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differ STAGE
디퍼 스테이지는 책상을 무대로 깊이 있는 배움과 연결을 만드는 오프라인 워크숍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연사를 초청해 데스커 라운지 홍대의 빅테이블에서 사람과 생각이 만나고, 작업과 대화가 연결됩니다.
눈은 세상을 여는 첫 관문이자 마음의 그릇이다. 그래서인지 옛 어른들은 아이들의 눈동자 상태를 살피곤 했다. “이 녀석 눈이 똘망 똘망 하구나” 하면서. 그래서인지 아무리 시간이 흘러 머리가 하얗게 새고 허리와 어깨가 굽어도 반짝이는 눈만큼은 잃고 싶지 않다. 언제나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며 어떤 대상을 향해 마음과 열정을 다하고 싶다. 눈동자의 빛이 꺼지지 않는 한 언제나 아이로 살 수 있으니까.
‘강연은 잘 못한다’며 수줍게 들어온 김재원 대표는 아이의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짧은 순간에도 상대의 특징을 포착하고, 관심을 두며, 그 부분에서 특별함을 발견했다. 90분을 훌쩍 넘긴 강연 끝에 용기 있게 질문을 던진 한 청중에게 답변을 시작할 때도 그랬다. “왼손잡이시군요. 제게 쌓인 데이터로 봤을 때, 왼손잡이들은 아주 창의적인 사람들이에요.” 무언가를 깊게 파고들 뿐만 아니라 시선을 넓게 돌려 더 넓은 세계를 그려나가는 김재원 대표. 그의 이야기가 펼쳐질 동안, 우리는 우아하고 단단한 장인에게서 총명한 소녀의 눈빛을 봤다.
“저는 일평생을 덕후로 사는 사람입니다. 어떤 일이 시작될 땐 보통 목적과 방향성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예나 지금이나 그냥 재밌는 걸 하고 싶어요. 그런데 재밌는 걸 계속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엔 숫자적인 것들을 같이 보고 있어요. 회사를 어떻게 운영하는 것인지 모른 채 재밌는 걸 해오다가, 부가가치세 로직 같은 걸 새롭게 배워가면서 일해왔죠.
‘포인트오브뷰’라는 문구 브랜드 외에 ‘아틀리에 에크리튜’라는 컨설팅 회사도 운영하고 있는데요. 거절의 아이콘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일을 최대한 안 받으려고 노력하는 회사예요. 이유는 단순해요. 원치 않은 일을 하게 되는 쳇바퀴에 타지 않으려고요. 일을 해내기 위해 사람을 늘리고, 늘어난 인건비를 감당하기 위해 또 원치 않은 일을 해야 하고. 재밌는 일을 계속 하고 싶은 마음을 지키고 싶어요.”
내 브랜드의 일과 클라이언트가 있는 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일이 통제를 벗어나는 지점에 있을 것이다. 좋은 의도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답답함만 쌓이기 십상이다. 그러나 한편 클라이언트 일이 매력적인 이유도 이 지점에서 발견되곤 한다. 내가 모르던 세계에 가보도록 만드는 것. 영역의 확장이다. 클라이언트 프로젝트를 하면서 평소라면 탐색조차 하지 안 했을 세계에 발을 담가보게 된다. 그렇게 두 가지 일은 상호보완을 이루며 영역에 깊이와 넓이를 만든다.
“포인트오브뷰가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프로젝트 문의가 많이 왔었는데 한사코 거절하던 제가, 어느 순간 클라이언트 잡을 해보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어요. 깊이도 중요하지만 더 다양한 것에 노출되고 싶다는 마음에서였죠. 디퍼 툴킷에서도 얘기했듯이 제가 ‘나무위키’ 랜덤 버튼을 종종 눌러보는 이유예요. 보통 나무위키에는 궁금한 걸 검색해 보잖아요. 그런데 랜덤 버튼을 누르면 평생 안 찾아봤을 것 같은 애니메이션 작가 정보가 나오고 그래요. 그렇게 새로운 정보에 노출되면 신기하게 제 일과 삶에 연결 포인트가 생기더라고요. 클라이언트 일은 내가 모르던 분야의 문을 열게 되는, 근데 심지어 돈을 받고 그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재원 대표는 계속해서 문을 말했다. 한 세계로 진입할 때 사용되는 문. 때로는 단순히 공간의 전환뿐 아니라 나의 중심 축을 뒤흔드는 사건을 일으키기도 하는 문.
