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하는 일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예술을 하는 사람. 주로 빈티지 의류에 그래픽을 입혀 커스텀을 한다. 몸을 사용해 퍼포먼스를 하기도 하고, 단편 소설을 쓰거나 짧은 만화를 그린다. 주말에는 김비키친북스토어를 통해 모아둔 책을 떠나보낸다.
김비키친북스토어를 시작하게 된 계기
어릴 적부터 책을 가까이했다. 만화책으로 시작해 판타지 소설, 세계 문학 전집을 사다 보니 점차 취향이 견고해졌다. 책을 사는 게 취미이다 보니 자연스레 책이 많아졌는데 어느 날 엄마가 ‘이제 책 좀 그만 사는 게 어떠냐’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본가를 둘러보니 책을 수납할 곳이 모자라 주방 서랍장까지 책들로 꽉꽉 채워져 있었다. 책을 그냥 처분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게 떠나보내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책을 잘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 읽었던 책도 다시 읽고, 읽지 않고 보관만 한 책도 읽으며 타인에게 소개할 수 있을 정도의 감상을 적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비키친북스토어의 의미
‘책이 너무 많아져서 이제 가족이 위험하다’는 것이 김비키친북스토어의 콘셉트다. 엄마와 동생에게 잠옷을 입혀 눕힌 후 주위에 책을 쌓아두고 사진을 찍었다. 책이 너무 많아 가족이 책에 맞아 쓰러졌으니 이 책을 빨리 처분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처음 책을 떠나보낼 결심을 했을 땐 슬픈 감정이 들었는데 재미있게 해보고 싶어서 유머를 더했다.
독서 아카이브를 하는 공간
인스타그램 김비키친북스토어(@kimbikitchen.book.store)에 읽은 책에 대한 소감을 적고 그 책을 중고로 팔기 시작했다. 서울 연남동의 와인&디저트 바 ‘미드나잇 플레저’에서 심야 영업을 하면서 책도 함께 소개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주셔서 김비키친북스토어를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선보이게 됐다.
떠나보낼 책의 기준
다시는 읽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하는 책, 정말 좋은 책이지만 인생에서 두 번 읽을 수 있을까 싶은 책은 떠나보낸다. 또 읽을 것 같거나 영원히 소장하고 싶은 건 가지고 있는다.
책을 보낼 때의 마음
가만히 책장을 보는 것도 좋아한다. 그 또한 책을 읽는 행위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을 바라보고 있으면 책을 읽을 당시 나의 상태와 내용 중 일부가 떠오른다. 읽지 않은 책을 보고 있으면 읽게 될 때의 순간이 상상된다. 책 하나하나가 의미 있기 때문에 상품처럼 쉽게 팔고 싶지 않았다. 책에 담겨 있는 경험만큼 어떤 과정을 거쳐야만 납득하며 떠나보낼 수 있겠다 싶어 한 번이라도 더 읽고 글이라도 쓰고 싶었다. 너무 쉽게 버리면 내가 가진 다른 어떤 물건도 쉽게 대하게 될 것 같기도 하고. 처음 책을 사겠다는 연락이 왔을 땐 내 인생에서 이 책이 영원히 사라지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더 이상 읽히지 않고 방치될 바에는 다른 사람에게 가서 새롭게 사용되는 게 훨씬 좋다고 생각해 프로젝트를 지속하고 있다. 요즘에 뭔가를 더 버리려고 하고 있다. 세상으로 나가서 더 이롭게 되는 것이 좋다.
책이 나의 인생에 미친 영향
일이든 취미든 혼자 하는 걸 좋아하지만 동시에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것에 대해 눈치를 많이 본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취미는 다 혼자 하는 것들이다. 영화 감상, 독서, 카페에 앉아 있기 등. 혼자 있는데 할 일이 없으면 굉장히 불안하다. 책은 나에게 할 일을 준다. 책은 혼자 있어도 괜찮다는 증명서 같은 것이다. 책을 들고 있으면 혼자 있어도 외로운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위안이 든다. 보호막 같기도 하다.
김비키친북스토어와 직업의 연결 고리
프린트 장비를 사 집에서 옷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공장을 소유한 자본가가 된 기분이었다. 옷을 대량 생산하는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 결심했다. 일단 작게 시작하려고 빈티지 옷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창고에 옷을 구하러 갔다가 버려진 옷들의 산을 목격했다. 그걸 보고 난 후 옷을 만들어야겠다는 의지를 잃었다. 세상에 옷이 너무 많으니 빈티지에 커스텀을 해서 리사이클 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야겠다고 방향을 바꿨다. 지금에 와 생각해 보니 김비키친북스토어와 내가 하는 작업에 비슷한 면이 있다. 책이 다른 사람에게 가서 다시 읽히는 것처럼 커스텀한 옷을 누군가가 입으면 다시 쓸모를 찾게 되니까.
나의 주말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사람을 만나는 시간. 집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사람을 안 만날 때도 많다. 주말에는 와인, 디저트와 함께 책을 소개하며 필연적으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나의 주말은 만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