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책상의 시간
‘책상의시간’은 책상 앞에서 저마다의 가능성을 꿈꾸는 이들의 ‘시작’과 ‘지속’을 조명합니다. 책상 앞에서 쌓인 시간의 이야기로 영감과 용기를 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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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김사월을 만났다. 첫 앨범 ≪수잔≫의 10살 생일을 챙겨주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던 그에게 마침내 ‘그날’은 왔고, ‘그날 이후’도 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작업실로 출근하고, 가사를 쓰고 곡을 짓고 영화 음악을 만들고, 여러 음악인과 협업을 한다. 가사를 쓰던 손으로 수필도 쓰며, 주기적으로 원고를 마감하는 과정을 제법 즐기고 있다. ‘이후의 시간’ 속에서도 김사월에겐 여전히 해내고 싶은 일들 투성이인 것이다. 시간을 잘 지키고 싶고, 걱정과 긴장으로 인해 잠을 설치며.
“<수잔>(2015) ㅡ 네가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넌 혼자 남는걸.”에서 “<디폴트>(2024) ㅡ사랑 없는 시간들은 아프거나 외로운 슬픔이 아니야. 뜨거운 그리움인 거야. 벅찬 기다림인 거야.”로 숨 가쁘게 달려온 10년이었지만, 일과 생활과 꿈이 뒤섞인 그만의 운동장, 책상은 오늘도 분주하다. 최대한 이상하되 이따금 아름다운 것이 만들어지는 곳. 다가올 새로운 10년을 위해, 사월은 다시 사월스러움을 공부한다.
반갑습니다, 사월 님! 따끈따끈한 소식부터 나눠보면 좋을 것 같아요. 6월을 끝으로 에이전시 유어썸머로부터 독립을 하셨죠. 전과 달라진 일상이 생겼을 것 같은데, 궁금해요.
한 챕터가 끝났다는 기분이 들어요. 시원섭섭하기도 하고,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주는 것 같아요.
새로 시작할 것 같은 기분!
이전과는 일의 과정이 다르다는 점에서의 기대감이죠. 별것 아니긴 하지만, 그것조차 기대가 되어요.
에너지를 더 많이 쓰셔야 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요즘 작업실에서 어떤 루틴으로 지내시나요?
일단 출근을 더 자주 해야 할 텐데…(웃음)
앗, 안 오시는 날들도 있군요. (웃음)
집과 작업실이 분리돼 있으니까, 여기 나오기만 해도 성공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루틴은 별다를 건 없고… 청소를 합니다. 전날에 쓰고 그대로 놔둔 물컵들을 정리하고, 책상 위도 원상태로 복구해 놓고 나서 일을 시작하니까, 루틴이라면 그게 루틴이네요. 다시 새로운 물을 따르고, 커피도 챙기고, 간식도 옆에 챙겨놓는 간단한 일들부터 하는 거.
사월 님이 하는 일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계획적으로 하루를 쓰려나 생각했는데요. 곡 작업뿐만 아니라 글 작업도 하시고, 최근에는 영화 <은빛살구> 음악 감독으로서 역량을 보여주기도 하셨죠. 출근도 성공하고 청소도 다 끝내서 드디어 책상에 딱 앉았을 때, 업무 우선순위를 어떻게 설정하시나요?
일단 저는 누가 시킨 일부터 합니다. 마감이 급한 것부터 하는 거죠.
내 에너지를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써보자 싶을 때는 없나요?
아시겠지만, 마감은 역시 힘들잖아요. 그걸 회피하는 용도로 제 작업을 하기도 해요. 좀 이상한 말일까요? (웃음) 영화 음악이나 원고 작업은 엄밀히 말하면, 싱어송라이터 김사월의 음악 작업은 아니죠. 그래서 할 일을 하다가 시험 기간에 하는 딴짓처럼 곡을 만든다거나 하기도 해요. 하지만 대부분의 저는 마감을 맞춰야 하는 일이 사실 더 우선입니다. 마음 졸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그럼 요즘 이 책상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작업은 무엇인가요?
