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치앙마이에서 매료된 것
복태 치앙마이 여행 중 우연히 핸드메이드 옷가게에 들렀다. 심플한 디자인이지만 정말 예뻤다. 소수 민족이 만든 옷이라고 하더라. 옷을 사서 나오는 길에 어떤 남자가 바느질하는 모습에 반해 수업을 부탁했다. 그가 우리의 바느질 스승이 된 액(Eak)이다. 직접 배워보니 말도 안 되게 쉽고 단순한 재단법이 놀라웠다. 줄자로 치수를 재거나 패턴 표를 만들 필요 없이, 우리 몸을 이용해 재단하다니. 게다가 재봉틀 대신 손바느질로 옷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충격적이면서도 재미있었다. 한동안 마음에 드는 원단을 발견할 때마다 나와 아이들의 옷을 만드는 재미에 푹 빠졌다. 사람들이 ‘예쁘다’, ‘입어보고 싶다’고 해서 바느질을 알려주기 시작한 것이 소문이 났고, 곧 워크숍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군 복태가 바느질을 시작한 이후 우리는 거의 매년 치앙마이를 찾았다. 어느 날 스승님의 재킷에 놓인 자유로운 자수를 보고 완전히 새로운 영역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됐다. 그때 ‘나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치앙마이 자수에 매료된 순간이었다. 복태는 바느질을 기반으로 한 옷 만들기, 나는 치앙마이 자수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바느질이 선사하는 몰입
한군 막상 배워보니 복태가 왜 바느질에 푹 빠졌는지 알겠더라. 빠르게 몰입되고 잡념이 사라졌다. 부산스러운 마음이 순식간에 가라앉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리거나 손으로 뭔가 만드는 것을 좋아했는데, 바느질이야말로 진정 새로운 언어였다. 음악이 소리와 언어로 감정을 표현한다면, 바느질은 실과 바늘로 감각을 묘사할 수 있다. 창작의 새로운 도구를 찾은 셈이다.
복태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땐 음악에 집중하기 어렵다. 음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바느질은 언제든 할 수 있고 원할 때 멈출 수 있는 데다, 수업을 열어보니 음악보다 수요가 많더라. 바느질이 우리의 생계를 더 잘 책임질 수 있겠단 생각마저 든다. 음악이 나만을 위한 몰입이라면, 바느질은 몰입하면서 소통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죽음의 바느질 클럽’의 의미
한군 초창기엔 워크숍을 9시간씩 진행했다. 바느질에 몰입하다 보니 사람들이 집에 안 가더라(웃음). 그중 한 분이 기지개를 켜면서 “이거 완전 죽음의 바느질 클럽이잖아?”라고 말한 데서 우리의 이름이 출발했다.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바느질을 할 때 번뇌, 번잡스러움, 소란스러움이 가라앉는다. 처음에는 농담조로 지은 이름이지만 그런 평온한 마음의 상태랄까, 죽음의 작용을 이야기하는 측면이 있다. 한번 시작하면 너무 재미있어서 죽기 전까지 멈출 수 없다는 뜻도 담겨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