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differ 𝐒𝐓𝐀𝐆𝐄
디퍼 스테이지는 책상을 무대로 깊이 있는 배움과 연결을 만드는 오프라인 워크숍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연사를 초청해 데스커라운지 홍대의 빅테이블에서 사람과 생각이 만나고, 작업과 대화가 연결됩니다.
지난 3월 26일, 데스커라운지 홍대에서 <시대의 언어, 자기 삶의 철학을 발견하는 법>을 주제로 김지수 기자와 함께하는 디퍼 스테이지가 열렸다. 김지수 기자의 30년 커리어 라이프, 인터뷰어로서의 철학 그리고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와 맥락. 김지수라는 책의 페이지가 넘어가며 삶의 굴곡과 질문이 달라질 때마다 서른 명이 넘는 청중의 기록하는 손도 덩달아 분주해졌다. 김지수의 시선, 목소리, 손짓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손놀림이었다. 어느새 differs들의 들뜬 기대감은 데스커 라운지의 빅 테이블과 머리 위로 쏟아진 조명의 부드러운 조도 아래 진중한 몰입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60개가 넘는 눈동자가 김지수라는 한 지점을 향해 돌진하던 그날, 나는 영화 <인터스텔라>의 주인공 쿠퍼가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장면을 겹쳐 떠올렸다. 속수무책 흡수된 차원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한눈에 보며 제3의 눈을 뜬 쿠퍼처럼, 우리는 김지수라는 차원 속에서 무엇을 발견했을까?
질문. 많은 사람이 김지수에게 질문에 대해 묻는다. 어떻게 하면 특별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지, 질문을 잘하는 비법이 무엇인지.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를 한 번쯤 읽어본 사람이라면 김지수의 매끄럽고 사려깊은 대화가 그의 예리한 질문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김지수의 대답은 달랐다. “특별한 질문은 없어요. 보편적인 서사를 재배치하는 것일뿐이죠. 질문은 특별한 사명과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평생 추구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고(故) 이어령 선생님도 죽음을 평생 탐구했어요. 질문의 형식을 띤 궁금해 하는 마음과 정중함, 무엇보다 수용성이 중요해요. 그 자체가 하나의 질문이에요.”
질문의 대상이 자기 자신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타인의 세계를 탐험하는 동시에 스스로 되물으며 자신의 내면으로 끝없이 파고들었다. 나는 뭘 하는 사람이지, 하고. “모든 물체가 갖고 있는 파동, 그 떨림에서 공명하는 게 울림이에요. 한때는 제 스스로를 울림과 떨림을 잇는 사잇꾼이라고 정의했어요. 어느 순간에는 한 인간 안에 있는 아름다움과 눈물겨움을 발견하는 사람이라 칭하고요.
제가 30년 이상 일을 해온 비결은 생계죠, 뭐. 저는 글쓰는 직업인으로서의 열망이 굉장히 강했어요. 조지 오웰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를 보면,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가 ‘잘난 체 하고 싶어서’라고 하거든요. 근사해 보이고 싶어서. 제게도 그런 열망이 있었어요. 나의 자존감을 채우는 게 글쓰기였고, 그게 일이자 생계였고. 자연인 김지수가 난제에 처했을 때 직업인 김지수가 구했어요.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글을 쓰면 많은 사람이 해결 받고, 그게 다시 동기부여가 되며 순환했어요.” 노트북으로 쉴새 없이 강연 내용을 기록하던 어느 청중의 메모장은 새까만 글자가 빼곡했다.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는 그렇게 자기 자신과 타인을 모두 구했다. 많은 사람이, 아니 김지수 자신이 글을 통해 회복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특별함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가 처음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를 시작했을 때엔 주로 배우나 유명 인사들을 인터뷰이로 섭외했어요. 새롭게 옮긴 직장에서 저도 성과를 보여줘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때도 제가 늘 주목한 건, 그 사람이 가진 보편성이었어요. 저는 내 안의 애틋함을 발굴하는 데 많은 애를 썼어요. 인터뷰이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정의되도록. 배우 이병헌 씨를 인터뷰 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어요. 그 사람의 고유성에서 모든 사람의 보편성을 드러내고자 했죠. 그게 바로 똥이에요.”
“이병헌은 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이병헌은 위기의 순간마다 똥 덕분에 기사회생했고, 똥의 기운으로 대박을 터뜨렸다. 정치, 언론, 재계의 추악한 욕망이 어우러져 거칠게 돌아가는 영화 ‘내부자들’에서 가장 웃음이 터지는 대목은 이병헌이 투명 유리로 된 러브호텔 화장실에서 조승우를 옆에 두고 똥을 싸는 장면이다.”
_’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배우 이병헌 인터뷰 중에서
유명인사에서 시작해 시대에 부응하는 어른과 석학, 장인을 두루 만나며, 그는 각 시기마다 키워드를 정리해 책을 엮었다.
“시기마다 아주 뜨겁게 발산하는 키워드가 있어요. 점점 이야기가 모이고 겹치는 지점이죠. 2016년부터 2018년까진 좋은 어른을 찾아 헤매던 시기였어요. 어른의 말이 주목 받았죠. 2018년부터 2020년까지는 자기다움이 키워드였고요. 그러다 코로나 시기가 찾아왔고, 2021년까진 약화된 자기감을 강화하고자 문장 수집 움직임이 일며 ‘어떻게 일할 것인가’가 중요한 논제가 됐어요. ‘나는 누구인가’보다 ‘나는 어떻게 일할 것인가’로 나를 설명하기가 더 쉽거든요. 이때 일에 대한 문장이 쏟아져 나왔어요. 2023년까지는 코로나 시기를 어느 정도 지나며 모든 언어가 재배치 됐어요. 잠시 멈춘 시간 속에서 이 세계의 규칙을 되돌아보기 시작한 거죠. ‘다정한 사람들의 시대’가 도래한 거예요.”