의외로 이메일 업무를 많이 해요. 에이전시에서 독립하기 전에도 그랬고요. 그리고 공연을 만들 때면, 제가 뭘 준비해야 하고 어떤 모습으로 비쳐야 할지에 대한 계획들을 문서로 만들며 정리를 합니다. 전체 작업 시간의 반은 뭔가를 준비하고 구상하는 데에 쓰는 것 같아요. 그리고 나머지 반은 구체적인 작업을 하는데요. 작곡 프로그램으로 편곡을 하거나 노래를 연습하고, 원고를 쓰며 보내는 것 같습니다. 가사는 원고 쓰듯이 써지는 일은 아니고요. 나오면 쓰고, 안 나오면 안 씁니다.
여러 분야를 교차하면서 재능을 확장하는 과정 속에서, 책상이 갖는 의미가 사월 님에겐 어떨지 궁금했어요. 이훤 시인과 함께 쓴 저서에도 “침실 책상에서는 최대한 고상한 것을, 거실 책상에서는 최대한 천박한 것을”이라며 근사하게 표현해 주셨더라고요! 강렬한 시구 같았어요. 작업실 책상은 어떤가요?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자 쓴 표현은 아니지만,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웃음) 거실 책상에서는 보통 유튜브를 보거나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을 보면서 논단 말이죠. 하지만 침실에서는 책을 읽거나 글을 적어보거나 하자, 라는 느낌으로 썼던 문구였어요. 그래서 작업실 책상을 대구법으로 표현해 보자면, 작업실 책상에서는 최대한 ‘이상한 것’을.
얼마나 이상한 것일까요?
작업할 때, 특히 음악 작업할 때 참 막막함을 느낍니다. 이러면, 저러면 안될 것 같아, 하는 소심한 마음도 생기고요. 그렇지만 생각의 스트레칭을 최대한 하려고 해요. 일단 이상해도 다 해보는 거예요. 그렇게 해보고, 만약 별로면 바꾸면 되고요. 그러다가 우연히 재미있고 기발한 것을 만들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최대한 이상한 걸 많이 해보는 거죠. 책상에서라도 안전하게 이상한 것들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집에 있는 거실 책상과 침실 책상은 불량식품 같은 거든 좋은 거든 인풋을 위해 있는 자리인 것 같고, 이곳 책상은 뭐라도 펼쳐 보이는 자리인가 봐요?
정확해요. 작업실 책상은 운동장 같달까요? 여기 책상은 아웃풋이 나오는 현장이고, 집은 인풋을 위한 곳이죠. 그래서 아까, 작업실 출근 자체가 성공이다고 말씀드린 거예요!
여기까지 나왔지만, 진척이 없는 하루도 있을 텐데요.
나오면 일단 뭐라도 하려고요. 어떤 작가님의 표현으로 유명한 말이 있는데요, “쓰레기를 쓰자.” 이런 생각으로 어떻게든 하루의 할당량을 채웁니다. 별로면 발표 안 하면 되니까. 그렇게 계속 해나간다면 뭔가 하나는 건질 수 있지 않을까요? 내 작업이 어떻게 계속 마음에 들겠어요. 이상한 거 하다가 가끔씩 좋아지는 거죠. 그 가끔을 잡기 위해 작업실에 매일 나오는 거고요. 어떻게 보면 저는 여기서 매번 별로인 것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네요. 쓰레기도 다 같은 쓰레기는 아닐 테니까. 거기서도 빛나는 게 있겠죠?
작가님도 편의상 쓰레기라고 한 것이지, 단지 그런 의미만은 아닐 거예요. 잘해야 된다는 강박을 버리기 위해서 그 단어를 쓰셨겠지만 저는 호작질도 사실 되게 근사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세상을 향해 ‘이건 가치가 있다’라고 주장하려면 다른 문제겠지만, 일단 인간이 뭔가를 막 끼적이고 있다는 자체가 그렇게 잘못될 게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과거에는 글이나 노래, 믹싱에 나만 모르는 어떤 법칙이 있을 것만 같아서, ‘나는 틀린 노래를 하고 있어’, ‘난 틀린 믹싱을 하고 있어’라는 식으로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이쯤 살아버리니까 틀리고 말고가 어디 있겠나 싶어요. (웃음)
사월 님 덕분에 오늘 ‘완성’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오네요.
저 역시 어떤 이상을 향해 달리는 시기에 닥치면 또 다른 무드가 되겠지만, 지금은 이런 상태예요.
