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명
페일블루닷(Pale Blue Dot)
의미
칼 세이건은 태양계 탐사선인 보이저 1호가 지구를 촬영한 사진을 보고 ‘창백한 푸른 점(Plae Blue Dot)’이라고 표현했다. 우주의 먼지에 불과한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란 존재는 얼마나 작은 점인가 생각해 볼 수 있는 단어다.
탄생 시기
2019년 1월 1일
핵심 가치
모든 여행지를 조향사인 내가 직접 방문하고 느낀 점을 향으로 만든다. 이를 위해 체력 관리를 꾸준히 하고 있다. 사무실에 로잉 머신을 둔 이유다.
브랜드 준비 초기에 가장 많이 했던 질문
Q 앞으로 무엇을 이뤄야 할까?
브랜드 론칭 날 10년 치 로드맵을 작성했다. 매년 이뤄야 할 목표를 정해 차근차근 이뤄나가고 있다. 가야 할 지점만 명확하게 생각하고 있으면 어떻게든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성장 포인트
가장 사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브랜드를 만들었다. 이런 진솔한 개인의 이야기는 다른 브랜드가 가질 수 없는 독보적인 매력을 만들어낸다. 모베러웍스, 라마다 호텔, 하나투어 등 영향력 있는 브랜드가 페일블루닷과 협업한 이유다.
여행에서 영감을 받아 향을 만들고 있어요. 여행을 좋아하시나 봐요.
일본어를 전공했지만 대학 졸업반이 되던 해까지 해외여행을 떠나본 적 없었어요. 돈만 쓰고 손에 남는 것 하나 없는 여행보단 쇼핑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죠. 그런 제가 답답했는지 친언니가 200만 원을 주며 일본 여행을 다녀오라고 시켰어요. 그 돈으로 노트북을 사려다가 언니한테 걸리는 바람에 꼼짝없이 7박 8일 동안 도쿄를 다녀왔죠. 재미는 있었지만 그때까지도 여행에 대한 생각이 바뀌지 않았어요. 4학년 때 취직을 하게 되어 1년 동안 학업과 일을 병행하느라 정신도 없었고요. 그러다 문득 ‘작년 도쿄 여행 참 재밌었는데, 그때 뭘 했지? 뭘 사 왔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어요.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대신 하네다 국제공항에 내렸을 때 나던 이국적인 냄새가 떠올랐어요. 충격이었죠. 물질적인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제 가치관이 완전히 바뀐 순간이에요.
향과 전혀 관련 없는 길을 걸어왔는데, 어떻게 향기 브랜드를 만들었나요?
사람들에게 여행의 장점을 알리고 싶었어요. 여행을 하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내가 여행에서 보고 느낀 점을 향으로 전달하면 호기심이 생길 거란 판단이 들어, 향기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죠. 이후 3년 동안 조향 공부도 하면서 새로운 회사에 들어가 브랜드 기획자로 일했어요. 시드머니가 필요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브랜드를 만드는 일을 A부터 Z까지 배우고 싶었어요. 그때 공부했던 게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하고 제품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었어요. 지금도 페일블루닷을 운영하며 화장품 회사에서 제품 기획 개발자로 근무하고 있어요.
조향과 브랜드 운영, 회사 일까지 너무 바쁘지 않나요?
바쁘죠. 하지만 브랜드를 시작할 때부터 회사 일을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소규모 브랜드가 빠르게 문을 닫는 이유 중 하나가 혼자 일하면서 업계와 네트워킹이 단절되기 때문이라 생각했거든요. 특히 화장품 분야는 트렌드뿐만 아니라 성분 이슈 같은 정보를 발 빠르게 캐치해야 해요. 페일블루닷을 더 잘 운영하기 위해 회사를 다니는 걸 선택한 셈이죠. 하고 싶은 일에 도움이 된다면 무조건 해내야 하는 성미예요. 물론 너무 바빠서 주말에만 열던 페일블루닷 쇼룸은 지난 5월에 닫았어요.
향은 직접 경험을 해보아야 더 잘 알 수 있는데, 리스크가 있지 않나요.
쇼룸이 경기 수원에 위치해 있기에 고객이 여기까지 찾아오는 일이 어려울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전국의 카페, 편집 숍, 공유 공간 등과 협업해 그곳에 페일블루닷의 제품을 비치했어요. 각 제품의 향에 대한 설명은 QR 코드로 제공하고요. 조향사 임향미 1, 2, 3을 제품과 함께 보낸 거예요. 향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면 더 생생하게 느껴질 거예요.
모베러웍스, 라마다 호텔, 하나투어 등의 브랜드와 협업을 활발하게 하고 있어요.