“나의 인생 타임라인에 정말 많은 문이 있다면, 나는 몇 개의 문을 열어봤나 생각해요. 어떤 문을 열면 단지 10평의 공간일 수도 있고, 어떤 문 너머에는 엄청 큰 대지가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공간의 크기는 나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문을 열었을 때 깊숙이 발을 들일 것이냐, 아니면 잠깐 훑어보고 말 것이냐의 차이 같아요. 저는 프로젝트 의뢰가 들어오면 ‘이 문을 열까, 말까’를 기준으로 접근해요. 성수동 LCDC 3층엔 ‘도어스 Doors’라는 이름을 붙이고, 각 문 너머에 브랜드들의 공간을 마련했는데요. 그게 제가 평소 제가 하는 생각을 접목시킨 거예요.”
이제 포인트오브뷰는 성수동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비가 오는 날에도 많은 사람이 매장 앞에 줄을 서고, 결코 작지 않은 3층 규모의 매장에는 수많은 인파가 가득 들어찬다. 성수에 놀러 갔는데 포인트오브뷰를 가본 적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성수동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성장시킨 주역이 포인트오브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제가 원래 매사에 호기심이 많아요. 단순히 리서치나 웹 서핑에 그치는 게 아니라 내가 재밌다고 여기는 건 어떻게 더 재밌는 걸로 만들어볼 수 있을까를 고민하죠. 그 첫 대상이 성수동이었어요. 저는 카페를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커피 문화에 관심도 없었어요. 디자이너로 일할 때였으니까 ‘성수동에서 디자인과 관련된 문화나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가 시작이었죠.
성수동을 처음 찾았을 때부터 좋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계속 찾아갔어요. ‘이 좋은 느낌은 뭐지? 왜 그렇지?’ 지금이야 서울에 로컬이라는 키워드가 생기고 동네마다 개성이 잘 개발되고 있는데요. 그때만 해도 서울에 동네라는 개념이 없을 때예요. 그저 경리단길, 홍대, 강남 일부가 핫플레이스로 주목받던 때죠. 그런데 성수동은 그 시절에도 뭔가 달랐어요. 동네 백반집에 가면 두꺼운 작업 점퍼를 입고 인쇄 공장에서 일하는 분들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예쁘게 차려 입고 구두 공장을 찾은 디자이너들이 함께 밥을 먹었어요. 또 수입차 정비소가 많다 보니 평소 보기 힘든 외제차와 종이 운반하는 인쇄소 차량이 함께 돌아다니고요. 이 대조적인 장면들이 너무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성수동에서 재밌는 일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어떤 일을 할지 방향조차 정하지 않았지만, 가슴이 뛰었다.
“지금은 성수가 너무 핫 플레이스가 됐지만, 그 유명한 대림창고나 어니언 카페도 없을 때 ‘자그마치’라는 공간을 시작했어요. 성수동은 공장지대이고, 내가 얻은 공간은 원래 인쇄소였으니까 그 느낌을 살렸어요. 그저 재밌는 일은 그곳에서 다 해보고 싶었죠. 그런데 티켓을 판매해 고객을 입장시키는 형태나 갤러리의 모습이면 허들이 높아지니까, 사람들이 꼭 목적을 갖고 이곳에 오는 게 아닌 편하게 올 수 있도록 카페의 기능을 넣었어요. 그렇게 카페의 기능을 갖춰 공간을 오픈하고 나니, 정작 재밌는 일을 기획하기는커녕, 설거지만 하는 상황이 반복됐어요. 기획에 대한 갈증이 너무 컸죠. 그래서 재밌는 작업을 하는 분들을 찾아다녔어요. 당시 작은 팀이었던 ‘슬로우파마씨’와 전시 콘텐츠를 만들기도 하고, 대학 졸업 전시를 다니며 그림 작업하는 분을 초청하기도 하고 그랬죠.”
아티스트들의 작품 전시에서 출발한 콘텐츠 기획은 강연으로 확장됐다.
