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자동차 커스터마이저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많이 떠올린 질문
Q. 재미있을까?
설치미술 작가, JYP엔터테인먼트 비주얼 디렉터, 편집 숍 바이어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 그때마다 거창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즐기며 몰두할 수 있는 일이겠다 싶으면 뛰어들었다. 흥미로운 일을 업으로 삼았으니 대부분의 시간이 즐거웠고, 힘든 일이 닥쳐도 그런대로 이겨낼 만했다. 노는 듯 일하다 도저히 재미가 없어지면 또 다른 재미를 일로 연결할 궁리를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좋아하는 일로 꾸준히 돈을 벌었으니 운 좋은 사람인 건 확실하다.
일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자존심을 잃지 않는 것.
자동차 커스터마이저란 직업이 다소 생소한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소개해 주세요.
차주의 의뢰를 받아 세상에 단 한 대뿐인 자동차를 만드는 일이에요. 여러 페인트를 조합해 차량에 칠하기도 하고 그 위에 화려한 무늬를 그려 넣거나 메탈 장식을 더해 전반적으로 차량의 외관을 멋지게 꾸미는 일을 하죠. 자동차를 주로 작업하지만 바이크 의뢰도 꽤 들어오고요. 그런가 하면 단순한 외관 꾸미기를 넘어 수명이 다한 차량에 숨을 불어넣는 일도 하고 있어요. 저기 주차장에 세워진 차들 중에는 1940~50년대에 출시된 올드 카가 많은데 오랜 세월을 견딘 만큼 여기저기 낡고 부식되게 마련이죠. 이런 차들의 속부터 겉까지 손을 봐 실제 주행이 가능할 정도로 복원하는 일 역시 맡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됐나요?
취미로 ‘록크롤링 rockcrawling’을 즐겼어요. 자동차를 타고 큰 바위나 언덕을 넘나드는 스포츠인데 대회에 출전할 정도로 꽤 진지해졌죠. 그런데 바위, 모래, 물처럼 험난한 곳을 달리다 보니 그에 맞게 차량 성능을 개조할 일이 많았어요. 한번 달렸다 들어오면 차량 이곳저곳이 망가져 수리비가 몇 천만 원씩 들어가기도 했죠. 매번 개조·수리 과정을 지켜보는데 어느 순간 ‘어? 이거 나도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간 제가 배워온 회화, 조소, 무대 디자인 등이 차량을 개조하고 손보는 일과 일정 부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예컨대 무대 디자인을 할 땐 목수처럼 나무를 이리저리 잘라가며 상상하던 디자인을 구현해야 했고, 개인 작업을 하면서도 페인트를 섞어 다양한 컬러와 텍스처를 만들어냈죠. 어쩌면 적성에 잘 맞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록크롤링 대회를 함께했던 팀원들에게 돈 안 줘도 좋으니까 일 좀 배우게 해달라고 졸랐어요. 그래서 JYP를 그만두고 다시 ‘초년생’으로 돌아갔죠. 그때부터는 거의 차 개조에 올인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가지고 있던 비싼 차를 풀었다 조였다 하며 구조나 원리도 익히고 온갖 색을 다 섞어 칠해 보면서 어떤 상태에서 최상의 결과물이 나오는지를 차근차근 배웠어요.
단순히 배우는 데서 그친 게 아니라 아예 정비소를 차렸잖아요. 이유는 뭐예요?
자존심 상하는 일을 겪었어요. 사실 팀에 들어가 기본기를 익혔지만, 그와 동시에 제가 좋아하는 올드 카 복원도 조금씩 시도해 보고 있었거든요. 일 끝나고 정비소에 남아 이것저것 만져보고 있는데 어쩌다 사장님이 그걸 보고는 욕까지 섞어가며 나중에 네 정비소가 생기거든 그때나 이렇게 하라고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그 말에 오기가 발동해 5년 전 집까지 팔아 경기 의왕에 있던 1급 정비소를 인수했어요. 정비소는 면적이나 인적 구성에 따라 등급이 나뉘는데 과거엔 1, 2, 3급으로 구분해 차량 수리 범위를 정했죠. 3급에 비해 1급이 더 규모도 크고 복잡한 정비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의미고요. 지금은 개정이 돼서 등급 대신 자동차종합정비업, 소형자동차종합정비업, 자동차전문정비업으로 명칭을 정리했어요. 자동차전문정비업이 과거의 1급 정비소나 마찬가지죠. 어찌 됐든 그렇게 1급 정비소까지 인수했으니 이제 본격적인 판이 열린 셈이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건 다 해보자 싶어서 로라이더나 핫로드 스타일의 차들을 다뤄보기로 했죠. 어릴 적부터 힙합이나 로큰롤을 정말 좋아했는데 뮤직비디오를 보면 늘 이런 화려한 차들이 등장하더라고요. 그래서 기존 정비소에서 하던 사고 차량 수리 같은 건 다 접고 철저히 주문제 작업 방식으로 시스템을 바꿨어요. 공업사 인수 때 만난 공장장님을 비롯해 커스텀 페인팅이나 메카닉(기계공) 파트의 직원도 충원했고 좀 더 넓고 쾌적한 여건을 찾아 2년 전 이곳 일산으로 장소도 옮겼죠.
