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LINE]
[00:00-00:51] 미장의 세계로 풍덩
[00:52-01:26] 나를 나아가게 하는 힘
[01:27-01:50] 연습이 주는 자신감
[01:51-02:28] 내 속도에 맞춰 나아가기
커피 한 잔 두 잔으로 겨우 버티는 매일매일, 하루를 내 템포에 맞춰 보낼 순 없을까?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렇듯 주 5일 출퇴근을 하던 너른담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은행에서 텔러로 일했어요. 벨이 울리면 어떤 손님이 올지 몰라 늘 긴장 상태였죠. 정확한 상담을 위해선 다양한 분야를 알아야 하기에 거의 매일 밤새워 공부하고 출근했어요.”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그는 일과 가정 모두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지만, 직장을 다니면서는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없었다.
“예전부터 공간 꾸미는 걸 좋아했어요. ‘오늘의 집’에 나오는 집처럼 인테리어를 해보고 싶었는데, 이런저런 사례를 찾다가 유럽 미장을 알게 됐죠. 그때 미장의 매력에 푹 빠져 벽만 보면서 다녔어요.” 새로운 세계에 눈뜬 그는 미장 현장을 쫓아다니며 기술을 배웠고, 틈날 때마다 베란다에 돗자리를 펼쳐둔 채 연습에 매진했다.
그의 첫 작품은 자신의 집으로, 이를 본 지인들이 하나둘 작업을 의뢰하기 시작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가정집뿐만 아니라 요가원, 스튜디오 등도 시공했고, 지금은 아트 월 디자인까지 하고 있다. “처음 회사 밖으로 나왔을 땐 굉장히 즐겁고도 두려웠어요. 오롯이 혼자 헤쳐 나가야 하니까요. 하지만 오히려 혼자니까 하고 싶은 걸 다 해볼 수 있겠더라고요.”
처음 경험한 현장은 녹록지 않았다. 10kg 정도 하는 미장재를 몇십 통씩 나르고 나면 온몸이 부서질 듯 아팠다. 한여름 무더위와 한겨울 추위, 새벽 5시 기상도 쉽지 않았지만, 은행을 다닐 땐 경험하지 못한 행복을 느꼈다. 미장재를 바를 때 들리는 ‘쓱쓱’ 소리와 자신의 호흡이 박자를 맞추는 동안은 잡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행히 제가 적응을 잘하는 편이더라고요. 책임감이 큰 사람이라는 것도 미장 일을 하면서 깨달았어요. 이 도전을 통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게 모두 내가 성장할 기회란 생각을 하게 됐고요.”
현장 경험이 쌓이면서 너른담만의 스타일도 생겼다. 막 유럽 미장을 시작할 당시에는 빈티지한 스타일이 주류였는데, 그는 이 생각에서 벗어나 한국적인 정서를 담아내고자 했다. 자연에서 온 색감을 유럽 미장으로 표현해 고즈넉하고 단아한 공간을 만든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스타일이 생겼음에도 그는 여전히 경험 많은 전문가들을 찾아가 배움을 구하곤 한다.
“벽 앞에 수없이 섰지만 매일이 처음 같아요. 똑같은 디자인으로 작업을 해도 손길과 환경에 따라 패턴과 색이 달라질 수밖에 없거든요. 그럴 때면 막막한 기분이 들지만 ‘할 수 없다’ 대신 ‘이런 방법도 있다’는 말을 되뇌며 이겨내요.” 매번 새롭게 느껴지는 벽 앞에서 자신의 호흡을 되찾아 미장칼을 고쳐 잡는 것처럼, 아무리 멘털이 흔들리는 일이라도 자신의 속도로 해내야 한단 생각이 들었다.
미장을 통해 삶의 태도, 방식이 바뀐 그는 자신처럼 회사로부터 독립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원데이 클래스와 정규 수업을 연다. 기술을 하나 익히는 일이 새로운 삶으로 넘어가는 발판이 되어줄 테니. “아이들을 위한 미장 교구를 제작할 계획이에요. 다양한 직업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거든요.” 그의 말처럼 시선을 살짝만 돌려도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일이 있다. 늘 우리 주변에 존재하지만 그저 ‘내 일’이 아니라 생각했던 것들, 그 안에 내가 상상해 온 삶이 담겨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 ‘할 수 없다’ 대신 ‘이런 방법도 있다’고 외치며, 낯선 세계를 탐험해 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