“지금은 인플루언서라는 말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어요. 대중적이지 않더라도 특정 분야 혹은 세대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을 인플루언서라고 지칭하죠. 이때는 그런 용어는 없었지만 비슷한 개념으로 ‘페북 스타’가 있었던 것 같아요 (웃음). 어느 날엔가 직원들이 한 손님을 보고 ‘저 사람 누구다’ 하면서 엄청 좋아하는 거예요. 그때 저희 공간이 카페로 유명해지면서 연예인들이 뮤직비디오나 방송 촬영을 오고 그랬거든요? GD도 온 적 있어요. 근데 그때도 별로 심드렁해 하던 애들이 그 손님을 보고 막 팬 레터를 써주고 그러는 거예요. 그게 참 재밌는 부분이라고만 생각하고 관찰했죠.
그런데 얼마 후에 제가 그 친구들의 기분을 정확히 경험하게 된 일이 생겼어요. 당시 매주 토요일에 자그마치에 오는 노부부가 계셨는데요. 나란히 앉아 별 대화도 안 나누고 뜨개질을 하거나 차를 마시던 분들이었죠. 제가 지금도 범죄 사건 디깅하는 걸 좋아하는데요. 그때도 <그것이 알고 싶다>와 같은 범죄 수사물을 다 챙겨 보고 대법원 판례까지 찾아보던 사람이었어요. 여느 때처럼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는데 저희 매장에 자주 오시던 할아버지가 나오는 거예요. 알고 보니 프로파일러셨더라고요. 너무 반가워서 일주일 동안 그 할아버지가 다시 오시길 기다렸어요. 그리고 “그것이 알고 싶다 잘 봤어요!” 하며 아는 체 했죠. 그랬더니 정말 기뻐하시면서 말을 재밌게 쏟아내시는 거예요. 저도 그간 범죄 사건들을 디깅해온 실력이 있으니 대화가 깊어지고 끊이질 않았어요.
그렇게 ‘손님의 발견’을 기획하게 됐어요. 수사물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이분이 그냥 손님 A가 아니라 스타일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손님들을 연사로 초청해 자그마치에서 강연을 열고 그랬죠.”
경험은 한 시절의 추억이나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 경험은 다음 선택의 이유가 되고, 또 다른 경험을 탄생시키며 삶에 레이어를 쌓아 올린다. 그렇게 삶은 한계를 모르고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자그마치 공간 이후에 ‘오르에르’라는 공간을 기획하게 됐어요. 자그마치는 공간이 분리되지 않은 뻥 뚫린 130평 공간이었는데, 이곳에서 강연을 진행하다 보니까 카페 이용 고객들과 계속 부딪히는 거예요. 카페 공간 인테리어 단계에서 목적에 따라 공간 구획이 이뤄졌어야 했는데 그게 안 됐던 거죠. 오르에르는 앞쪽이 상가 건물, 뒤쪽이 주택 건물이었어요. 그리고 지하와 2층까지 갖춘 구조였죠. 이곳에서라면 여러 콘텐츠를 동시에 진행해도 서로 방해되지 않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곳에선 야학을 진행했어요. 흔히 야학은 낮에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 시간과 자금의 여유가 없어서 배움의 시기를 놓친 분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곳이었잖아요. 실제로 공장이 많은 성수동에는 70년대만 해도 야학이 많았대요. 저는 이 시대에도 야학과 같은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모두 글을 알지만, 다른 면에서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성인이 된 나는 뭔가를 배우고 나누려면 어딜 가야 하지? 했을 때 이곳을 찾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오드 투 스윗’도 오르에르에서 이어진 거예요. 오르에르가 케익 맛집으로 소문이 났는데요. 저희는 생크림 케익을 만들었는데 맛있으니 자꾸 배송 요청이 오는 거예요. 저희 제품이 생크림 제품이다 보니까 일반 택배는 안 되고, 오토바이도 어려워서 다마스 퀵을 썼어요. 얼마간 이렇게 배송 서비스를 운영했는데, 자꾸 수요가 늘면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오는 거예요. 그래서 오드 투 스윗이라는 과자 가게를 만들었어요.
콘텐츠의 시대라는 말은 새롭지 않다. 밥 먹고 잠드는 일상이 콘텐츠가 된 지 오래이고, 앞으로 평생 보지 못할 확률에 가까운 바다 생물들의 먹이 사슬을 침대에 누워 쉽게 소비하기도 한다. 콘텐츠가 많아지다 못해 넘쳐 흐르니, 이제 많은 콘텐츠를 보고 만드는 것보다 선별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김재원 대표는 그와는 또다른 이야기를 했다. 콘텐츠보다 전체적인 흐름. 스토리의 연결성을 강조했다.
