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스몰 컬렉터, 작가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많이 떠올린 질문
Q. 이 일을 해서 먹고살 수 있을까?
순수 미술도 팔려야 먹고사는 일인데,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내 독립 출판물을 재미있어하고 사 주시는 독자분들이 있는 것이 감사하고 신기하다.
일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책의 판형, 수집품의 위치, 영상으로 만들 것인지 등 내가 느낀 것을 가장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일상의 소소한 물건을 수집해 독립 출판물로 펴내는 ‘스몰 컬렉터’로 알려져 있는데요. 언제부터 수집을 시작했나요?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는데, 처음에는 작업할 때 쓸 재료가 될까 해서 이것저것 모았어요. 그중에서도 특히 겨울마다 내리는 눈을 참 좋아해서 관련 이미지들을 모았죠. 대학교 3학년 때쯤 눈 이미지들로 가득한 박스를 보면서 굉장히 뿌듯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사를 다니면서 잃어버려 아쉬워요. 본격적으로 수집을 시작한 건 유럽에서 공부하던 시절,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면서부터예요. 당시 아주 작은 것들을 많이 모아 노트에 이것저것 붙여봤었어요. 제 나름의 여행 노트였죠.
수집한 물건을 독립 출판물로 내기 시작했어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소개 부탁드려요.
여름 포르투갈에서 본 바다의 풍경을 그리고 모으고 적어 펴낸 <Sea of Portugal>, 포르투갈에서 모은 사탕 봉지만으로 작업해 펴낸 <사탕책>, 포르투갈의 어느 가게에서 산 작은 노트에 작고 쓸모없지만 예쁜 것들을 붙여 만든 <스몰 컬렉팅북1>, 북유럽을 여행하며 책을 읽다가 책갈피로 쓴 영수증이나 나뭇잎, 전시 티켓 등을 모은 <여행자의 책갈피> 등 독립 출판물이 19권, 스몰 컬렉팅을 하는 방법을 다룬 <작은 수집, 스몰컬렉팅>을 비롯한 책을 3권 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작고 예쁜 것들이 가득한 것 같아요. 수집하는 것들에 기준이 있나요?
아주 순간적인 판단에 의존해 수집해요. 내 눈에 보기에 예쁘거나, 좋은 촉감을 주는 것들,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죠. 나뭇잎이나 깃털 같은 자연물도 좋아하고, 모아놓고 보니 유독 먹고 남은 사탕이나 과자 껍질이 많더라고요. 모아놓은 뒤에 시간이 좀 지나면 다시 수집품들을 뒤적거리면서 버릴 것들을 버리고, 도저히 버리지 못하겠는 것들만 남겨요. 탈락될 것들이 다 탈락되고 나면 보이는 게 오히려 더 많아요.
수집한 것들을 책으로 묶어낼 때 어떤 과정을 따라가나요?
노트에 여러 가지를 붙였다 뗐다 하면서 하나의 큰 그림을 찾아가요. 그러면서 각자의 수집품이 가지고 있던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기도 하고, 나만의 스토리텔링이 되죠. 모은 물건들을 한참 뒤에 다시 보면 새로운 영감이 돼요. 물건을 배치할 때는 ‘감각적으로 보이는가’가 가장 중요해요. 균형을 맞추고 어떤 부분을 더하고 어떤 부분은 날아가고 하면서 제가 원하는 느낌을 만들어가는 거죠. 대학 때 책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수업을 청강한 적 있는데, 그 수업에서 책도 오브제라는 걸 배운 게 큰 기점이 되었어요. 책은 평면이 아니라 만질 수 있는 물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질감이나 펼쳤을 때의 곡면에 따라 보이는 것, 판형 등이 모두 책에 대한 경험이 될 수 있단 걸 알게 된 거죠.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 중인데, 개인 창작물에 집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대학을 졸업할 때쯤 ‘뭘 해서 먹고살까’ 하는 고민이 점점 커졌어요. 외주 작업을 받아 일러스트레이션을 하기 시작했죠. 유럽에도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하러 간 거였는데, 적성에 꼭 맞지는 않더라고요. 의미가 없는 작업은 아님이 분명한데, 결국은 내 이야기를 오롯이 담을 순 없잖아요. 그런 갈증이 있었던 것 같아요.
개인적인 의미를 담아 아카이빙을 하면서 나에 대한 회고와 성장의 시간도 생길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으다 보니 취향과 주관이 점점 확실해지죠. 어떤 날은 사진첩을 쭉 훑다 보니 바닥에서 찍은 것들이 많아 그걸 모아 책으로 내기도 했어요. 그간 수집한 물건과 펴낸 책들을 보며 ‘나 이런 거 좋아했네’ 깨닫게 되죠. 접근할 수 있는 것들이 점점 많아짐에도 오히려 유행에 휩쓸리기 쉬운 시대가 되었잖아요. 저도 쉽게 휩쓸리는 사람이지만, 그럴 때 이 기록들이 도움이 돼요.
SNS 때문에 이미지가 중요해지면서 누구나 순간의 경험을 카메라로 찍어 저장하려는 ‘캡처 강박증’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해요. 영민 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알랭 드 보통의 책 <여행의 기술>에 ‘아름다움의 소유에 대하여’라는 챕터가 있어요.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제대로 볼 줄 모르게 됐다는 이야기에 깊이 공감했죠. 사진을 찍고 돌아서서 다시 보지 않는 경우가 은근히 많잖아요. 그 순간, 그 풍경을 이미 가졌다고 착각하는 거죠. 한번은 포르투갈에서 아주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는 지역에 들른 적 있는데, 때마침 카메라와 휴대폰 전원이 모두 꺼져버린 상태였어요.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까지 4~5시간을 그냥 걸으며 수집과 드로잉만 했어요. 그 순간 무척이나 집중해서 장면들을 보았어요. 사진으로 찍은 곳보다도 지금 오히려 더 생생히 기억에 남아 있어요. 내 손으로 글을 쓰고 드로잉을 하고 수집한 물건을 만지는 것들이 경험을 날카롭게 만들어주거든요.
영민 님처럼 개인적인 아카이빙을 시작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보통 ‘수집’이라고 하면 역사적으로 가치가 큰, 무게감 있는 것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보다는 먼저 내 마음에 드는 것,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게 의미가 있는 것, 나를 끌어당기는 것을 찾아 열린 마음으로 시작했으면 해요. 그렇게 모은 조각들을 시간이 지나고 다시 봤을 때 여전히 당시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면 가치 있는 수집품이라 생각해요. 실제로 제 출판물을 구매한 분들이 ‘나도 이렇게 해보고 싶다’ 혹은 ‘나도 모은 것들이 있는데 이렇게 작품으로 만들어볼 생각을 못 했다’는 피드백을 많이 주세요.
아카이빙의 가장 큰 기쁨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휘발되거나 흩어지기 쉬운 경험이나 기억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기쁨이죠. 많은 걸 느꼈어도 기록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좋았다’ 정도로 뭉툭한 기억이 돼버리곤 하잖아요. 나한테 의미 있었던 작은 시간과 사건들을 소중히 대해 주면 그들도 절 붙잡고 놓아주지 않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