로라이더나 핫로드의 개념이 생소한데요. 어떤 차들을 뜻하나요? 저기에 있는, 힙합 뮤직비디오에서 자주 봤던 화려한 차들을 말하는 건가요?
맞아요. 과거 미국에 거주하던 멕시코 사람들이 주로 탔던 차가 로라이더예요. 자동차를 타고 싶은데 불법 취업을 했으니 새 차는 못 사고 연식이 오래된 중고차를 구입해 여기저기 꾸며 탔다고 해요. 그 차의 특징이 화려하고 차체가 낮아 ‘로라이더 lowrider’ 스타일이라고 하죠. 그에 반해 핫로드 hot-rod는 백인 중심이에요. 196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올드 카를 뜻하기도 하고 이런 차들에 튜닝을 더하는 문화를 통칭하기도 해요. 저는 이런 로라이더나 핫로드 스타일의 차량이 정말 아름답고 특별하다고 생각했어요. 저기 보이는 저 빨간 차량은 1954년도에 생산됐는데 그때가 미국 최고의 경제 성장기였어요. 아폴로 우주선이 달나라에 착륙하던 시절이죠. 재미있는 게 그런 시대상이 차에 투영된다는 점이에요. 차의 형태가 우주선 같다거나 경제 부흥과 맞물려 극단적인 화려함을 추구하는 식으로. 이런 매력을 가진 올드 카가 사라지지 않도록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차량이 입고되면 보통 어떤 작업을 거치게 되나요?
어떤 작업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올드 카 복원의 경우 속부터 다 뜯어고쳐야 하기 때문에 과정이 꽤 복잡해요. 50~60년씩 된 차량들이라 힘이 없고 여기저기 낡았는데 아무래도 차에서 가장 중요한 엔진과 미션을 제일 먼저 손보죠. 오버홀이라고 해서 엔진을 분해한 뒤 깨끗이 씻거나 정비를 거쳐 재조립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그다음으로는 하체를 들여다봐야 하는데 부품이 많아 인체로 치면 관절, 골격과 비슷해요. 유기적으로 잘 연결이 돼 굴러가는지 확인해서 문제가 있으면 새 부품으로 교체를 하고 있어요. 물론 올드 카의 특성상 부품 수급이 만만치 않아서 주로 해외에서 공수해 오곤 합니다. 기본적인 수리를 마치고 나면 이제 차체가 손상되거나 칠이 벗겨진 부분 등에 집중하죠. 곱게 색을 입히거나 독특한 무늬를 넣거나, 볼드한 메탈 장식을 더하는 식으로요. 물론 차량 내부의 핸들이나 시트 등을 보기 좋게 매만지는 작업도 가능해요. 최대한 순정 상태를 유지하되 기능을 끌어올리는 식으로 작업하고 있죠.
차량의 디자인이며 색상이 굉장히 독특한데 어떤 식으로 디자인 작업을 하나요?
특별히 스케치를 하진 않아요. 그저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그때그때 구현할 뿐이죠. 고객들 중에 구체적인 요구 사항이 있는 분도 있지만 그냥 알아서 해달라며 믿고 맡기는 손님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 차엔 이런 색이나 디자인이 어울리겠는데?’ 하며 자유롭게 이런저런 시도를 하게 돼요. 그래서 의뢰받아 일을 하면서도 늘 제 개인 작품을 하고 있다는 마음가짐이죠. 지금껏 30대가량의 차를 작업했는데 그 차량 한 대 한대가 제 작품이에요. 작업을 하는 과정을 즐길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자율성 때문인 것 같아요.
굉장히 창의적인 일을 하는데, 머리를 식힐 땐 주로 뭘 하나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겨요. 혼자 낚시하고, 술 마시고, 음악 들으면서. 입은 꾹 다물었어도 머릿속으로는 생각이 치열하죠. ‘이런 작업을 해볼까, 저런 시도를 해볼까?’ 그런 가능성을 점쳐보는 것 자체가 즐거워요.
일을 하며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일이 막힌다 싶을 때 물어볼 사람이 없다는 게 조금 어려웠어요. 한국은 올드 카나 로라이더 시장이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협소하기 때문에 자연히 전문가가 형성될 환경도 아니었죠. 그래서 맨 땅에 헤딩하듯 시작한 저로서는 같이 의논하고 협의할 대상이 없더라고요. 대신 유튜브에 등장하는 해외 사례들이 좋은 교과서가 됐죠. 영상을 반복 재생하면서 ‘아, 저럴 때는 저런 도구를 쓰는구나’ 깨닫고 배운 적이 많았어요. 그런가 하면 제반 여건도 잘 갖춰지지 않았는데 하다못해 차량에 스케치하는 용도로 쓰이는 테이프 하나도 살 곳이 없었어요. 대형 문구점을 다 돌아다니며 고군분투하다 결국 해외 직구로 해결했는데 지금은 노하우가 쌓여 어디에서 어떤 부품이나 부자재를 구해야 하는지 잘 알죠. 이런 노하우가 쌓이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어요.
