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만화가이자 작가인 마스다 미리는 어느 책에서, 자신은 대부분의 것들에 크게 흥미가 없는 사람이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어쨌든 한번은 해본다고 했다. 귀찮고 힘들지만, 그것을 만난 후의 자신이 어떻게 변할지를 알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나는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고 비슷한 시간에 자고 같은 길을 산책하고 같은 카페에 가는, 그런 틀에 박힌 일과를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이사하는 것을 좋아하고, 집 안을 뒤엎어 구조를 바꾸는 것을 좋아하고, 낯선 요리를 만들어보는 것을 좋아하고, 내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다른 사람이라면 어떨까 하고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책이나 영화를 보다가 발견한 흥미가 생긴 일들은 꼭 따라 해보는 편이다. 얼마 전에는 한 작가가 매일 아침 일어나면 차부터 우린다고 쓴 글을 보고 눈 뜨자마자 물을 끓여 찻잎에 솔솔 부어 마시기 시작했고(성공), 대만 감독이 만든 어떤 영화를 보고는 천천히, 다정하게 말하는 법을 연습하기 시작했고(실패), 또 어떤 미국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뵈프 부르기뇽을 만들어봤다(실패).

내게 뵈프 부르기뇽을 만들어 보고픈 충동을 불러일으킨 영화 <줄리&줄리아>는 프랑스 요리를 하는 두 미국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는 미국인의 가정마다 한 권쯤은 꽂혀 있을 유명한 프랑스 요리책 <프랑스 요리의 달인이 되는 법>을 쓴 줄리아 차일드가 외교관의 이름 없는 부인으로 파리의 코르동블루에서 요리를 배우는 1950년대와, 평범한 공무원인 줄리 파월이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채로 살아가다가 아무것도 아닌 채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존재론적 불안감에 시달리는 2000년대를 교차해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람은 줄리다. 공공기관에서 상담 전화 받는 일을 하는 줄리는 어느 날 갑자기 프랑스 요리를 만들어보기로 결심한다. 줄리아 차일드의 <프랑스 요리의 달인이 되는 법>에 나온 모든 요리를 1년 동안 마스터하고 그 이야기를 블로그에 쓰는, 얼핏 들으면 즐거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등허리가 휘고 뼛골이 빠질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요리가 왜 좋은지 알아? 직장 일은 예측 불능이잖아. 무슨 일이 생길지 짐작도 못 하는데 요리는 확실해서 좋아. 초콜릿, 설탕, 우유, 노른자를 섞으면 크림이 되거든. 맘이 편해.” – <줄리&줄리아> 중 줄리의 대사

그러나 줄리의 프로젝트는 생각처럼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퇴근 후 월급을 탈탈 털어 사 온 온갖 비싼 식재료로 비좁고 낡은 부엌에서 열심히 요리를 한 이야기를 블로그에 써봤자 아무도 읽지 않고, 엄마는 대체 왜 그런 짓을 하느냐며 당장 그만두라고 어깃장을 놓는다. 줄리는 실망하고 기운이 빠지지만, 그녀에게는 남편 에릭이 있다. 에릭만은 줄리가 만든 요리를 맛있다며 칭찬해 주고, 일이 잘 안 풀려도 곧 잘될 거라고 위로해 주고, 아내의 프로젝트를 응원해 주며, 절망에 빠진 아내를 진정시키고 분노를 잠재우도록 할 줄을 안다. 그러니까 이 존재는 뭐랄까, 남편이라기보다는 맹수 조련사 같은 것이다.

그렇다. 맹수에게는 조련사가 필요하다. 나는 이 영화 <줄리&줄리아>가 30대를 목전에 둔 한 여성의 자아 찾기 프로젝트임과 동시에, 우리에게 사랑이, 우정이, 동거인이, 반려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반드시 홀로 서야 한다고 믿을 때 삶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워지는가. 혼자서 가는 길은 얼마나 쓸쓸한가. 그냥저냥 ‘못난 놈들끼리는 얼굴만 봐도 즐겁다’는 말을 가슴에 아로새긴 채 ‘오늘 너 화장이 기가 막히게 잘 받은 것 같다’, ‘너는 뭘 해도 잘될 놈이야’ 하고 맘에 없는 소리,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포크레인으로 떠서 서로에게 퍼부어도 사는 건 겨우 견딜까 말까 한 것이 아니던가.

줄리에게 조련사 에릭이 있다면, 줄리아에게는 수호천사 폴이 있다. 남자처럼 덩치가 크고 목소리도 이상한 줄리아는 남들이 보기에는 별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아주머니일 뿐이다. 하지만 폴은 그런 줄리아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응원해 준다. 요리 학교에서 무시당할 때, 책 출간이 8년이나 미뤄지고 또 미뤄질 때도 줄리아가 절망에 깊이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 폴의 헌신적인 지지 덕분이었다.

줄리와 줄리아의 도전이 어쩐지 너무 거창하게 느껴진다면, 내게는 반려자도 배우자도 조련사도 없다면,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의 주인공 스즈메의 스파이 되는 법을 참고해 봐도 좋겠다. 어릴 때부터 어정쩡하고 평범했던 스즈메는 평범한 학창 시절을 마치고 평범한 남자와 결혼해 평범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언제나 똑같은 하루, 존재감 없는 자신. 이렇게 평범하게 살아가다가 결국 모두에게 잊힌 채 사라진다면 얼마나 허무할까 싶다. 그럴 때 스즈메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해외여행이나 갈까?’ ‘파마나 할까?’

나는 이 장면을 보고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뭐 저런 웃기는 애가 다 있어? 인생이 허무한데 왜 갑자기 해외여행이야? 그런데 사는 게 허무할 때 나는 대체 뭘 했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술을 마시거나… 파마를 하거나… 여행을 갔던 것 같다. 당황스러웠다. 역시 그런 거구나.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 의외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