
트락타트에게 옷은 어떤 의미인가요?
남아름 개인적으로 패션을 개성의 표현이라 여기는 생각에 반대해요. 브랜드라는 권력 구조에 자아와 정체성을 의탁해 버리기 쉬우니까요. 트락타트의 옷은 어디까지나 ‘수단’이었으면 해요. 입는 사람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어요.
이재영 옷의 역할은 자아 표현보다 인상을 남기는 데 있다고 봐요. 고프코어 룩을 입는다고 해서 활동적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워크웨어를 입은 사람이 실제 노동자인 것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옷으로 잊히지 않는 인상을 남길 수는 있어요. 예를 들어 트락타트의 프란츠 카프카 그래픽 티셔츠를 입고 시위에 나가거나 학회에 나가는 사람들은 통념적인 룰을 따르지 않겠다는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죠.
조수근 겉모습보다는 이상향을 구현하는 수단으로 옷을 선택하면 좋겠어요. ‘이 옷을 입으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대신에 ‘이 옷을 입음으로써 내 ‘추구미’가 구현되는가?’를 더 중요하게 고민해야 해요.
철학가의 생일을 축하하는 콘텐츠 등 유쾌한 방법으로 철학을 전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조수근 신비주의로 낯섬과 경외감을 유발하는 기존 패션계의 홍보 방식을 선호하지 않아요. 저희는 옷에 대해 굉장히 솔직해요. 원단, 봉제 기법, 디테일까지도 최대한 다 설명하려고 하죠.
이재영 ‘뒤따라갈 수 있음’이라는 설득 방식을 좋아하거든요. 서양 철학의 방법론 중 하나인데, 누군가의 사고 과정을 그대로 따라가면 그 사람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개념이에요. ‘카프카는 잘 모르지만, 이 옷을 입다 보니 카프카가 궁금해졌어요’라는 리뷰가 저희의 의도를 잘 보여줘요. 이런 말의 힘으로 계속 일하고 있습니다.
트락타트가 옷으로 이루고 싶은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남아름 철학적 에세이나 인터뷰, 기고 등을 담은 매체를 만들고 싶어요. 옷을 판매해 확보한 자본으로 필자들에게 충분한 원고료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려고 해요. 저희가 옷에 접근하는 방식도 굉장히 수단적이죠(웃음).
조수근 보통 ‘수단’이라는 단어를 낮잡아 보지만, 도구가 제 역할을 하려면 완벽해야 하거든요. 그렇기에 트락타트의 옷은 어떤 목적보다도 단단한 방식으로 탄생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이재영 곧 웹 매거진을 오픈할 예정이에요! 미술 감독님의 조수, 장자 철학 연구자, DJ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 인터뷰로 구성했어요. 우리의 삶은 결코 일률적이지 않고, 각자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