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을 지속하는 힘
클래식 음악의 세계는 측량할 수 없는 심해처럼 깊고 넓다. 평생을 바쳐도 현존하는 피아노 작품을 한 번씩 연주해 보는 것조차 불가능할 만큼. “아무리 위대한 연주도 작품 그 자체의 위대함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는 말처럼, 창작자가 아닌 연주자로서 늘 경외감을 품고 겸손하게 임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기에 이 일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것 같다.
내 인생 첫 번째 클래식
처음으로 좋아한 클래식 음악은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의 3악장이다. 어린 시절, 정확히 어떤 곡인지도 모른 채 라디오에서 우연히 듣고 사랑에 빠졌다. 돌이켜 보면 단순히 선율이 가슴 깊이 박혀서였던 것 같다. 다시 듣고 싶었지만 곡명을 알지 못해 한참을 찾았던 기억이 난다. 이 곡을 들을 때면 언제나 황혼으로 붉게 물든 갈대밭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유는 아직도 알 수 없지만.
현실을 잊게 해주는 시간
클래식 음악이란 수백 년을 거쳐 현재까지 살아남아 우리의 마음에 닿은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을 축적한 음악만이 줄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클래식 음악은 우리와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에 현실 세계를 차단해 주는 효과가 있다. 모차르트가 쓴 미사곡 <구도자의 엄숙한 저녁기도>(K.399) 중 5번째 곡 ‘주를 찬미하라’가 나에게 그런 음악이다. 종교인은 아니지만 이 곡을 듣는 순간만큼은 현실을 잠시 잊게 된다.
‘솔티클래식’의 시작
‘클래식을 좀 더 재미있게 전달할 수 없을까’라는 고민을 하던 어느 날, 식사를 하다가 ‘감칠맛’이라는 단어를 클래식 음악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훌륭한 요리도 ‘간’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클래식 작품과 작곡가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를 짭조름한 양념처럼 더한다면 클래식 음악을 훨씬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뉴스레터의 이름을 솔티클래식(Salty Classic)이라고 지었다. 2020년부터 5년간 뉴스레터를 발행했고, 이를 엮어 <클래식 비스트로>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현재 솔티클래식은 잠시 휴식기에 들어갔는데, 클래식을 더 많은 이들에게 흥미롭게 전달할 방법을 고민 중이다.
가볍게 흘려들으며 탐색하기
누구에게나 좋아하는 음식, 책, 노래 등이 있기 마련이다. 그 계기를 물어보면 대부분 우연히, 어쩌다, 혹은 누군가의 추천으로 접하게 된 경우가 많다. 클래식 음악을 알아가는 것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연히 듣거나 누군가 추천해 준 음악 중 마음에 와닿는 곡이 있다면, 그 곡을 자주 들으며 자연스레 취향을 쌓아가는 게 아닐까. 가요 차트나 플레이리스트를 가볍게 클릭하듯, 클래식 음악도 부담 없이 한번 들어보길 권한다. 연주가 길게 느껴지면 쭉쭉 넘기며 들어도, 한 악장만 들어도 괜찮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취향에 딱 맞는 곡을 만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런 곡들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는 열린 마음이다.
클래식 음악과 친해지는 방법
관심이 가는 연주자나 작품이 생겼다면 그 작품을 쓴 작곡가의 배경을 알아보는 것도 좋다. 그가 작품을 쓸 당시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는지, 어떤 고민을 겪고 있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주로 편지나 일기를 통해 작곡가의 개인적인 생각을 엿볼 수 있는데, 그 내용이 참 재미있더라. 아무리 연습해도 피아노 실력이 늘지 않아 짜증 난다는 슈만의 일기나, 작곡을 하면 할수록 어렵게 느껴진다는 차이콥스키의 편지를 읽고 나면 왠지 모를 묘한 내적 친밀감이 느껴진다. ‘그들도 참 치열하게 살았구나’ 하는 위안을 얻기도 한다.
입문자를 사로잡을 만한 에피소드
클래식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일화가 많다. 그중 하나는 슈만에게 극찬을 받은 후 갑작스럽게 세간의 주목을 얻게 된 브람스의 이야기다. 일약 스타덤에 오른 브람스는 극심한 부담감을 느끼며 완벽주의에 시달리게 된다. 태산처럼 높고 단단해 보이는 위대한 작곡가에게 연민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 중압감을 이겨내고 무려 21년 만에 탄생한 브람스의 교향곡 1번에는 오랜 고뇌와 인내 끝에 마침내 앞으로 발을 내딛은 그의 모든 인생이 담겨 있는 듯하다. 매번 이 작품을 들을 때마다 벅찬 감동이 느껴진다.
클래식을 삶 속에 들이고 싶을 때
일상에서 클래식을 가까이 접하고 싶은 이들에게 KBS 클래식FM과 같은 라디오 방송 채널을 추천한다. 또한 시간이 날 때 라이브 연주를 직접 관람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실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그리고 국내의 크고 작은 공연장에서는 매일같이 다양한 공연이 열리고 있다. 꼭 큰 공연의 티켓을 예매하지 않더라도, 국내 최고 수준의 연주자들이 펼치는 퀄리티 높은 연주를 합리적인 가격에 즐길 수 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
오는 11월 16일에는 서울 종로에 위치한 공연장 경복궁클래식에서, 11월 24일에는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명상의 형태’를 주제로 독주회를 가진다. 지금까지 솔티클래식을 통해 클래식 음악에 대한 배경 지식을 글로 전달했다면, 내년부터는 피아노 입문자를 위한 영상을 제작할 계획이다. 연주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노하우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