신생 브랜드를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방법으로 협업을 선택했어요. 하나의 협업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내면 이를 보고 다른 브랜드의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큰 브랜드 외에도 지역에 자리한 스테이 공간과 협업해 그곳만을 위한 향을 만들고 있어요. 직접 공간에 방문해 느낀 점을 향으로 구현해 디퓨저, 룸 스프레이 등으로 제작해요.
공간이나 여행에서 느낀 점은 추상적이잖아요. 이를 어떻게 구체적인 향으로 구현하나요?
여행에서 좋았던 순간을 필름 카메라로 촬영해요. 한국에 돌아와 사진을 모두 펼쳐 놓고 여행지를 대표할 수 있는 단 한 장의 사진을 골라요. 그렇게 고른 사진 속 자연물이나 건물, 인테리어 요소, 사람의 분위기 등을 향으로 표현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양양’이란 향은 서피 비치의 풍경을 담은 사진을 바탕으로 만들었어요. 서핑을 하고 나온 서퍼를 보는 순간 ‘이게 바로 양양이다!’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바다의 청량함과 서퍼의 섹시한 이미지를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화이트 머스크를 사용해 조향을 했어요. 굉장히 주관적인 시선으로 만들죠? 이런 사적인 이야기가 다른 향기 브랜드와 차별점이 만들어낸다고 생각해요.
만드는 과정이 기억에 남는 제품이 있나요?
아무래도 가장 고된 과정을 거친 제품이 기억에 남네요. 운이 좋다면 20번 정도 샘플링해서 만들기도 하지만 ‘루브르 1848’은 200번 이상 샘플링을 거쳤어요. 무엇보다 루브르 박물관을 대표할 수 있는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6번 정도 방문했고요. 3만 5천 점을 소장한 방대한 박물관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찾는 게 쉽지 않았죠. 결국 4번째 찾았을 때 찍은 나폴레옹 3세의 아파트먼트라는 방을 모티프로 삼았어요. 붉은색 카펫에 조도가 낮은 샹들리에, 오래된 목재 가구들이 빚어낸 풍경이 제게는 루브르 박물관 자체로 보였거든요.
여행지 한 곳을 특정해 향을 구현하는 일도 쉽지 않을 듯한데, 디퓨저 제품인 ‘월드투어 프로젝트’는 출발지와 목적지 두 곳의 여행지를 모티프 삼아 하나의 향으로 만들었어요.
수원의 편집 숍 디드와 콜라주 아트를 하는 선호탄 작가님과 함께 만들었어요. 셋이 여행 이야기를 하며 페일블루닷의 향을 맡았는데, 서로 생각하는 게 완전 다르더라고요. 예를 들어 제가 제주의 비자림에서 모티프를 얻은 향에서 선호탄 작가님은 뉴욕의 센트럴 파크를 산책했던 기억을 떠올리더라고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만든 비자림 향이 틀리지 않았고, 작가님의 기억이 틀리지도 않았죠. 여행은 개인의 기억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던 프로젝트였어요. 이처럼 페일블루닷이 보낸 향이 각자에게 어떤 여행지로 느껴질지 궁금해요.
디퓨저, 패브릭 스프레이, 오일 등 공간에서 사용하는 항기 제품을 위주로 만들고 있어요.
여기 앉아 있는 우리 모두 서로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지녔잖아요. 그만큼 향을 즐기는 방식도 다양해요. 흔히 향을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향수 대신 초심자도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제품으로 시작했어요. 생활 속에서 향을 뿌리거나 태우거나 녹이는 등 다채로운 방식으로 사용해 보는 경험을 해보는 거죠. 최근에는 배스 밤과 핸드 워시도 출시했고 조만간 화장실용 향기 제품도 선보일 예정이에요.
브랜드 이름에서부터 친환경적인 의미를 내포했죠. 포장재도 모두 환경 친화적인 것으로 골랐고요.
여행을 좋아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제주의 비자림 같은 곳을 20년 뒤에 못 간다고 생각하면 너무 슬프잖아요. 소소한 노력으로 여행을 떠날 때도 가급적 쓸 데 없는 소비는 지양해요. 여행용 화장품이나 세안 도구를 사기보단 집에서 사용하던 것을 들고 가는 식으로요. 부담이 되면 지속하기 어렵기에 할 수 있는 선에서만 실천하려 해요.
론칭 날 10년 동안의 목표를 세웠다고 하는데,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여행을 통해 오감을 일깨우는 경험이 삶의 만족도를 높여준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를 더 많은 이에게 알리기 위해 후각을 넘어 청각, 미각, 촉각, 시각을 다루는 브랜드를 만들어 페일블루닷 타운을 만들고 싶어요. 장소는 수원 행궁동이 될 거예요. 평생 수원에서 살면서도 동네에 애정을 느끼지 못했는데, 우연히 지역 사람들과 교류하며 동네를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어요. 이왕이면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