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differ STAGE
디퍼 스테이지는 책상을 무대로 깊이 있는 배움과 연결을 만드는 오프라인 워크숍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연사를 초청해 데스커 라운지 홍대의 빅테이블에서 사람과 생각이 만나고, 작업과 대화가 연결됩니다.
연일 40도에 육박하는 날씨가 몸을 녹이다 못해 마음마저 지치게 하는 날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말간 하늘 위로 숨김없이 드러난 태양의 자취가 원망스러운 한여름의 어느 날. 지독한 무더위에 여름의 감각과 에너지를 느껴볼 새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의 기후는 쉴 틈 없이 내달리느라 과열된 우리의 상태와 닮았다. 늘 다급하고 부족한 우리는 쉬지 못해 몸과 마음 곳곳이 뭉치는 일이 다반사니까. 이 여름에 우리에겐 에어컨 바람보다 본질적으로 마음의 탈진을 달래줄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홍시야 작가의 <마음 크로키> 클래스는 비슷한 맥락에서 탄생했다. 바깥의 소음을 차단하고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며 나를 발견해나가는 과정. 홍시야 작가는 이 침묵의 행위를 통해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찾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제주에서 많은 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치유의 연대를 일으키고 있는 홍시야. 그가 제주의 푸른 바다색 모자를 쓰고 들어올 때, 데스커 라운지에는 시원한 바람이 함께 불어들어왔다. 삶을 향한 예찬이 담긴 눈은 햇빛을 받은 모래알처럼 반짝였다.
약 10년 전, 홍시야 작가는 디자인 상품 기획자이자 아트 디렉터로서의 커리어를 뒤로 하고, 제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자연의 숨결 속에서 삶을 가꿔 나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그림, 싱잉볼, 사운드 드로잉으로 자신 뿐만 아니라 많은 이의 마음을 매만져왔다. 특히 홍시야가 제주에서 줄곧 진행해온 <마음 크로키> 클래스는 워낙 찾는 이가 많아져, 먼 타지에서 제주로 날아가 클래스를 듣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사실 이 강연 초대에 응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가 체력이 그리 좋지 않다 보니, 제주에서 서울까지 오는 게 고민이 되더라고요. 하지만 이 기회에 좋은 분들을 만나 서로 마음을 나누는 일에 작은 씨앗을 뿌려보고 싶어서 왔어요 (웃음). 이렇게 많은 분이 이런 시간을 원한다는 사실이 용기가 되네요.”
홍시야 작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귀에서 마음으로 흘러 들어왔다. 익숙하지 않은 시도에 고민을 반복하는 우리에게 가장 먼저 ‘나도 너와 같다’는 위안을 전하는 것 같았다. 그는 곧바로 마음 크로키가 무엇인지 정의를 소개했다. 마음과 크로키. 이 두 단어를 각자 두고 보면 익숙한데, 합성어로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처음엔 제가 어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지 정의가 안 됐어요. 그래서 스스로 ‘내 그림으로 무엇을 얘기할 수 있나’ 고민이 많았는데요. 곰곰히 생각해 보니, 저는 ‘마음’의 어떤 풍경이나 무의식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고 그 마음을 빠르게 포착해 풀어내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때부터 ‘마음 크로키’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어요. 마음 크로키는 창작의 한 영역이기도 하지만, 내면의 탐구예요. 나에 대해서 알기 시작하면 그 안에 치유가 일어나고, 사유와 통찰이 생겨나요. 내가 그은 선과 고른 색들은 나를 알아갈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눈에 보이는 걸 표현하는 것도 좋지만, 제가 중요하게 다루고 싶은 건 내면의 것이에요. 마음을 관찰하며 조용한 방식으로 내 안에 떠오르는 것들과 만나는 시간. 여러분은 ‘나’라는 몸과 20년, 30년, 40년 친구로 지내고 있는데, 내 마음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잘 아시나요? 우리는 마음을 들여다 보기엔 너무 바빠요. 세상엔 봐야 할 것도, 들어야 할 것도, 해야 할 것도 너무 많잖아요.”
“제가 작업을 하기 전에 꼭 하는 의식 같은 활동이 있어요. 아주 아주 중요한 일이죠. 바로 청소예요. 저는 공간을 정돈하고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요. 마음을 고요하게 비우는 작업은 그 다음이에요. 마음을 비운다는 건, 현재에 집중하는 거예요. 이 과정이 제 작업에서 7~8할을 차지하는 것 같아요.