“밤마다 휙 휙 넘겨본 숏츠, 다음날이면 기억 안 나지 않나요? 저도 그렇거든요. 갈수록 콘텐츠는 기억에 남지 않는 것 같아요. 콘텐츠의 서사가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그래요. 당연히 숏츠 볼 수 있지만, 저는 기획자로서 사람들을 설득하고 공감시키고 싶은 사람이라서, 흐름을 만들어내는 게 제겐 너무 중요하거든요. 하나의 콘텐츠를 아주 잘 만드는 것보다 항상 ‘우리가 만든 콘텐츠는 어떤 서사, 혹은 어떤 흐름으로 읽히는가’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야 스토리로 기억되고, 오래 갑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흘러가요. 브랜드나 공간도 콘텐츠일 수 있는데, 하나의 방향성과 스토리로 묶여야 덩어리로 보이는 거예요. 무언가로 채우는 게 아니라 어떤 스토리로 흐를까.”
그렇다면 포인트오브뷰는 어떤 흐름, 어떤 스토리로 설계되었을까? 포인트오브뷰가 성수동을 벗어나 여의도 더현대서울에 낸 매장을 보고, 우리는 의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역시 포인트오브뷰답다’고 말했다. 블랙이 키 컬러를 이뤘던 기존 매장과 달리 더현대서울의 매장은 가벼운 우드 톤이었음에도 어떻게 사람들은 단번에 고개를 끄덕였을까? 김재원 대표가 강조하는 문체에 그 답이 있었다.
“제가 운영하는 브랜드 ’아틀리에 에크리튜’에서 에크리튜는 사전적 의미로는 문체라는 뜻이에요. 저희는 브랜드에 에크리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말투, 패션 스타일이 다르듯이 브랜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내가 어떤 유형의 사람이고 싶다면, 외형뿐만 아니라 나의 말투, 습관이 흐름에 같이 연결돼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겉모습은 우아한데, 말투를 듣고 깨는 상황이 생기죠.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자그마치에는 백합을 꽂지 않았어요. 자그마치는 투박한 공장의 날것을 그대로 살리되 디테일 요소가 가미된 브랜드로 운영했는데, 백합은 화려하고 향이 강하거든요. 반면 오르에르는 가정집과 정원으로 이뤄진 따뜻하고 여성스러운 무드였기 때문에 그곳엔 백합을 자주 놓았어요. 사소하더라도 ‘이 브랜드는 이래야 해’와 같은 원칙을 세워뒀죠.
브랜드만의 에크리튜를 가지려면, 계속 다듬어야 해요. 그래서 저는 브랜드를 만든다가 아니라 집필한다고 표현해요. 그냥 브랜드를 만들고 끝이 아니라, 브랜드를 운영하며 어쩌면 그 생애가 끝날 때까지도 생각하는 거죠. 이 브랜드가 사람들과 함께 늙을 것인가 아닌가까지 염두에 두고요. 저희는 이렇게 책을 집필하듯이 글감을 모으고, 방향을 찾고, 시나리오를 만들기 때문에 에크리튜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아틀리에 에크리튜 팀과 포인트오브뷰의 기획은 김재원 대표가 기초 구조를 잡고 팀원들과 설계를 함께 쌓아가는 식으로 이뤄진다. 보통 기획을 시작할 때 많은 사람이 핀터레스트나 인스타그램에서 레퍼런스 이미지를 찾으며 시작하지만, 김재원 대표는 단어에서 시작한다. 그러면 더 넓은 가능성을 탐구하고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제가 팀원들에게 글감을 먼저 공유하는 이유는, 이미지에서 출발하면 그게 각인되어버리고 고착화 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기획의 첫 단계에서는 이미지 없이 텍스트를 전달해요. 텍스트에서 출발하면 그 사람의 경험치나 연령대에 따라 전혀 다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거든요. 훨씬 더 큰 가능성을 열어주는 거예요.