거친 기계를 다루는 만큼 체력 소모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맞아요. 평균적으로 9시간 정도는 작업을 해야 하고, 바쁠 땐 하루 12~13시간씩 강행군을 이어갈 때가 있어요.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 일을 하다 보면 깜빡 졸 수도 있는데 위험한 기계를 다룰 때가 있으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죠. 그래도 그런 고생을 거쳐 상상하던 모습이 ‘짠’ 하고 나타날 때면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껴요. 그런 짜릿함 때문에 힘들어도 재미있게 일을 할 수 있는 거겠죠.
유튜브 채널 <루이스 커스텀>을 운영하잖아요. 구독자가 5만 명이 넘는데, 채널을 연 이유가 뭐예요?
아, 그건 친구의 조언이 컸어요.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활동하는 친구가 넷플릭스를 보면 차량을 수리하고 튜닝하는 ‘카(car) 마스터’ 얘기가 나오는데 네가 하는 일과 비슷하다며 한번 유튜브를 해보라고 제안하기에 괜찮은 생각 같아서 채널을 열었어요. 실제 어떤 과정을 통해 올드 카가 복원되는지,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면면은 어떤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았는지 재미있게 봐주시더라고요. 이쪽 분야에 알려진 정보가 없어 막막했던 때를 생각하면 누군가에게 정보가 될 만한 영상을 찍고 있는 것 같아 만족해요.
자동차 커스텀 일을 배우고 싶다는 댓글이 많더라고요. 이런 분들께 어떤 조언을 하나요?
인스타그램 DM, 유튜브 댓글 등을 통해 이 일을 배우고 싶다는 분들의 연락이 정말 많이 와요. 홈페이지 주소를 보고 직접 찾아오는 분들도 가끔 있는데 괜한 희망을 줄까 봐 최대한 현실적인 얘기들을 들려줘요. 유튜브 채널에 올린 작업 과정은 실제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데다 편집한 영상이라 마냥 재미있고 신나 보이지만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거든요. 기름으로 기름때를 닦고, 손을 다치는 날도 허다하죠. 올드 카라는 분야의 특수성도 고려를 해야 하고요. 정비학과를 나왔다? 국가 공인 자격증을 취득했다? 물론 중요하죠. 그런데 70~80년 전에 만들어진 차를 다뤄야 하다 보니 최신의 차로 이해한 지식이나 기술만 가지고 실전에 뛰어들기엔 무리가 있어요. 그럼에도 이 분야에 진정성이 있다면 일단 자동차 관련 공부를 하되, 계속해서 실전 경험을 쌓으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차근차근 차에 대한 이해도 높아질 거고 올드 카나 차량 튜닝, 개조 같은 난도 높은 영역에까지 도전해 볼 수 있겠죠.
이 일에 대한 전망은 어떻게 보세요?
글쎄요. 단언하긴 좀 그렇지만 전망이 아주 좋다고 볼 순 없을 것 같아요. 차량 커스터마이징에 대한 의뢰 자체가 줄어들 게 확실하니까요. 휘발유나 디젤 차량들이 전기차, 수소차로 대체되는 시대가 왔잖아요. 지금은 과도기지만 친환경 차들이 자리를 잡으면 내연 기관 차량들은 운행 자체가 어려워질 거예요. 그렇다고 전기차나 수소차를 튜닝 하진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 수년간 트레이닝이 필요한 이 분야에 뛰어들라고 선뜻 말하긴 조심스러워요. 하지만 올드 카를 아끼고 향유하는 문화 자체가 소수일지언정 금방 사라지진 않을 거예요. 외려 희소하기 때문에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라면 경쟁력이 있겠죠.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성취 같은 게 있을까요?
네, 있어요. 한국에도 자동차 커스터마이저가 있다는 걸 꼭 알리고 싶어요. 저는 모든 도전이나 성취의 원동력이 거의 자존심에 있는데, 사실 이렇게까지 깊게 발을 담근 건 일본의 한 카 마스터 때문이기도 하거든요. 일본에 차를 배우러 갔을 때 만난 장인인데 한국 사람이 어떻게 이런 데 관심을 갖느냐는 식으로 비웃길래 자존심이 확 상했죠. 오죽하면 요코하마에서 1년에 한 번 열리는 로라이더 쇼에 참가해 꼭 저 양반 옆에다 부스를 열겠다는 꿈을 꿨겠어요(웃음). 코로나19로 행사가 열리지 않아 참가하지 못해 그게 좀 아쉽네요. 한편으로는 어릴 적 제가 그랬듯 사람들에게 차가 이렇게까지 아름답고 화려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예쁜 건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니까. 지금 돈 버는 족족 올드 카를 사들이고 있는데 남들이 볼 땐 왜 저러나 싶을 수 있지만 저로서는 비싼 도화지를 사는 셈이에요. 언젠가 그렇게 모은 차들을 멋지게 작업해 짜잔 하고 공개할 날을 그려보거든요. 그날을 상상하면 그냥 기분이 좋고 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