“제가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사람은 하루에 7~8만 가지 생각을 한대요.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중에 70%는 어제 했던 생각과 같은 거래요.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생각을 하고 계실 거예요. 그런데 정말 내 마음이 무엇을 얘기하는지 보려면, 좀 고요해져야 해요. 저는 명상을 통해 마음을 비우는데요. 명상의 도구는 다양해요. 싱잉볼을 치기도 하고, 차 마시기, 산책. 아니면 그냥 멍하게 앉아 있기도 해요. 그렇게 침묵의 상태가 만들어지면, 어떤 감각이나 기억들이 조용히 올라와요. 내 안에 어떤 사유가 만들어지면 그때부터 도화지를 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런데 명상은 무엇일까? 이제껏 명상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눈을 감으면 쉽게 잠이 쏟아지거나, 끝내지 못한 투 두 리스트가 떠올랐다. 명상 장인들이 간증처럼 말하던 무언가를 떠올리려 기를 쓰거나.
“제 생각에 명상은 그냥 쉬는 것 같아요. 내 몸과 마음이 편한 상태.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시간. 그런데 우리에겐 내 몸과 마음을 편하게 두는 게 제일 어려워요. 왜냐하면 우리는 무언가를 하는 것에 길들여 있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이제껏 그 누구도 저에게 휴식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삶에서 잘 쉬는 방법이 너무 중요하더라고요. 우리 몸은 잘 이완되어 있을 때 자가 치유 능력이 생긴대요. 다른 사람이 풀어주고 눌러줘서 몸이 회복되는 게 아니라, 잘 이완되어 있기만 하면 우리 몸에서 스스로 치유 에너지가 나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잠깐이라도 다같이 쉬어볼 거예요. 앞서 말했듯 명상의 도구는 다양한데, 오늘은 호흡이라는 도구를 사용해볼게요. 들숨과 날숨이 나가는 방향에 집중하면서 몸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도록 해요.”
홍시야 작가의 안내에 따라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코를 통해 들어온 공기를 손끝과 발끝으로 보내보기도 하고, 잘 쓰지 않던 척추의 감각을 세워보기도 하면서 오로지 호흡과 내 몸에 시선을 두며. 이렇게 몇 차례를 반복하자 몸에 둔 시선도 거둬지고, 호흡의 길을 따라가던 감각도 사그라들었는데 문득 눈앞에 형상 하나가 떠올랐다. 사자의 갈퀴 같은 오렌지빛 형체. 부드러운 동시에 강인한 형상이었다.
“잠시 동안 각자 다양한 경험을 하셨을 텐데요. 지금 했던 것처럼 일상에서 꾸준히 명상을 이어가는 게 쉽지만은 않을 거예요. 그런데 뭐든지 좋은 경험은 계속 하고 싶어지듯이, 호감을 갖고 자꾸 해보는 게 중요해요. 처음엔 1분도 괜찮고 아주 찰나의 명상도 괜찮아요. 하다 보면 몸에 근육이 붙듯이 마음 근육이 생겨요. 그런 경험을 계속 하다 보면, 내 안에 있는 창작 기반을 꺼내 쓸 수 있어요.“
”그렇게 편안해진 상태를 만들고, 명상을 하며 떠오른 감각과 감정 혹은 어떤 생각들을 도화지에 그려요. 어떤 생각을 개입시켜서 ‘난 오늘은 고래를 그릴 거야’ 하고 계획을 세우는 게 아니라, 심상을 스케치 하는 거예요.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흘러나오는 대로. 물론 처음엔 잘 안 돼요. 저도 20년 넘게 이 작업을 하며 편안해진 거예요. 그림이라고 해서 꼭 크레용으로 그릴 필요는 없어요. 글씨나 글도 그림이고, 어떤 날은 녹음기를 켜서 노래를 불러도 돼요.”
본격 마음 크로키를 그려볼 시간 10분이 주어졌다. 무언가를 세밀하게 묘사하거나 본격적인 그림을 그리기엔 짧은 시간.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 탓이라 생각했는데, 그보다 의도적인 이유가 있었다.
“시간을 많이 두고 그리면 잘 그려야 한다는 부담이 생겨요. 그러면 멈칫거리게 되죠. 마음 크로키는 세밀하게 묘사하지 않고 흐르는 대로 그리는 장르예요.”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도 모르겠고, 마냥 두렵다면 그냥 뭐라도 그어보세요. 그냥 몸이 가는 대로 직감적으로. 그러면 그 행위에 마음이 따라가기도 하거든요. 마음이 선을 따라가요. 형태보다 먼저 시작되는 건 내 마음의 방향이거든요. 선을 그리는 동안 나는 나를 놓지 않을 수 있어요. 그래서 그냥 점을 찍거나 칠하거나, 선을 쭉 하나 그으면 거기서 출발해 계속 마음이 이어지게 될 거예요. 동시에 내 마음을 계속 살펴보세요. 불쑥 잘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거예요. ‘누가 볼까봐 두려운 마음이 올라오네’ 하고 마음을 알아차리는 거예요. 핵심은 행위로 내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관찰하는 거예요.”
선을 그린다는 것은
내가 나를 믿는 방식이다.
흔들려도 괜찮고, 어긋나도 괜찮다.
