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LINE]
[00:00-00:34] 어른의 공부란?
[00:35-01:19] 자기 계발 말고 자기 발견
[01:20-01:59] 공부로 꽉 찬 하루
[02:00-03:00] 영감을 얻는 시간
“어릴 때 독서실에서 에세이나 소설을 종종 읽었는데, 그때는 그게 공부하는 게 아니라 노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자아 성장을 위한 커뮤니티 ‘밑미’에서 러닝메이트를 맡고 있는 에세이스트 ‘단단’에게 공부의 의미는 어른이 되어 180도 바뀌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공부를 강요받는다. 성적을 위해, 입시를 위해, 좋은 직업을 위해. 그에게도 학창 시절 공부는 수치화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공부를 잘하고 좋아했지만, 학창 시절 공부에는 ‘결과물’이 따라붙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입시와 취업을 지나고 사회 초년생이 되면서 새로운 챕터가 시작됐다. “더 이상 수치화된 공부를 할 필요가 없는데도 제 안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어요.” 그렇게 퇴근하고부터 관심 있던 분야의 책을 읽는 것으로 시작했다. 놀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진정한 배움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나의 감정과 상황은 내 탓이 아니지만 내 책임 가운데에 있다.” 어느 날 명상 가이드에게 들었던 이 문장이 그의 마음에 들어왔다. 내 삶의 방향키를 내가 쥐고 있다는 감각이 들게 했다. 공부는 그 감각을 극대화해 주었다. 어른이 되어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며 그는 불안감이 서서히 줄어드는 걸 느꼈다. “그동안은 불안을 이겨내려 공부하고 취업 준비를 하고 여러 가지 시험을 봤다면, 지금은 공부를 하는 것 자체가 불안감을 해소해 줘요.” 단단에게 공부란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그런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욕구에서 비롯한 행위는 아니다. 회사 생활을 하고 사회의 일원이 되어서도 자본과 시간을 투자해 자신의 능력과 효율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다. “저는 자기 계발이란 말을 싫어해요. 공부는 자기 발견에 가까워요. 내 안에 이미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반짝반짝 빛나게 닦아주는 게 제가 하는 공부예요.”
기록은 공부에서 중요한 일 중 하나다. “공부를 좋아하고 잘하지만 기억력이 안 좋은 편이에요. 업무 회의 후 회의실 밖을 나가면 무슨 내용이 오갔는지 기억을 잘 못해 회의 노트를 쓰기 시작했죠. 폭발적인 에너지가 있는 편이 아니라 임기응변에는 약한 편이고요. 반면 강점은 정리하기, 시스템 및 템플릿 만들기예요. 아주 복잡한 상황 속에서 저만의 법칙과 방향성을 찾아내죠.”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기보다 나를 위해 시작한 기록이 쌓이면 그것이 자신의 장점과 약점을 파악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솔직하게 적어 내려가는 게 중요하다.
“2018년부터 브런치에 꾸준히 공부 일기를 올렸는데 솔직한 기록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주더라고요.” ‘밑미’에서 공부 리추얼을 이끈 지도 벌써 1년 반이 됐다. 매일 30분씩 공부를 하고 기록을 남기는 리추얼이다. 잠자리에 들기 직전 리추얼 메이트들의 기록을 확인하고 일일이 댓글을 다는데, 하루 일과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내향적인 데다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지만 밑미 활동을 하며 느슨한 연대와 소속감을 느껴요.” 그의 글을 보고 영감을 얻은 메이트들의 편지 같은 기록을 보며 나눔에 대한 기쁨을 맛본다.
공부를 하며 스스로를 단단히 한다는 의미에서 ‘단단’이라고 이름 지은 그의 삶 또한 새로운 지식과 깨달음으로 가득 차 있다. “쇼핑 관련된 직업을 갖다 보니 배송을 시킬 일이 정말 많은데, 어느 날 택배 상자를 30분 동안 뜯다가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불필요한 쓰레기를 만들 일 없이 내가 정말 좋아하는 물건을 필요한 만큼만 사서 쓰기로 한 거죠.” 자신을 돌아보는 공부를 통해 그는 비건 베이킹을 하고 쓰레기를 줄이는 삶의 방식을 실천하게 됐다. 시간 날 때마다 비건 스콘, 비건 쿠키, 비건 파운드케이크 등을 만들어 차와 함께 즐기며 책을 읽는 일이 낙이다. “공부는 머리를 쓰는 일에 가깝잖아요. 계속 앉아서 머리를 쓰다 보면 어디서부턴가 생각의 회로가 막힐 때가 있는데, 그때 몸을 움직여 재료를 만지고 향을 맡고 맛을 보는 활동이 제게 휴식과 놀이의 기능을 해요.” 어린 시절에 공부가 끝나면 떡볶이를 사 먹으며 휴식을 취했던 것처럼, 꾸준히 공부하는 삶 한편에는 비건 베이킹이 있다. 공부와 균형을 맞춰가는 또 다른 배움의 현장인 셈이다. 그에게 배움은 늘 어디에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