포인트오브뷰의 글감은 문방구, 문구였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언젠가 문방구 사장님이 되어야지 했거든요. 포오뷰 시작 전에 지금도 함께 일하는 매니저에게 “나 문구점 할래” 했더니 첫 마디가 “쉽지 않을 거 같은데요” 였어요. 이유인즉슨 이미 대형 문구점이 너무 많고 그 브랜드들의 시장 점유율이 높다는 이유에서였죠. 이때 저와 이 친구는 문구를 대하는 태도가 달랐던 거예요. 그래서 저희는 계속 대화하면서 그 간극을 줄여나가기 시작했어요.
저는 포오뷰가 될 것 같았거든요. 왜냐하면 기존 문구점들은 그저 문구가 쌓여있는 곳이 잖아요. 문구가 많이 적층된 곳. 어떤 관심사나 이슈를 점이라고 표현한다면, 그 점들을 잔뜩 모아둔 게 과거엔 먹히는 문법이었어요. 그런데 이제 그렇지 않아요. (물론 다이소는 달라요. 무수한 점에다가 가성비로 승부하니까요.) 점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느 공간에서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느냐, 점이 어떻게 보여지고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로부터 그 점을 발견했느냐가 중요한 시대예요. 제가 하려던 문구점은 그 점들로 스토리를 만들려고 했던 거니까 전혀 다른 사례라고 생각했어요. 저희에게 점은 포스트잇이나 노트, 볼펜이 아니라 포오뷰의 방향성과 철학, 아티스틱 마인드에 대한 이야기, 세잔의 사과에서 영감을 받은 심볼 같은 거죠.”
포인트오브뷰에 들어가면 꼭 무언가를 사서 나온다. 하다못해 지우개 한 개, 펜 한 자루라도. 그러고 다른 편집숍에 가면 똑같은 물건이 진열된 걸 보곤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곳에선 쉽게 지갑을 열지 않게 된다. 많은 사람이 포인트오브뷰에 감동받는 포인트 중 하나, 바로 물건을 제안하는 방식에 있다. 단지 아름다운 물건을 소개하는 글이 아니라 이 도구를 들이면 조금 더 괜찮은 사람, 조금 더 창의적인 크리에이터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글. 지금이야 포인트오브뷰와 같은 문법을 쓰는 곳이 많아졌지만, 이 부분 역시 포인트오브뷰가 시초였다.
“저희는 창작 욕망을 자극하는 브랜드이고 싶었어요. 도구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요. 일본의 어떤 작가는 만년필이 5개인데, 다 쓰임이 다르대요. 초고를 쓸 때, 퇴고를 할 때, 교정을 볼 때…… 도구와 결과를 연결해서 좋은 도구를 들이면 결과물이 달라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건넸어요.
저희는 꼭 실용적인 쓰임이 있는 것만이 도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포오뷰 기획 단계에서 프로이트의 책상 사진을 만났는데, 이 사람의 책상은 황학동 같아요. 온갖 오브제, 물건들이 놓여 있죠.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공간은 정말 조그맣고, 그 외의 공간은 전부 세계 각지에서 모은 것들로 둘러싸여 있어요. 세계적인 창작자의 책상만 봐도, 펜과 종이 외에 수많은 문화유산이 이 사람의 연구에 간접적으로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나의 창작과 무언가에 도움을 주는 것. 저흰 그걸 산책적 도구라고 명명해요.”
“아틀리에 에크리튜는 주로 클라이언트의 일을 하는데, 일을 하다 보면 현실적으로 우리의 생각대로 구현되지 않는 경우가 생겨요. 디자이너나 기획자 입장에서는 아쉬움과 결핍이 생기기 마련이죠. 저희는 그 결핍을 해결하려고 저희 자체 브랜드를 통해 아쉬움을 해갈하는 구조를 만들어요. 스스로 만든 기획 프로젝트를 한다든지요. 최근에 ‘인벤타리오’ 문구 페어가 그 결과라고 할 수 있죠. 인벤타리오는 저희가 기획하고 클라이언트를 찾아서 제안해 성사된 케이스예요.
