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입 시기
올해로부터 딱 10년 전, 공방을 열면서 마련한 책상들을 지금까지 쭉 쓰고 있다.
책상과의 시간
딱히 정해진 시간은 없이 일상처럼 거의 책상 앞에 앉아 있고, 오후쯤 작업을 시작할 때가 많다.
책상 앞 루틴
스피커를 켜고 그때그때 작업에 어울리는 음악을 튼다.
몰입하는 주제
그간의 경험과 지식을 책으로 남기고 싶어 종이와 인쇄 관련 책을 읽고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의 방향성을 정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성장의 원동력
가르치는 학생들이 순수한 열정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을 보며 많은 영감을 받는다.
북 아티스트 김유림은 마음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북 오브제로 형상화한다. 한지를 한 땀 한 땀 실로 꿰어 만든 책은 다소 낯선 모습이다. 정사각형, 사다리꼴 등 형태도 크기도 제각각에, 텍스트라곤 한 자도 없다. “학부에서 문예 창작을 전공하며 글쓰기엔 재주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마음을 표현할 적확한 단어를 찾아 문장으로 만들기 어려웠어요. 대학원을 판화과로 진학해 책을 만들었는데, 감정적으로 힘든 시기에 직접 손으로 책을 엮으니 마음이 정돈되면서 위안을 받았어요.”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북 오브제를 만드는 공방 ‘사사로운 서가’를 연 것이 10년 전이다. 그때부터 책상 3개와 거대한 작두는 그가 수시로 사용하는 작업대 역할을 한다. 그 위엔 책을 누르는 북 프레스와 누름돌, 제목을 찍는 핫 스탬퍼 등의 갖가지 도구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표지를 만들 때 필요한 작두는 미국에서 샀어요. 성인 5명이 붙어도 옮기기 힘들 만큼 크고 무거워서 들여놓는 데 애를 먹었죠. 다른 도구들도 꽤 무거운 편이라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철제 빔 구조의 책상을 골랐고요.”
작가는 책상 앞에 머무는 시간을 따로 정해두지 않았다. 거의 항상 앉아 있기 때문이다. 오후부터 본격적으로 오늘 작업의 성격과 무드에 맞는 음악을 틀고 도구를 든다. 한 권의 책을 만드는 과정은 마치 정신 수양과도 같다. “한지의 결과 올을 고른 뒤 먹으로 염색하고, 구멍을 뚫어 바늘을 왔다 갔다 하면서 종이를 엮는 단계를 거칠 때마다 수많은 생각이 떠올라요.” 한 권의 책이 완성되는 순간 많은 생각이 오가는데, 반복적이고 단순한 동작을 하며 복잡한 감정이 정제된다.
“저는 흑과 백으로 이뤄진 정제된 느낌이 좋아, 일부러 색을 넣지 않고 있어요.” 그는 장식으로 책을 꾸미기보단 재료인 한지의 질감을 살리는 데 집중한다. 다른 작가의 작업을 도와주다 우연히 한지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유학 시절에 주로 사용했던 양모와 비슷한 점이 있었다. “한지에 물을 묻히면 종이의 섬유질이 일어나는데, 그게 양털처럼 보여요. 그래서 따뜻하고 포근하게 느껴져요.”
그는 여러 가지 도구를 사용해 그 효과를 극대화한다. 둥그렇게 말린 한지를 다리미질해 반듯이 편 후 끝부분이 뾰족한 본폴더로 접지선을 긋는다. 붓으로 선을 따라 먹이나 물을 적시고 뜯기 시작한다. “디테일한 작업을 할 때는 수술용 칼을 써요. 날카로운 날로 섬유질을 섬세하게 뽑아낼 수 있거든요.” 물을 적신 종이를 말릴 때는 울지 않도록 마른 종이를 사이에 끼고, 본폴더로 펴거나 무거운 누름돌을 올려 눌러준다. 그다음 한 장 한 장 질감을 살린 종이를 켜켜이 쌓아 실로 엮고, 커다란 작두로 잘라 만든 단단한 표지로 감싼다.
최근 김유림 작가는 작업보다는 강의와 책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북 오브제에 대한 연구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다. “처음 미술을 시작했을 때부터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었어요. 양모와 한지를 쌓아 입체적인 북 오브제를 만든 것도 따스함을 전하려는 의도였고요.” 그는 이미지에 앞서 담으려는 의미를 떠올린다.
“이제까지 쌓아온 걸 바탕으로 주변에 좋은 영향을 주는 게 성장이라고 생각해요. 북 오브제를 가르치면서 학생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 뿌듯해요.” 좋아하는 일에 무한한 열정을 쏟는 학생들은 그에게 큰 영감의 원천이 되어주기도 한다. 어려운 학술 논문 대신 좀 더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교재 겸 에세이를 쓰려는 결심도 그들 덕분에 할 수 있었다. “북 아티스트가 더 많아지도록 북 오브제를 열심히 알리는 게 목표예요. 그러다 보면 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지 않을까요?” 북 오브제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그가 손에 익은 애착 도구 세 가지를 꼽았다.
[on the DESK]
1. 바늘꽂이. 대학원 시절, 실로 꿰매는 것에 한창 빠져 만들었다. 책을 보면서 독학한 자수 기법을 적용하고 이름도 새겼다. 불이 난다면 이것 딱 하나만 챙기고 싶을 만큼 애착이 크다.
2. 본폴더. 종이를 접거나 펴는 등 다용도로 가장 많이 사용한다. 모양과 소재에 따라 다양해 모으는 게 취미가 됐다. 그중 미국 북 페어에서 산 것을 가장 아낀다. 작가가 동물 뼈를 직접 깎아 만들어 손에 쥐기 편하다.
3,4. 누름돌. 온라인 쇼핑몰에서 산 빨간 벽돌에서 가루가 떨어져 한지로 감싸 8년 넘게 사용하고 있다. 그 밖에도 책 형태와 부피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걸 골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