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훌라 댄서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많이 떠올린 질문
Q.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춤추게 할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이 어렸을 때는 자연스럽게 춤을 춘다. 춤을 추면 즐겁다는 느낌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른이 될수록 부끄러움이나 잘 춰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춤추기를 꺼리게 된다. 그래서 수업을 할 때 강조하는 건 ‘자기만의 훌라를 찾자’는 것이다. 사람마다 배움의 속도도, 몸의 상태도 다 다르기 때문에 스스로가 각자의 리듬과 동작을 존중하는 방법을 먼저 알아가기를 권한다. 절대 ‘안 된다’, ‘틀렸다’는 말을 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자신의 흥만 담아낸다면 막춤을 춰도 근사하게 보일 수 있다.
일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진심을 잃지 않는 것. 훌라를 추고, 가르치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내 에너지를 전달하는 일이다. 미묘한 차이에도 사람들은 내가 훌라를 진심으로 대하고 있는지 눈치챌 수밖에 없다.
춤을 전공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훌라 댄서가 되었나요?
아주 어릴 때부터 춤추는 걸 좋아했어요. 본격적으로 즐기기 시작한 건 중학생 때부터인데 춤 동아리에서도 활동하고, 친구들이나 초등학생들에게 춤을 가르치기도 했어요. 스무 살 무렵부터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본격적으로 댄스 수업을 듣기 시작했어요. 아프리칸 댄스, 삼바, 만달라, 한국 무용, 현대 무용, 발레 등 댄수 수업이라면 무조건 달려갔죠. 그때 알게 된 게 훌라예요.
춤을 정말 좋아했나 봐요.
본능 아닐까요? 다들 아직 모를 뿐 인간은 본능적으로 춤을 추면 즐거워진다고 생각해요. 특별히 제가 춤을 좋아하게 된 건 그 순간만큼은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평소 주의가 산만한 편이라 요가나 명상도 해보았는데 큰 효과를 보지 못했어요. 반면 춤을 출 때는 음악과 동작에 집중하다 보면 주위의 다른 것들이 신경 쓰이지 않아요. 제게 춤은 명상과 같아요.
다양한 춤 중에서 훌라가 유독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춤마다 추구하는 방향과 에너지가 달라요. 발레는 위로 뻗어 올라가는 동작이 많고 이상적인 자세를 갖추는 것을 지향해요. 삼바는 에너지를 쏟아내는 희열이 있는 춤이죠. 반면 훌라는 똑같이 몸이 힘들어도 추고 나면 마음이 굉장히 평온해져요. 훌라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기쁨’이거든요. 실제로 제가 어떤 상태에 있든 훌라를 추고 나면 밝아지고 기쁨이 솟아납니다. 고대 훌라는 신화나 역사, 왕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춤으로, 진지하고 파워풀한 동작이 많았어요. 현대로 오며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즐길 수 있도록 변화된 거죠.
어떤 과정을 통해 훌라를 배우게 됐나요?
국내에 훌라를 가르치는 곳이 흔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알고 보면 훌라 협회도 두어 곳이나 있어요. 전국 각지에 하와이에서 훌라를 배워 국내에 전하는 1세대 훌라 댄서들이 계시고요. 2세대인 저는 그들의 길을 따라가면 되니 수월한 편이죠. 다만, 현지에서 배울 땐 언어의 장벽 때문에 힘든 점은 있었어요. 평소 영어 공부를 해둘 걸 후회를 했죠(웃음).
하와이에서는 무엇을 배웠나요?
하와이안 선생님과 2주 동안 같이 살며 훌라를 배웠어요. 짧은 시간이어서 춤을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대신 ‘알로하 정신’을 배웠어요. 인삿말로 알려진 하와이어로 ‘알로’는 마주하다, ‘하’는 생명의 숨결이란 뜻이에요. 생명의 숨결을 마주하고, 세상 만물을 존중하고 조화롭게 살며, 기쁨을 느낀다는 의미를 담고 있죠. 이 정신은 하와이안의 삶 곳곳에 배어 있어요. 훌라에서도 중요한 가치이기에 제 클래스인 ‘훌라당’ 수업을 할 때도 이를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알로하 정신을 수업에서 어떻게 알리고 있나요?
