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명
그래도팜(farm nevertheless)
의미
“그래도 해봐야지”, “그래도 그럼 쓰나” 등 원승현 대표와 부모님의 대화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가 ‘그래도’였다. 힘들고 외로운 길을 한결같이 달려온 부모님의 열정을 담아 ‘그래도팜’이라 이름 붙였다. 영문명은 ‘nevertheless’로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뜻이다.
탄생 시기
원농원은 1983년, 그래도팜은 2015년.
핵심 가치
‘사람이 먹을 것을 만든다’는 기본 원칙을 철저히 지킨다. 유기농 농법만으로 농사를 짓는 건 다소 불편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그게 브랜드를 매력적으로 만들 테니까.
브랜드 준비 초기에 가장 많이 했던 질문
Q. 이 사업이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
비료와 농약을 쏟아붓지 않기 위해선 건강한 땅과 종이 중요했다. 해외 출장에서 만난 에어룸(heirloom) 토마토를 국내에 재배하기 시작하며 사업에 점차 확신을 얻었다. 직접 키운 토마토에서 채취한 씨앗을 다시 심으며 품종을 보존하고 있다.
성장 포인트
2022년 법인을 설립해 ‘토마로우’라는 브랜드도 시작했다. 지속 가능한 농업을 지향하는 브랜드로, 맛 좋은 생산물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것을 넘어 그 이면에 숨은 노력의 가치를 공유한다. 농장 옆에 종합 체험 공간을 운영 중이다.
본래는 디자이너였는데 어떻게 부모님의 농장을 잇기로 했나요?
이직하면서 생긴 잠깐의 기간 동안 부모님이 운영 중인 ‘원농원’에 새 이름을 지어주고자 아버지를 인터뷰했어요. 대화를 나누며 부모님이 그동안 어떤 생각으로 농사를 지어왔고, 현재 우리 농업이 어떤 상황인지를 알게 되었죠. 미래 세대에 농업의 가치를 알리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어요. 전부터 내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고요. 브랜딩 디자이너로서 일하는 건 때때로 브랜드를 애써 낳고 키워 입양을 보내는 기분이었거든요. 막상 시작하고 1~2년간은 농사가 힘들어서 짐 쌀 생각도 많이 했는데, 다행히 여기까지 왔네요(웃음).
농장을 브랜드화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우리 세대는 대체로 농업을 잘 몰라요. 심지어 경시하는 풍조도 있죠. 그래서 농업이 촌스럽고 힘든 일이 아니라 세련되고 즐거울 수 있다는 인식을 만들고 싶었어요. 체험 공간 디자인에 각별히 신경 쓴 건 부모님 손잡고 온 어린이들에게 농사에 대한 좋은 경험을 심어주기 위해서였어요. 평생 정직하게 농사를 지어온 부모님의 노동 가치를 폄하하지 않는 것도 중요했고요.
운영하면서 나만의 농사 철학도 생겼을 것 같아요.
농사는 땅이 정말로 중요한데, 대부분의 국내 농경지는 화학 비료 의존도가 높아 좋은 토양을 갖추고 있지 못해요. 그래도팜은 토양의 질을 개선하는 데 힘을 쏟고 있어요. 직접 유기물을 발효하고 미생물을 배양하기 위해 농장 내에 퇴비 발효장을 별도로 만들었죠. 잘게 부순 참나무 껍질을 발효해 만든 천연 퇴비는 우리 농장의 자랑 중 하나예요. 그런 퇴비를 쓴 토양에서 자란 식물은 맛은 물론이고 향도 풍부하거든요.
농작물을 대량 생산하다 보면 땅의 순환까지 고려하긴 어렵잖아요.
해마다 전 세계적으로 240억 톤의 토양이 사라지고 있어요. 세계토양학회에서는 2050년에 농경지로 사용할 수 있는 토양이 현재의 절반일 거라고 말하죠.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먹거리가 확 줄어든다는 뜻이에요. 좋은 토양과 이를 보존하는 농법, 그 안에서 길러낸 건강한 농작물에 관심을 두는 소비자가 많아져야 우리의 미래도 지속될 수 있을 거예요.
그래도팜의 대표 농작물인 에어룸 토마토는 우리가 익히 아는 것과 달리 모양이 울퉁불퉁해요.
유전자 조작을 거치지 않은 순종 토마토이기 때문이에요. ‘에어룸(heirloom, 가보)’은 ‘헤리티지(heritage, 유산)’와 어원이 같아요. 그래도팜에서는 수확한 열매에서 씨앗을 얻는 자가 채종 방식으로 수십여 종의 에어룸 토마토를 생산하고 있어요. 낯선 외형 덕분에 시선을 끌었지만, 품종마다 맛과 향이 다르다는 점도 특별한 매력이에요.
기존 토마토와 맛이 다른가요?
국내 소비자들은 토마토의 품질을 단맛으로 판단하는 편이에요. 스테비아 토마토처럼 가공된 품종이 나오는 이유죠. 에어룸 토마토는 와인처럼 품종마다 다른 맛과 향이 나요. 샐러드로 먹기보단 특유의 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조리하는 걸 추천해요.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생과로 많이 즐기다 보니, 농장에서도 아직 익지 않은 딱딱한 토마토를 따 유통하게 되거든요. 그래도팜은 잘 익은 토마토로만 골라 보내드리니 시중에 파는 토마토와 식감도 다르게 느껴질 거예요.
그래서 그런지 그래도팜의 토마토를 기다리는 분들이 꽤 많아요.
유기농이라 생산량이 계획대로 맞춰지지 않는데도 고정 고객들이 있어요. 8년 이상 그래도팜을 이용하신 분들로, 우리 농장의 든든한 버팀목이에요. 물론 토마토를 기다려서 산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분도 여전히 많아요. 아직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맛보면 에어룸 토마토를 찾을 수밖에 없을 테고, 시장에도 점차 변화가 생기겠죠.
농작물 판매뿐만 아니라 체험 활동 공간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고요?
토마로우는 키친, 라이브러리, 전시실, 가드닝 시설 등이 자리한 종합 체험 공간이에요. 땅을 공부하고 이해하도록 돕는 전시 교육 공간 ‘소일 갤러리’와 건물 옆 유리 온실 ‘시들링하우스’도 운영 중이에요. 자율 투어, 도슨트 투어, 다이닝이 포함된 예약제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중 다이닝 프로그램 반응이 좋아요. 그래도팜의 토마토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에서 난 식재료를 활용해 음식을 만들죠. 이렇게 토마로우가 우리 지역에 방문할 목적을 만들어준다면 결국 로컬에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스페인 발렌시아에 토마토를 먹으러 가고, 이탈리아 베수비오 화산 근처로 토마토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요.
8년 동안 그래도팜을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많은 브랜드와 협업을 했는데요. 그중 마켓컬리의 뉴스레터 ‘에피큐어’에 에어룸 토마토가 자세히 소개된 적이 있어요. 소비자들이 토마토를 좀 더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또 샘표와 진짜 건강한 맛을 찾는 여정을 함께했던 일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앞으로 그래도팜이 그리는 미래는 무엇인가요?
우리 사회에서 농업은 아직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어요. 하지만 2050년 정도 되면 존중받는 산업으로 떠오를 거예요. 토양이 부족한 시기가 왔을 땐 전문성을 갖춘 사람만이 농작물을 수확할 수 있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 청년 농부들에게 항상 경험을 많이 쌓고 시작하라는 말을 해요. 저 역시 지금처럼 꾸준히 타협하지 않고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직하게 농사지으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