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잘 찍고 싶어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회사를 다니면서 틈틈이 카메라의 역사, 시대마다 유행하는 기법, 올바른 구도를 익히기 위해 관련 서적을 모조리 구입해 읽었다. 본업도 아닌데 이토록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즐거워서.” 친구의 답변은 단순했다. 학창시절 때부터 그를 보아왔던 나는 그 말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지독하게도 공부를 싫어했던 그가 책상 앞에 앉는 일을 ‘즐거움’이라고 표현하다니. 훗날 그는 본업을 하면서도 종종 작은 전시를 여는 사진가가 되었다.
친구 말고도 SNS에서 공부하는 어른들을 목격했다. 와인이나 위스키에 푹 빠져 이에 대한 전문 서적을 뒤지는 사람, 취미인 달리기를 잘하기 위해 근육과 운동의 상관관계를 파고드는 사람, 틈만 나면 인문학 강연을 듣는 사람 등등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아졌다. 취미 뿐만 아니라 그저 자기 자신을 탐구하기 위해 책을 파고들고, 글 쓰는 모임에 나가는 이들도 보였다. 그 친구처럼 모두 공부하는 모습이 ‘즐거워’ 보였다. 하지만 막상 그들을 따라 책을 필사해 보고 취미와 관련된 서적을 잔뜩 구입해 보았지만 나는 좀처럼 즐겁지 않았다. 삼 일을 채 넘기지 못하고 책장만 덮기를 반복하다 우연히 나간 독서모임에서 흥미를 느꼈다. 사람들과 함께 공부할 때 능률이 오르는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배움에는 왕도가 없다. 하나의 결괏값을 두고도 수많은 ‘자기만의 경로’가 존재한다. 흔히 말하는 ‘ㅇㅇ을 잘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같은 것은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정답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한 가지 정답만을 향해 달리던 학생 시절의 공부 대신 ‘나만의 답’을 찾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면, 먼저 자기 자신을 알아 보는 것이 좋다. 나의 목표와 성향에 맞는 공부법이 따로 있으니. 배움에는 왕도가 없지만 내게 맞는 공부법은 분명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