어쩌면 인생이란 여정은
그렇게 불완전한 선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한 ‘크로키’일지도 모른다.
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서 나는 종종
내가 몰랐던 나를 만나게 된다.
그래서 매일 그린다.
다시 나를 찾기 위해.
다시 나를 잃기 위해.
_ 홍시야 작가의 글 중
“제주에서는 주로 아이들과 함께 워크숍을 진행해요. 아이들과도 같이 명상도 하고 그림을 그리거든요? 아이들과 싱잉볼 명상을 하면 어떤 친구는 그래요. “진동이 손바닥으로 들어와서 세 번째 발가락으로 빠져나갔어요.” 이런 아이들의 표현에 많이 놀라기도 하고 감동 받아요. 진동의 떨림을 온몸으로 느낀다는 건, 그만큼 감각이 많이 열려 있다는 증거이겠죠? 이건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특별함이 아니에요. 우리도 어린 아이 시절을 모두 지나왔잖아요. 우리도 다시 찾을 수 있어요. 제가 만나는 아이들은 그림을 잘 그리려고 애쓰거나, 이미 그린 그림을 지우지 않아요. 틀린 그림은 없으니까요. 지금 이 순간에 내가 그릴 수 있는 그림은 이것 뿐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5분 후, 1시간 후에는 또 다른 그림이 나올 테니까요.”
“저는 줄곧 제가 궁금했어요. 내가 누군지, 어떤 색을 좋아하고, 어떤 걸 찾고 있으며, 왜 그것에 흥미를 느끼는지. 의식적인 것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인 부분에서도 내 마음이 작동되는 원리가 궁금했어요. 그걸 발견하게 해준 아주 강력한 도구가 그림 일기예요.
저는 아주 오래 전부터 그림 일기를 썼어요. 그림 일기로 취직을 한 경험도 있죠. 학교 졸업도 안 하고 포트폴리오도 없던 20대 초반이었는데요. 느낌이 좋은 회사에 덜컥 이력서를 냈더니 포트폴리오를 요청하더라고요. 어떡하지, 가지 말까 하다가 그동안 그림 일기장으로 써온 스케치북 5권 정도를 가져갔어요. 있는 그대로의 내가 담긴 스케치북을 가져가서 저를 소개했죠. 덕분에 그 면접은 성공했어요.“
“우리에겐 모두 작은 소망, 어떤 열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에 말 못할 감정이나 고민도 있을 테고요. 거창하지 않더라도 작은 드로잉 북에 내 감각을 솔직히 담을 수 있는 그림 일기를 추천합니다. 매일 나를 기록하고 관찰해 보면, 되게 든든해요. 그 어떤 존재도 부러울 게 없는 비밀 창고를 가진 기분이거든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는 친구를 가진 기분도 들고요. 내가 나의 이야기들을 하나 하나 세워 볼 수 있는 중요한 비밀 창고를 꼭 만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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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야 작가가 클래스를 마치며 공유한 음악을 여러분과도 나눕니다. 마음이 분주하고 어지러울 때, 이 노래의 가사를 곱씹으면서 내면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보세요. 이미 우리가 가진 감사와 축복을 다시 일깨울 수 있을 거예요.
“햇빛이 내리면서 가끔 삶은 정말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걸 일깨워줬어요.
난 내 주위의 모든 것이 어떻게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느꼈어요.
밤에는 해안에 부서지는 바다의 리듬을 들어요.
내가 감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요.
그들이 말하죠. “사랑하는 이들을 꽉 붙잡아. 그들을 가까이에 둬.”
그들은 말하죠. “지금 이 시간을 꼭 잡도록 해. 그것에 빛이 들도록 해줘.”
때로 나는 사랑이 펼쳐지는 걸 보면 난 조금 격양돼요.
두 심장은 기억의 반응으로 묶여 있어요. 그들은 영원히 붙잡고 있을 거예요.
당신의 주위에는 축복이 가득해요. 눈을 뜨세요.
당신 위로 내리쬐는 햇살을 느껴봐요. 당신의 마음을 자유롭게 해요.
당신 주위에는 축복이 가득해요. 밖으로 한 발 내딛어 봐요.
당신의 심장이 새로운 빛 안에서 빛나게 놔둬요. 그것이 살아나는 것을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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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시야의 <마음 크로키> 그리는 방법이 담긴 디퍼 툴킷 다운받기
𝗖𝗮𝘀𝘁 홍시야
𝗗𝗶𝗿𝗲𝗰𝘁𝗼𝗿/𝗠𝗼𝗱𝗲𝗿𝗮𝘁𝗼𝗿 Hyeyoon Chung
𝗣𝗵𝗼𝘁𝗼 & 𝗩𝗶𝗱𝗲𝗼 Sanghee Kim
𝗘𝗱𝗶𝘁 Seulgi Lee
𝗗𝗲𝘀𝗶𝗴𝗻 Jaehyung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