‘쓰는 김사월’의 얘기도 들어보고 싶어요. 『고상하고 천박하게』에 정말 재밌는 표현들이 많았거든요. “뭐라도 팔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던가, “사람들이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 해주다니.”, “작가도 아닌데 잘 쓴다는 표현이 달콤하다.” 같은 얘기들이 솔직하게 나열되어 있더라고요. 정말로 아직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나요? 저서를 낸 것뿐만 아니라, <씨네21>에서 칼럼도 연재하고 계시잖아요.
‘가끔 에세이를 쓴다.’라는 식으로 저 자신을 표현하고 있지만,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수로 활동을 잘하고 있으니까 글도 좋게 봐주시는 거지, 글 자체로만 그렇게 봐줄 순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지만 어쩐지 쓰는 일에 점점 진지해지고 있긴 합니다. 첫 책 작업할 때만 해도, 쓰는 훈련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글을 썼어요. 싱어송라이터니까 글도 한 번 써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으로 시작해서, ‘가수인데 글도 썼어요’ 정도의 스탠스로 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첫 책이 지금 시점에서는 다소 부끄럽죠. 이후에는 진짜 잘하고 싶어져서 연마하는 중입니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언제 생긴 것 같나요?
<씨네21>에서 에세이를 연재하면서 엄청 책임감이 생겼어요. 제가 그 매체를 존경하거든요. 그런데 글을 쓸 기회를 얻었으니, 이전보다 훨씬 잘해야 된다는 마음이 들었죠.
정말 진지하게 임하신다는 생각이, 평범한 독자인 저에게도 들었어요. 사람들과의 일화도 꼼꼼하게 기록하시고 사물이나 감정도 하나하나 살뜰하게 관찰하신다는 인상이 들었거든요. 문투도 독특해서 재밌고.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잘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더 가동하니까 이전보다 치열하게 쓰게 되더라고요. 밖에서도 전보다 더 즐겁게 읽어주시는 것 같아요. 이훤 시인과 함께 책을 쓴 것도 제겐 새로운 챕터를 여는 일이긴 했어요. 왜냐하면, 그 책이라서 할 수 있는 말들이 있었거든요. 훤 님에겐 작가이기 때문에 겪는 이야기가 있고, 저는 비작가이기 때문에 겪는 이야기가 있단 말이에요. 서로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교류였어요.
비작가의 글이라고 하니 궁금해지네요. 사월 님의 몸은 하나인데, 가사와 산문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표현되는 글은 어떻게 다를까요?
완전히 다르다고 느껴요. 거의 스포츠 종목들이 제각각 다른 것처럼, 언어를 공통으로 할 뿐인 전혀 다른 분야 같아요. 가사는 음악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의 하나인 것이죠. 그러나 가사가 끌고 가는 힘이 굉장히 크긴해요. 인간의 목소리로 노랫말을 불러버리면 비트든 악기든, 음악은 결국 가사를 따라가게 되어서요. 물론, 가사도 그것들의 힘을 받고요. 그래서 상호 관계를 되게 인식하면서 작업을 해야 하는 게 작사이고요. 가사에 사용되는 언어는 리듬감이나 함축이 필요해요. 뭘 넣고 뺄지, 언어를 선택하는 감각이 중요해지죠.
수필은요?
수필은, 단지 글로 끝이잖아요? 비트나 악기 같은 어떤 도움 없이 그저 맨몸으로서의 글. 처음부터 끝까지 글. A4 한 장을 다 채우는 게 정말 힘들더라고요. 첫 책을 쓸 때만 해도 그 반 장을 못 채우는 사람이었어요. 글만으로 매혹시킬 힘을 길러야 한다는 점에서 정말 다른 작업처럼 느껴졌고요. 종이 한 장을 다 채운다 해도, 그 안에서의 밀도를 높이는 단계로 거듭나야 하는데 그건 평생 걸리는 일인 것 같습니다.
아직 글 안에서는 사월 님의 목소리를 다 발굴하지 못한 느낌인 걸까요?
그런 고민 중에 <씨네21> 에세이 제안을 받고 이 지면 한정으로 화자의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그 거푸집을 만들고 나니까 글 쓰는 게 약간 재미있어지는 거예요. 이야기를 꺼내고 전개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았어요. 가사도 고유한 화법으로 개성을 드러낼 수 있지만, 글이야말로 문체가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어요.
거푸집이라는 표현조차 너무 재밌는데요?
