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입 시기
방 안에 있는 책상은 2009년, 대학교 1학년 때 구입했다. 베란다에 있는 책상은 2년 전에 아웃렛에서 우연히 발견했는데 코너 자리에 맞춘 것처럼 들어맞아서 신기했다.
책상과의 시간
베란다 책상에서는 매일 2시간 정도는 어김없이 머무는 편이다. 종종 새벽 2시를 넘길 정도로 집중하기도 한다.
책상 앞 루틴
재택근무 일정이 끝나거나 퇴근하고 방에 들어선 후부터는 온전히 베란다에 있는 ‘아날로그 책상의 시간’이다. 컴퓨터와 휴대폰을 끈 채 곧바로 취미 생활에 돌입하기도 하지만, 그저 가만히 앉아 하염없이 쉴 때도 있다.
몰입하는 주제
날마다 다른 취미에 몰두한다. 간단히 그림을 그리거나 감명 깊게 읽은 책을 필사하기도 한다. 타자기로 마음에 드는 문장을 타이핑할 때도 있다.
성장의 원동력
호기심. 새로운 취미를 시작할 때 남다른 관심과 호기심이 없다면 그로 인한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기 어려울 수 있다. 이미 시작된 취미 역시 호기심을 잃지 않아야 더 깊게, 오래 즐길 수 있다.
조은옥은 어릴 때부터 ‘취미 부자’였다. 학창 시절에는 피아노, 미술, 검도 등을 꾸준히 배웠고, 20대에는 콘트라베이스와 일렉트릭 베이스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소속된 오케스트라와 밴드, 동호회가 여럿일 정도로 모든 것에 진심이지만 취미를 본업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취미는 온전히 즐기는 존재로 남기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취미는 본업 외에 깊이 몰두할 수 있는 또 다른 세계예요. 일하는 나 외에 여러 캐릭터를 만들어 놓으면 세상을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죠.”
만년필과 타자기를 수집하는 것은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 생긴 취미다. 만년필 수집은 졸업 후 첫 회사에 입사하며 받은 선물로 시작됐다. 만년필의 매력에 매료되어 큰 프로젝트를 무사히 끝내거나 무언가를 성취할 때마다 자신에게 주는 상으로 한 개씩 구입했고, 이제는 50개가 훌쩍 넘었다. 타자기는 제주의 ‘필기’에서 1일 타자기 체험을 한 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국내 브랜드인 마라톤 한글 타자기로 시작된 수집은 어느덧 4대가 됐다. 타자기로 좋아하는 문장을 한 자씩 입력할 때면 거셌던 마음이 점점 잦아든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타이핑한 메모들은 어느새 책상 옆 벽을 가득 메웠다.
그가 방 안에 책상을 두 개나 놓게 된 것도 어쩌면 취미 생활 때문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재택근무를 시작하며 책상 앞에서 하루의 전부를 보내는 일이 많아졌고, 일과 식사, 취미 생활을 모두 한자리에서 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금세 무기력해졌다. “즐거워했던 일이 더 이상 즐겁지 않게 되면서 일상을 환기시켜 줄 새로운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는 다음 날, 곧바로 새 책상을 사러 갔다. 창고나 다름없던 베란다를 정리하고 책상을 놓으니 또 다른 세상이었다. 이 작은 책상에서는 온전히 취미 생활에만 몰두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새로운 결단을 내렸다. 베란다의 책상에서는 노트북과 패드, 휴대폰을 비롯한 모든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아날로그 데스크와 함께하는 디지털 디톡스 라이프’의 시작이었다.
디지털 디톡스의 나비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디지털 기기 없이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좋아하는 문장을 필사하다 보니 취미를 즐기는 시간들이 다시금 행복해졌다. 하나의 일에 좀 더 길게 몰두할 수 있었고, 이전에는 지나쳤을 법한 소리와 풍경들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하지만 그는 디지털 디톡스를 시작하고 싶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단번에 분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한다. “나에게 가장 많은 피로감을 주는 디지털 기기나 앱을 하나만 켜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아요. SNS에 시간을 쏟고 있다면 몇 시간만이라도 그 앱을 열지 않거나 알람을 꺼두는 거죠.”
아날로그 데스크의 등장은 본업에도 좋은 영향을 끼쳤다. 밤과 새벽 사이, 아날로그적인 취미 생활로 충분히 마음의 충전이 되니 다시금 일에 열중할 수 있는 마음도 절로 생겼다. “일이 삶의 전부가 되어버리면 업무 성과가 나지 않거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쉽게 회복하기가 어려워요. 일 외의 다른 분야로 느낀 성취감이 있다면 일상을 살아가는 또 다른 동력이 되어주죠.”
조은옥은 요즘 에센셜리즘에 몰두하고 있다. “이전에는 다양한 관심사를 두루 경험하는 것을 선호했다면, 이제는 명확한 우선순위를 정해 한정된 시간과 리소스를 더욱 현명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를 위한 본질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하겠죠.” 선택과 절제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적절한 온·오프다. 아날로그 라이프를 위한 여러 도구는 그의 취미 생활 스위치를 올리는 시간에 더욱 환하게 빛을 발한다. 그는 오늘도 책상 위 우주 속에서 더 깊고 무한한 취향 속으로 빠져든다. 역시 휴대폰은 잠시 내려놓은 채로.
[on the DESK]
1. 만년필. 각 만년필마다 잡는 기분과 쓰는 느낌이 달라서 두루 애용하고 있지만, 그중 <어린 왕자>의 글과 그림이 각인된 리미티드 에디션은 특별히 아끼는 만년필이다.
2. 타자기. 한글과 영문, 두벌식과 네벌식으로 구성된 타자기를 하나씩 갖고 있다.
3. 물감과 붓. 도심의 풍경을 그리는 어번 스케치를 즐겨 하기 때문에 물감은 언제나 휴대가 간편한 작은 사이즈를 선호한다.
4. 만년필 보관함. 문구 브랜드에서 펀딩으로 판매되어서 지금은 구입할 수 없는 제품이다. 만년필을 케이스에만 보관하기 아쉬웠는데 반듯하게 진열할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