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트인 전망을 놔두고 왜 답답한 사무실에서 일해야 하나요?” 디지털 노마드 워크를 왜 시작했는지에 대한 이들의 답은 이렇게나 명쾌하다.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을 만나는 유튜브 채널, ‘요즘 것들의 사생활(이하 요즘사)’을 2017년부터 운영 중인 크리에이터 이혜민과 정현우는 2021년에는 ‘노마드워커스’라는 채널도 시작했다. 제주도, 강원도 등으로 떠나 그곳에서 일하고 여행하는 기록을 남기는 채널이다. “요즘사를 통해 만나온 사람들은 항상 자기 삶의 방식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시도하고 있었어요. 그런 삶의 다양한 모습에서 가능성을 보고 용기를 얻었고, 우리 스스로도 누군가의 레퍼런스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노마드 워킹을 시작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들은 각자 디자인 회사, 광고 회사를 다니며 매일 야근은 기본이고 주말까지 반납하며 살았다.
“내 시간을 주체적으로 사용하고, 정해진 경로 대신 우리만의 길을 걷고 싶었어요. 둘이 결혼식 대신 산티아고 순례길 900km를 걸었는데, 아마도 그때 노마드로서의 정체성이 시작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결혼과 동시에 이들은 투 트랙 전략을 세웠다. 한 사람은 안정적인 생계를 위해 회사에 다니고, 다른 한 사람이 하고 싶은 분야의 길을 닦아 놓는 방법이다. 그렇게 요즘사 영상 기획을 맡은 이혜민이 먼저 퇴사하고, 영상 촬영과 편집을 맡은 정현우는 채널이 자리 잡은 후 회사를 그만두었다. 제법 촘촘한 계획을 통해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갈 준비를 완료한 것. 지난해 강원도 여러 도시를 이동하며 일해보는 실험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제주와 태국 치앙마이로 노마드워킹을 떠났다.
“국내 여행지는 차를 갖고 다닐 수 있어 편해요. 도시마다 코워킹 스페이스나 숙소도 잘 마련되어 있죠. 강원도와 제주도의 수려한 자연 풍경은 말할 것도 없고요. 다만 관광지인 만큼 물가가 비싼 편이에요. 반면 치앙마이 물가는 한국의 ¼ 정도 수준이었어요. 모든 일상의 공간이 이국적이라 특별히 관광지를 찾지 않아도 여행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죠.” 이들은 디지털 노마드를 위한 도시의 기준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멋진 자연 풍광과 빠른 인터넷 속도, 치안. 노마드 워커의 성지로 불리는 치앙마이는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곳이었다.
낯선 도시에서 여행하듯 일하는 하루는 어떨까? 이혜민과 정현우는 보통 노마드 워킹을 하면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일어나 오전 7시부터 11시까지 일을 한 뒤 오후에는 도시를 여행하고 저녁 7~8시쯤 남은 업무를 처리한다. “사무실이나 집에서 일할 때는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집중이 잘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새로운 도시에서는 좀 더 계획적으로 일하게 돼요. 빨리 밖에 나가서 놀고 싶으니까요!”
“요즘은 주로 ‘반달 살이’를 하고 있어요. 콘텐츠 소스가 되는 촬영은 서울이나 경기권에서 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죠. 일정 기간을 정해서 한꺼번에 촬영을 하고, 그 후에는 어디든 이동하며 그 결과물의 후반 작업을 해요. 촬영이 아닌 미팅을 비롯한 소통은 100% 온라인으로 가능해요. 아직 그 부분에서 불편함을 느끼지는 못했어요.” 이혜민과 정현우는 디지털 노마드 라이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동하면서도 일할 수 있도록 성능 좋은 노트북을 구비하고, 언제 어디서든 장비를 펼칠 수 있는 생활 도구들을 구입했다. 하지만 계획이 현실이 된 지금, 이 삶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물건이 아니라 마음가짐이라고 한다.
“처음 준비할 땐 ‘어떤 도구를 사용하고 어떻게 일해야 할까?’에 포커스를 맞췄어요. 하지만 실제로 실행에 옮기고 나니 ‘어떻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았죠. 이미 우리에게 기술적 기반은 모두 갖춰져 있잖아요.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충분히 고민하고, 일반적인 방식의 삶 대신 다양한 길을 두루 모색해 보는 시간이 필요해요. 회사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 수도 있잖아요.”
리모트 워크를 하는 직장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 해도 떠나는 것을 결정하는 건 결국 각자의 선택이다. 이혜민과 정현우는 강원도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서도 선택권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로컬 콘텐츠 비즈니스를 하는 ‘더웨이브컴퍼니’나 노마드 워크를 위한 가구를 제작하는 ‘그레이피스’ 등 주체적인 삶의 방식으로 일하고 살아가는 ‘요즘 것들’을 보며 수도권이 아닌 또 다른 도시에서 살아가는 삶도 꿈꾸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우리에게는 ‘원하는 곳에서 일할 선택권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고 우린 그걸 선택할 수 있어요. 그 하나의 예로 ‘노마드워커스클럽’을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바다나 산을 마주한 채 일을 하고, 퇴근 후 곧장 수영을 즐기는 여행 같은 일상을 영상으로 보여주면서 이들은 하나의 가능성을 제안한다.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우리가 일하고 살아가는 무대를 전 세계까지 넓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어요. 물리적 공간의 한계가 없어지니 생각의 한계도 사라졌죠.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고 있어요.” 이들은 앞으로 국내, 해외를 가리지 않고 여행하듯 일하며 그 도시의 노마드 워커스와 만날 계획이다. 우리의 삶은 생각보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뻗어 나갈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