좀 사기꾼 같은가요? (웃음)
전혀요! 사월 님의 팬이라면, 사월 님이 음악으로든 글로든 얼마나 용기 있게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인지 알고 있을 테니까요. 어떤 면에서는 괜한 걱정도 들 정도로. 창작자로서 ‘솔직함’을 굉장히 진지한 주제로 삼아 꺼내 보이는 게, 개인을 해방하는 면도 있겠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자기 자신을 소진하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이 정도로 알아야 하나 싶을 만큼 내 면면을 계속 마주하는 게 피곤한 일이기도 하니까.
소모되죠. 예전에는 체감을 못 했고, 스스로 무한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창작하는 사람은 자기 내면의 무언가를 꺼내와서 보여 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소진되는 면이 분명 있는 거 같아요. 내면에서 뭔가를 계속 꺼내오고 싶다면, 인생 자체를 풍성하게 살아야 하는 것 같은데 그것도 어렵게 느껴지고요. 그래도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뭐라도 팔 수 있어서 감사하고, 제가 기능할 때까지는 한 번 팔아 보려고요. 없으면 안 팔면 되고요. (웃음)
지금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저는 칼럼을 읽어버렸는걸요. ‘언젠가 무대에 오르지 않으면, 관객들을 만나지 않으면, 스스로의 상태가 좀 편안해질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다 이내 상상을 멈춥니다. 그건 아마 내가 가장 슬퍼할 편안함이기 때문입니다. 가능한 한 오래 이 불안을 겪고 싶습니다’라는 표현에서 너무 뭉클했어요. 고단함도 느껴지지만, 뮤지션으로서의 삶에 대한 짙은 애정이 느껴져서.
음악이 생계 수단이 됐잖아요. 그렇게 된 지가 오래됐기 때문에 예전과는 상황이 달라요. 엄밀히 말하면, 일입니다. 일인데, 다행히 거의 대부분의 과정을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고, 심지어 작업물을 내었을 때 들어주는 사람들이 운 좋게도 존재하고. 일이라고만 말하면 너무 좀 그런가요? 하지만 더 거창하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애틋하게 생각하면 한없이 감정적이 될 것 같아서요. 그냥 지금 제가 열심히 하고 있는 일, 제일 잘하고 싶은 일이에요.
그래도 이렇게 오랫동안 음악을 하면서, 더 잘하고 싶기 때문에 느끼는 불안도 있을 것 같아요.
큰 공연을 앞두고 있으면 긴장이 되니까 잠이 안 오기도 하죠. 그런데 늘 그 반복이에요. 저는 어떤 규모의 공연이라도, 이벤트를 앞두고 있을 땐 잠을 못 자요. 잘 자고 공연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이제는 그게 이상하지 않아요. 말씀드리기가 조금 죄송스럽지만, 오늘 인터뷰 앞두고도 잘 못 잤어요. 외향적인 사람은 아니라서요. 사람들 앞에 서고, 이렇게 카메라 앞에 선다는 게 사실은 특별한 사건 아닙니까? (웃음)
어쨌든 이런 일을 10년 정도 하다 보니, ‘아, 나는 무조건 떠는구나. 무조건 긴장하고 잘 못 자는 거는 당연하구나.’ 싶어요. 아마 나이 마흔, 쉰이 되어도 이러고 앉아 있겠네, 일흔이 되어서도 카메라 앞에서 이러겠네, 해요. 그런데 그게 저예요. 그런 저이기 때문에 이런 음악을 만들죠. 불안은 여전하지만, 시각이 달라진 것 같네요. 하루쯤 못잔다고 제가 뭔가를 대단히 망치지는 않아요. 내일의 김사월이 알아서 할겁니다. 예전에는 그걸 못 믿어서 무대에서 경직됐던 것 같고요.
역시 10년의 경험은 어디 가는 게 아니군요.
불안에 별로 집중을 안 하려고 해요. 불안에게 먹이 주지 말기. 이전의 저는 제 상태에 엄청 몰두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공연 전에 이거는 목 아플 때 쓰고 이건 떨릴 때 써야지, 하면서 뭐든지 맥시멈으로 준비했는데요. 지금은 좀 무던한 척 해보고 있어요. 그런 사람이 되길 바라면서. 자기 불안은 자기가 견뎌내야 하고, 싫어도 언젠가는 견뎌내야만 하는 일이니까요.
