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을 마친 늦은 밤, 즐겨 찾던 바에서 우연히 접한 위스키가 정보연의 삶을 바꾸었다. 이커머스 플랫폼 마케터에서 위스키의 매력을 전파하는 보연정의 대표가 된 것이다. “바텐더의 추천으로 위스키 향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자비에 돌란 감독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감각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첫 만남의 강렬한 감정에 빠져 하루의 끝에 위스키를 찾는 날들이 점점 늘었다.
“위스키마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얽혀 있어요. 흥청망청 소비만 하지 말고 제대로 공부하면서 마셔보고 싶었죠. 작업실을 구해 금요일마다 위스키 스터디를 열었어요.” 지금과 달리 위스키에 관한 전문 서적이 거의 없을 때라 해외 원서를 일부분 해석하고 특정 지역에서 생산된 여러 종류의 위스키를 테이스팅하며 사람들과 의견을 나눴다. 스터디에서 만난 사람들과 해외로 증류소 투어도 떠났다. “스터디를 5년 이상, 100회 정도 진행하면서 위스키에 대한 지식은 물론이고 저만의 이야기가 쌓였어요.” 그는 그간의 경험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 에세이 〈하루의 끝, 위스키〉를 펴냈다.
“30대가 되면서 반짝하는 트렌드가 아닌,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가치로 시선이 옮겨 갔어요.” 그가 12년간의 회사 생활을 마치고 보연정을 꾸린 이유다. 서울 청파동과 남영동 사이에 위치한 공간을 2080년의 런던과 도쿄를 테마로 삼아, 자신이 할머니가 될 때까지 지니고 싶은 물건으로만 채웠다. 그곳으로 위스키의 세계에 빠지고 싶은 이들이 모여든다. “역사, 음악, 미술 등 인문학적 관점에서 위스키를 바라보면 복합적인 감각이 깨어나요.” 위스키가 만들어진 시기에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 어떤 작품이 만들어졌는지 하나둘 단서를 수집하며 한 시대와 술을 제대로 음미하는 것이다. “여럿이 모였을 때 장점은 크게 두 가지예요. 서로 다른 시각을 교환할 수 있고, 의욕이 꺾이지 않아 공부를 지속할 수 있어요.” 재즈와 위스키를 큐레이션하고 해설하는 정기 프로그램 ‘향기를 듣다’는 벌써 2년째 이어지는데, 두세 번 이상 참석하는 비율도 높다.
그는 클래스에서 생긴 관심이 일상으로 자리 잡길 바란다. “내 위스키 취향을 찾고 싶다면 우선 최소 세 종류 이상의 위스키를 되도록 다양하게 마셔보길 권해요. 그리고 내게 어떤 점이 맞고, 맞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는 거예요. 자주 먹는 음식과 페어링하며 작은 접촉을 늘려봐도 좋아요. 떡볶이와 버번위스키처럼 매력적인 조합이 많거든요.” 그는 항상 일정한 형식으로 테이스팅 노트를 적는다. 기록이 쌓였을 때 갖는 힘을 믿기 때문이다. “수업을 듣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선 나만의 언어로 정리하는 습관이 중요해요. 출퇴근할 때나 식사 때 같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조금씩 연습해 보세요.” 이제까지 술은 그저 마시는 것일 뿐이라고 치부했다면 위스키라는 신세계를 접해보자. 나의 시간과 기록이 쌓여 어떤 근사한 이야기로 숙성될지 기대하면서.
Interviewee 정보연
취향과 이야기가 흐르는 보연정의 대표이자 기획자. 예술과 인문학을 기반으로 위스키를 비롯해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것들의 가치를 토크, 강연, 모임 등 다양한 형태로 전한다. 에세이 〈하루의 끝, 위스키〉를 그리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