문구 업계에 있다 보니까 어려운 점이 많았어요. 여전히 제조사에 연락을 하면 판매 단가나 체인점 개수를 묻는 곳이 많고, 과거의 기준으로만 문구를 평가하는 업계의 상황도 그렇고요. 이제 문구를 그냥 학용품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데, 이 문구의 즐거움을 우리만 이야기해선 안 된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이 시대에 잘하는 문구 브랜드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싶었어요. 이걸로 저희를 더 알리려고 한 게 아니라, ‘우리나라 문구 업계가 재밌어지면 좋겠다, 문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브랜드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그런데 팝업도 아니고 축제는 하나의 브랜드가 홀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축제에 참가할 브랜드도 필요하지만, 기획을 진행하고 운영하는 데에도 큰 조직을 갖춘 파트너가 필요했다. 김재원 대표는 늘 그랬듯이, 고민을 오래 하기보다 일단 마음이 가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우선 주인 없는 제안서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문구 페어에 대한 당위성을 스스로 정리하기 위해서요. 50장이 넘는 제안서를 만들었고, 29CM에 제안해 함께 손을 잡게 됐어요. 페어를 준비하면서 어느 정도 성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 정도로 폭발적일 줄은 몰랐어요. 코엑스에서 안전사고 우려로 티켓을 그만 팔라는 가이드가 내려왔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티켓 현장 판매도 못했잖아요.”
그런데 문득 궁금했다. 페어야말로 수많은 점이 적층 된 곳 아닌가. 김재원 대표는 페어에서도 포인트오브뷰의 문법을 인벤타리오에 동일하게 적용했다. 단순히 점을 모아두는 게 아니라, 점들을 이어주는 선으로 하나의 흐름을 만들었다.
“저는 국내 수많은 페어가 흥미롭지 않은 이유는, 하나의 흐름으로 읽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페어에서도 서사가 중요합니다. 포오뷰의 공간은 다른 부스에 비해 조금 크게 만들어 창작자의 도구들을 소개했어요. 그리고 이번 페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옛날 브랜드들을 함께 참여시키는 것이었어요. 오래된 문법을 가졌다고 배제시키는 게 아니라 하나의 흐름 안에 함께하는 것. 그래서 옛 브랜드와 신규 브랜드를 연결해 특별관을 만들었죠. ‘우리가 사랑한 문구’라는 스토리로 문구를 학용품에서 라이프스타일 관점으로 제안하고요. ‘지구화학’의 색연필에 ‘키티버니포니’의 그래픽을 입혀서 어린이 학용품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도구로 확장시켰죠.
또 평소 문구를 사랑하는 문구인 앰버서더를 선정해서 이들과 함께 평소 만들고 싶었던 문구를 함께 기획했어요. 단순히 마케팅 용이 아니라 사용자를 참여시킨 거죠. 나아가 페어 기간 5일 동안 찾아와준 분들이 나눠준 리뷰까지 시나리오로 구성했고요. 인벤타리오는 물건, 브랜드, 공간, 사람들, 그리고 시간을 엮은 하나의 이야기예요.”
김재원 대표는 줄곧 흐름을 강조했다. 글을 쓰기 전에 관찰을 통해 글감을 많이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방향과 시나리오가 중요하다는 것. 똑같은 색과 소재로 만든 실을 갖고 있더라도 어떤 배열로 실을 직조하느냐에 따라 다른 원단이 되고, 사람들에게 달리 쓰인다는 것.
이날 참여자들에게는 디퍼 툴킷 외에 ‘드림 보드’가 선물로 제공됐다. 일러스트레이터 수수진 (@_soosoojin) 과 함께 만든 메모지를 활용해 자기만의 꿈을 기록하고 아카이브 해서 꿈을 점진적으로 이뤄나갈 수 있도록. 비전을 하나의 명사로 기록하면 남들과 다르지 않을지 몰라도, 그 안에 무수한 과정과 나의 경험을 이으면 나만의 특별함이 창조될 게 분명하다.
✱ 포인트오브뷰 김재원 대표와 함께 만든 디퍼 툴킷 다운받기
𝗖𝗮𝘀𝘁 김재원
𝗗𝗶𝗿𝗲𝗰𝘁𝗼𝗿/𝗠𝗼𝗱𝗲𝗿𝗮𝘁𝗼𝗿 Hyeyoon Chung
𝗣𝗵𝗼𝘁𝗼 & 𝗩𝗶𝗱𝗲𝗼 Sanghee Kim
𝗘𝗱𝗶𝘁 Seulgi Lee
𝗗𝗲𝘀𝗶𝗴𝗻 Jaehyung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