한 클래스에 10명 정도의 수강생이 참여하는데, 매번 시작할 때마다 각자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요. 사람이 많다 보니 그 시간이 30분 이상일 때도 있지만, 이렇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눠야 사람 대 사람으로 연결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거든요. 훌라에서는 함께 춤을 추는 동료와 학생을 가족이란 뜻의 ‘오하나’라고 불러요. 단순히 기술로 춤을 배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커뮤니티를 만드는 거죠. 실제로 수강생들끼리 함께 맥주도 마시고 여가 시간을 즐기기도 해요. 이런 분위기를 더 돈독하게 만들고 싶어서 온라인 카페도 개설하고, 정규 클래스 개설 1주년을 기념해 ‘훌라당 생일 파티’라는 파티도 열었어요.
제주, 강릉, 강화도 등 여러 곳에서 수업을 열고 있죠. 서울의 정규 수업과 어떻게 다르나요?
훌라는 자연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요. 외부 수업은 그런 동작과 연결되는 바다, 바람, 땅, 모래, 나무 등을 느끼며 춤을 출 수 있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죠. 일반적으로 지역의 게스트하우스나 독채 스테이의 초대를 받아 1박 2일 일정으로 구성돼요. 하루 2시간씩 훌라를 배우고 나머지 시간은 바다에서 수영을 하거나 맛있는 것을 먹죠. 정규 수업보다는 쉽고 편안한 안무 위주라서 기존 수강생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에요. 평소 여행을 좋아해서 앞으로는 하와이나 태국, 발리 등에서도 수업을 해보고 싶어요.
몸치인 사람도 수업을 들을 수 있을까요?
저는 훌라를 ‘내 안의 바다를 꺼내는 춤’이라고 소개해요. 10명이 수업을 들으면 같은 동작을 배워도 모두 각기 다른 훌라를 춰요. 각자가 생각하는 바다의 기억이 다르듯이 모두 자신만의 춤을 추는 거예요. 아름다운 꽃 핀과 훌라 치마를 입고 하와이 음악에 몸을 맞춰 다 함께 몸을 움직이는, 그 자체를 즐기는 게 중요해요. 자신의 춤, 타인의 춤을 모두 존중하는 것. 그게 바로 알로하 정신입니다. 물론 제 공연을 준비할 땐 동작 하나하나를 맞추기 위해 혹독하게 트레이닝하죠. 수강생들과 달리 저는 무대 위에서 완벽한 공연을 선보여야 하니까요.
하야티라는 이름은 무슨 뜻이에요?
스무 살 때 여행 대안 학교에 들어가며 만든 별명이에요. 존 버거의 소설, ‘A가 X에게’에서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을 부르는 애칭인데요. 터키어로 ‘생명력 넘치고, 활발한’이란 의미를 갖고 있어요. 보자마자 제게 딱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걸 알았죠. 많은 분들이 하와이어라고 생각하지만, 하와이어에는 ‘야’와 ‘티’라는 발음이 없어서 하와이안들이 부르기 어려워하는 이름이예요(웃음).
이름처럼 밝고 활발한 에너지가 느껴져요. 스스로를 ‘잘 노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훌라 댄서이자 강사로 일하는 건, 사람들에게 제 에너지를 전하는 일이에요. 그 에너지를 통해 누군가는 마음을 치유받기도 하기 때문에 제 에너지를 스스로 잘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를 위해서는 정말 잘 놀아야 해요. 휴강을 하고 페스티벌을 가거나, 여름 방학을 길게 갖는 등 수업을 불규칙하게 운영할 때도 있지만, 이 모든 게 더 좋은 수업을 하기 위해서예요. 수강생들이 이런 방식을 이해해주는 덕분에 가능한 거죠.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어요?
8월에 클래스101에서 온라인 클래스를 열어요. 오프라인처럼 제 에너지를 온전히 전달할 순 없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훌라를 접할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영상을 제작했어요. 우리나라에 아직 훌라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자리잡지 않았기 때문에 훌라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죠. 그 외에도 훌라를 전파할 수 있는 다양한 축제나 파티도 기획해 보고 싶고, 제대로 디자인한 훌라 의상도 만들어 판매하고 싶어요.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많아요. 이렇게 꿈꾸며 하나씩 해내다 보면 언젠가는 훌라 추는 할머니가 되어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