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항공 사진가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많이 떠올린 질문
Q. 내가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사진을 찍고 영상을 만든다는 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 무언가’가 있다는 의미다. 10년 넘게 드론으로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뭘 보여줄 수 있을지 정답은 찾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리 고민한들 거기에서 그친다면 남는 건 없다. 그 시간에 새로운 곳을 직접 찾아 나서고 다른 사람들이 1장 찍을 때 똑같은 공간을 100장 이상 찍으며 더 나은 이미지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것. 스스로 내린 대답이다.
일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자만하지 않는 것.
많은 이들이 사진을 찍지만 항공 사진은 낯설어요. 항공 사진가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요?
항공 사진은 비행기나 열기구, 패러글라이딩 등 공중을 나는 물체를 통해 찍은 모든 사진을 일컬어요. 저는 드론을 활용해 항공 사진을 찍고 있고요. 드론의 등장은 기존 촬영 수단이 지닌 접근성의 제약을 낮추긴 했지만 여전히 높은 비용과 까다로운 허가 절차 때문에 진입 장벽이 높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그런데 사실은 항공 사진과 영상은 우리 주변에 늘 함께하고 있어요. TV를 유심히 보시면 알 수 있어요. 자연재해나 사건 사고 현장은 물론이고 광고, 드라마,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의 많은 장면이 항공 촬영으로 만들어져요.
오늘 새벽에도 울진에 촬영을 다녀오셨다고요.
지난밤에 울진에서 산불이 났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달려갔어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해요. 갑자기 사건 사고가 터지면 바로 달려가죠. 그곳이 어디든지 일단 길을 나서려고 해요. 가다가 우연히 색다른 공간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거든요. 그런 장소가 또 자산이 돼요. 오늘 인터뷰하러 오는 길에도 포장도로 쪽에 멋있는 공간이 있더라고요. 화성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인터뷰 끝나고 잠깐 가보려고요. 그래서 제 차는 늘 모래 먼지로 뒤덮여 있고, 바퀴는 진흙으로 둘러싸여 있어요.
이런 사건 사고나 재난 현장 촬영은 언론사의 요청으로 진행하는 건가요?
아니요. 제 SNS가 창구 역할을 해요. 현장을 찾아가 드론을 띄우고 사진이나 영상을 찍은 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면 그걸 본 언론사로부터 연락이 오는 방식이죠. 지상파 방송 3사는 물론이고 종합 편성 채널, 케이블 채널 등에서도 SNS로 연락을 줘요. 메이저 신문사 1면에 제가 찍은 사진이 몇 번 쓰인 적이 있는데 신문사도 이 같은 방식으로 연락을 해 와요. 그게 인연이 되어 ‘혹시 배추 캐는 영상 있나요?’ 같이 원하는 영상을 요청하기도 하고요.
얼마 전에는 광고 촬영을 하셨는데, 이런 작업을 의뢰하는 곳은 주로 기업인가요?
네. 그런데 앞선 촬영과 다른 게 있다면 기업의 일은 요구하는 바가 명확해요. 이미 콘티가 모두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항공 사진이 필요할 때 연락이 오는 방식이에요. 그러면 저는 콘티를 보고 그에 맞는 사진을 촬영 가능한지 판단한 다음 더 나은 방향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는데, 일반적으로 일주일 정도 준비해요. 의견 조율하고, 장소 물색하고, 드론 장비 등을 재정비하는 시간으로 할애하죠.
일을 의뢰받았을 때 가장 먼저 고민하는 건 무엇인가요?
드론 촬영을 스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그렇지 않아요. 카메라 조작법을 안다고 모두가 사진작가가 될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요. 오히려 새로운 공간과 구도로 찍고 싶어서 스스로 고민하게 돼요. 이런 노력 덕분인지 ‘내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찍고 있진 않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감사하게 그걸 알아주시는 것 같고요.
이 점이 다른 항공 사진가와 차별되는 포인트일까요?