올해 4월도 담대했나요? 1집 앨범 ≪수잔≫을 발표한 지 10주년 된 기념으로, <김사월쇼>에서 청중들에게 전곡을 다시 들려주셨잖아요. 십 년 전의 사월 님과 오늘의 사월 님이 연결되는 순간이어서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은 같은데요.
다르긴 달랐죠. 어릴 때는 이날을 결승선이라고 생각했어요. 1집의 10살 생일을 챙겨주는 것. 그게 목표였거든요. 그래서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울적했어요. 나의 어떤 시절이 끝났음을 인정하는 일 같아서. 이 앨범의 전체 구성을 온전하게 실연하는 것은, 아마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 생각을 하면 정말 절실해졌어요. 이별하는 기분. 그런데 막상 공연을 하면서는 너무 행복했죠. 1집을 다시 연주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이렇게나 기대해 주고 들으러 와준다는 게 얼마나 럭키인지요. 오랜만에 ≪수잔≫을 다시 불러서 너무 좋았어요.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앞으로 10년은 또 어떻게 흘러갈까요?
8년 차도, 9년 차도 그만의 느낌이 있긴 했는데요, 10년 차는 되게 달랐어요. 저 스스로도 어떤 흥망성쇠가 있었는지 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었죠. 데뷔하고 나서 지금까지는 나의 시절을 많이 남기고 펼치는 작업을 하려고 했는데요. 다음 10년은 급할 게 없다고 봐요. 시기와 빈도 상관 없이 좋은 것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싶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그냥 ‘진짜 사월스럽게 했네’ 하는 작업을 하는 거예요.
좋은 것을 만들 시간이라 하니, 두근거리네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시기를 저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지만, 냉정하게는 지금 제 상황에서 뭘 더 많이 자주 낸다 해서 사람들이 더 돌아보거나 더 좋아해 주는 건 아니겠죠. 여기서부터는 제가 내면을 살피고 못 봤던 작품들도 찾아보면서 다시 좋은 것을 만들어볼 힘을 쌓을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급할 게 없다고는 하셨지만 책상은 분주해지겠어요. 마지막으로, 요즘 사월 님이 가장 좋아하는 책상에서의 시간이 있나요?
퇴근! 퇴근!
퇴근이요? (웃음)
네, 퇴근! 퇴근을 한다는 건, 뭐가 됐든 별로인 것이라도 제 나름대로 해냈다는 뜻이니까. 퇴근 좋아요. 그날 작업한 음악 파일을 추출해서 제 핸드폰에 ‘나에게 보내기’로 보내거든요? 그걸 들으면서 집으로 가는데, 되게 좋아요. 책상 위의 순간은 아니지만, 마무리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으니 퇴근 시간을 뽑아 봅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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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면, 안 내면 되니까.”
대화를 나누는 40여 분의 시간 동안, 비슷한 논조로 가장 자주 언급된 말이었다. 걱정하지 말고 일단 뭐든 하라는 식의 얘기는 새로운 처세나 순도 높은 깨달음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불안을 다르게 인식하게 된 김사월의 모습에서, 쓰는 일에 점점 의욕이 생기는 김사월의 모습에서, 틀렸다는 생각이 아닌 ‘틀리고 말고가 어딨어’라고 생각해 볼 줄도 아닌 김사월의 모습에서 진짜로 힘이 되는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별로인 시간도 믿어보는 것. 더 나아가, 그 시간을 살고 있는 자기 자신을 믿는 것. 사월에서 사월까지, 일단 가는 것.
그런 의미에서, 김사월이 지나온 책상의 시간은 본(本)이 된다. 날 위해 너무 비장해지지 않으려는 매일의 연습이, 오히려 내가 가장 나다워지는 연마의 과정이 되어줄 수 있다. 시시각각은 허망할 수 있더라도, 쌓인 시간은 허망해지지 않는다.
✱ 뮤지션 김사월의 인터뷰 영상으로 보기
𝗖𝗮𝘀𝘁 Sawol Kim
𝗘𝗱𝗶𝘁 Haeseo Kim
𝗩𝗶𝗱𝗲𝗼 & 𝗘𝗱𝗶𝘁 Sanghee Kim
𝗣𝗵𝗼𝘁𝗼 Chanwoong Jeong
𝗗𝗲𝘀𝗶𝗴𝗻 Jaehyung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