“다음 시대의 신호는 ‘의젓한 자아’로 설정했어요. 이 주제는 제가 의도적으로 찾은 건 아니고, 기독교 사상가 김기석을 인터뷰 하며 들었던 ‘타인에게 의젓한 사람이 되어보라’라는 말에서 착안했어요. 지금은 굉장히 겨울의 시기이고 사회 시스템이 재조립 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다정함에서 의젓한 시대로 나아가야 해요. 지금 광장에 나와 있는 분들을 보면 어리더라도 의젓한 사람이 많거든요. 의젓함이라는 양태 형용사에서 그치면 안돼요. 그런 사람이 되어 보기까지 해야 합니다.”
강연 시작 전 대기실에서 ‘강연은 잘 못한다’며 멋쩍어 하던 자연인 김지수의 모습은 온데 없고, 어느새 빅 테이블을 무대 삼아 리드미컬하고 우아하게 활보하는 여걸의 기개만 남아 있었다. 이야기가 점점 무르익어 강연은 막바지에 다다랐다. 그는 말을 잠시 멈춰 청중의 안색을 살폈다. “말이 너무 길어졌죠? 더 이야기 해도 괜찮을까요?” 곳곳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더 해주세요!”
그는 시대의 언어, 자기 삶의 철학을 발견하려면 큰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고 했다.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모두 아울러 그리는 인터뷰어로서의 자질과도 맞닿은 부분이었다. 그가 믿음직스러운 인터뷰어로 걸어온 모든 시간은, 바로 이 세상을 높은 곳에서 떨어져 보는 훈련이 되었을 것이다.
“시야를 멀리 두면 다 패턴이 있어요. 탐색, 분투, 멈춤, 전환. 개인의 경력도 그렇고, 사회적 시간도 계속 이 패턴에 따라 순환되죠. 시대의 언어를 찾으려면 변화를 이루기 전에 변화를 감지해야 해요. 큰 눈으로 세상을 보면 효율이나 시스템보다 정성과 지구력이 이깁니다. 모두가 뛰어난 재능을 갖고 싶어하지만, 재능을 탐하기보다 시간을 투자하고 정성을 들여야 해요.”
다만 그는 시선을 높게 잡는 동시에 언어는 촉각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몇차례나 강조했다. “대중이 원하는 건 정보가 아니라 확실성이에요. 복잡한 정보로 가득한 세상에서 한 장면으로 쉽게 이해되길 원하죠. 한 문장, 한 단어에 담긴 확실성. 즉, 꽂히는 언어가 그래서 필요합니다.
꽂히는 언어가 나오려면 일단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좌표를 정확히 찍어야 해요. 그걸 감각적인 도끼로 찍어야 하죠. 인간의 다섯 가지 감각 중에 촉각이 주는 힘이 가장 커요. 내 피부로 와닿는 일만큼 크게 반응할 순 없거든요. 그래서 굶주려 본 사람은 배고픈 사람을 지나치지 못하는 거예요. 우리가 추위에 떠는 이에게 마음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고요. 저는 ‘촉발하다’라는 동사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촉이 갖고 있는 민감함과 공명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혀와 눈, 귀와 같은 감각기관이 언어를 통해 구체적으로 감지되는가, 문장이 생물성을 갖고 있는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많은 문학 작품이 날씨 묘사로 시작하는 덴 다 이유가 있어요. 날씨 얘기만큼 마음을 쉽게 여는 장치가 또 없거든요.”
명창은 홀로 탄생하지 않는다. 소리를 주는 이뿐만 아니라 잘 받아주는 상대가 있어야 비로소 훌륭한 소리가 태어난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였다 한들 청중이 몰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명강연이 될 수 있을까? 예정된 90분을 조금 넘긴 강연이었지만,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쏟아진 박수 갈채와 함께 자연스레 이어진 짧은 사인회. 김지수 기자와 청중은 끝까지 서로를 향한 애정과 온화한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디퍼 스테이지 시간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며 문득 일곱 살 무렵이 떠오른 건 왜였을까.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일곱 살 꼬마는 그게 무척 궁금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더욱, 죽음은 나와 거리가 먼 추상적인 세계관에 가까웠기 때문에 나는 생의 끝을 그릴 때마다 꼭 엄마를 떠올렸다. 나의 온 마음, 온 우주의 상실을. 그러면 어떤 광활한 무언가에 압도되는 기분이었는데, 곧이어 현기증과 함께 속이 울렁거리며 눈물이 삐죽빼죽 새어 나왔다.
소매로 눈을 슥슥 닦고는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가 업혀, 엄마의 체온을 느끼고 냄새를 맡으면 그제야 기분이 나아졌다. 엄마의 등은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따뜻함이 그립지 않은 사춘기 나이가 됐을 즈음, 나는 깨달았다. 이 평범한 질문은 내가 ‘여전히 살아있는’ 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인간으로서의 삶에 마침표를 찍는 날, 비로소 알게 될 것이라는 걸.
삶은 늘 수수께끼이지만, differs들도 책상 위 디퍼 스테이지에서 저마다의 질문을 품고 답을 찾는 시간이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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𝗖𝗮𝘀𝘁 김지수
𝗗𝗶𝗿𝗲𝗰𝘁𝗼𝗿/𝗠𝗼𝗱𝗲𝗿𝗮𝘁𝗼𝗿 Hyeyoon Ch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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