힘들고 고생하는 촬영을 하는 걸 좋아해요. 남들이 들으면 이상하다고 하는데, 진짜 속된 말로 ‘개고생’한 촬영 후에는 ‘레벨 업’한 느낌이 들어요. 드론을 10년째 날리고 있는데 이 마음은 변치 않아요. 드론 촬영에서는 ‘이만큼만 하면 됐어’가 있을 수 없어요. 새로운 현장, 새로운 상황의 연속이거든요. 그 점이 늘 짜릿해요. 항공 촬영은 저에게 항상 자극을 주고 긴장하게 만들어요. 내 한계를 깨부수고 확장하게 해줘요.
고생을 사서 하게끔 만드는 항공 사진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내 눈높이를 넘어 한 번도 본 적 없는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에요. 땅에서 봤을 때는 그저 지저분하고 어지럽게 보이던 피사체들이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오히려 더욱 재미있는 패턴으로 생각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거든요. 예를 들면 직접 마주했을 때는 그저 공사장인데 드론을 띄워 하늘에서 바라보면 구조적인 미장센을 만들어내며 정돈된 느낌을 받아요. 실제로 바라보는 세상 너머의 또 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일, 이건 항공 사진만이 줄 수 있는 유일한 매력이에요.
당연히 사진을 전공했을 줄 알았는데 음악을 전공했다고 해서 무척 놀랐어요.
네 살 때부터 음악을 시작했어요. 영화음악 작곡 쪽으로 나가고 싶었는데 현실은 생각보다 더 녹록하지 않더라고요. 그만두기로 결심한 날 집에 있던 악기, 건반까지 팔아버렸어요. 그러고 나서 취미로 하던 사진에 더 몰입하게 되었고요. 사실 사진으로 무언가를 해봐야겠다는 마음은 없었어요. 남들과 다른 게 있다면 어렸을 때부터 기계를 무척 좋아했다는 점? 스무 살 때부터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매일 사진을 찍었어요. 공부를 따로 한 적은 없지만 그렇게 찍어왔던 거죠.
인스타그램 해시태그에도 써 있더라고요. ‘#백보다기계’라고.
어렸을 적부터 기계를 다루는 데는 거침이 없었어요. 친오빠와 열두 살 차이가 나는데 오빠 방에 있는 다양한 로봇, 피겨, 키보드 등을 문틈 사이로 구경하는 게 제일 큰 재미였어요. 커가면서 카메라는 물론이고 콘솔 게임기, VR 등 새로 나오는 기계가 있으면 알아보고, 직접 작동해 보고 싶은 기계가 있으면 거칠 것 없이 샀고요. 차라리 백을 좋아했으면 돈이 이렇게까지 들진 않았을 거예요(웃음). 기계는 매년 업그레이드되고 제품 회사도 다양해서 새로운 스펙이 출시될 때마다 사곤 했죠.
수많은 기계 중에서도 드론에 빠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콘솔 게임기도 엄청 좋아했는데 그 안에 내장된 헬기를 운전하는 게임을 유독 좋아했어요. 처음으로 드론을 운전해 보는데 콘솔 게임에서 받았던 손맛이 느껴지는 거예요. 심지어 가상 공간이 아니라 실제 카메라로 원하는 장면을 촬영까지 할 수 있으니 더 재미있는 거죠.
드론 촬영을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나요?
드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이 무척 궁금해졌어요. 취미 수준이었기 때문에 감탄하며 바라보는 수준의 항공 사진까지는 찍을 수 없었거든요. 드론을 더 배우고 싶은 마음에 한 드론 행사장에 갔는데, 우리나라 1호 항공 사진가인 우태하 선생님을 만나게 됐어요. 2년 넘게 선생님이 촬영하는 곳을 따라다니며 혼나면서 혹독하게 배웠어요. 그때 스승님께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결국 남은 사람은 저밖에 없더라고요.
끝까지 따라다닐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나요?
드론도 운전하려면 자격증이 필요한데,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운전면허와 다를 바 없어요. 취미가 아닌 그 이상의 역량을 갖추려면 배워야 했고, 하나에 빠지면 엄청 몰두하는 타입이라 드론 외에 모든 건 뒷전이었어요. 사실 멋모를 땐 ‘나도 드론 날릴 줄 아는데’라는 생각도 했고, 나가는 게 귀찮기도 했지만 현장에서 직접 보고 배우는 걸 놓칠 수 없었어요. 드론은 연습이란 게 없어요. 실수하면 바로 인명 사고로 이어져요. 휴대폰이나 카메라로 찍는 건 실수해도 누군가 다치는 경우가 없잖아요. 반면에 드론은 조심해야 할 게 정말 많거든요.
스승님 밑에서 가장 크게 배운 태도는 무엇인가요?
드론에는 전문가가 있을 수 없다는 점. 초보자처럼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점. 이 마인드셋을 가장 크게 배웠어요. 현장은 긴장하고 진지해야 하는 곳이에요. 내가 한순간만 자만해도 현장과 거기 있는 사람들 모두 위험해질 수밖에 없거든요.
개인 프로젝트로 ‘드론 셀피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드론 촬영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나만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거예요. 그저 풍경 사진만 찍는 것보다는 사람을 통해 더 풍부한 이야기를 전해 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모델을 구해서 함께 다닐 수 없고 장면에 맞춰 인원을 구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내가 모델이 되어 좋아하는 공간을 담자는 게 시작이었어요.
어떤 주제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나요?
예전에는 해외의 멋진 장소들을 부러워했어요. 거기 살고 있으면 정말 잘 담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사실 의미 없는 상상이잖아요? 우리나라를 더 잘 담아내는 데 집중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게 됐고, 이를 항공 사진으로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선택한 곳이 농촌이에요. 그래서 농촌 전역을 돌아다니며 촬영하고 있어요. 우리나라가 작지만 지역마다 색깔이 달라요. 흙에 따라, 수박·고구마·감자 등 농작물에 따라 하늘에서 보이는 그림이 다채로워요.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촬영 후에는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새벽에도 소통하는 모습에 놀랐어요. 매번 이야기를 전하려는 이유는 뭔가요?
다양한 분들이 제게 드론이나 촬영과 관련한 질문을 하세요. 영상과 사진을 보며 대리 만족한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주기도 하고요. 그들과 소통하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날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느낄 때 그 어떤 순간보다 힘을 얻어요. 우리가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며 위로받을 때가 있잖아요. 내 사진과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그렇게 다가갈 수 있다면 좋겠어요.
항공 사진가의 전망은 어떻게 바라보세요?
알게 모르게 드론 영상과 사진을 많이 볼 수 있어요. 아직까지도 드론이 무척 비싸고, 시스템상으로 허가를 받는 절차가 복잡해서 소수의 취미로 여겨지고 있지만 점차 대중화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드론 촬영 인력도 많이 필요로 할 거고요. 단, 한 번 실수로 직업 생명이 끝날 수 있다는 점이 이 직업의 현실이에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정말 위험한 현장이거든요. 거기에다 모빌리티 쪽은 이미 2025년까지 드론 택시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을 정도라 더욱 빠르게 발전할 거예요. 촬영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까지 더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일임은 명백합니다.
항공 사진가를 꿈꾸거나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줄 수 있을까요?
작은 치킨집, 커피숍을 해도 시장 조사와 홍보는 물론이고 더 나은 맛을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처럼 드론 촬영도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이 직업은 드론 자격증만 따면 바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항공 사진가로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2년 넘게 촬영장을 따라다니며 스스로 확신을 갖기 위해 투자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당시에는 돈도 벌지 못했고 그 기간도 길었어요. 드론 가격 또한 만만치 않아서 스스로 적자 인생이라고 부르곤 했고요. 그러나 이러한 투자가 내 성장에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건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자만하지 않고 투자하는 시간을 가져야 해요. 그게 돈이 될 수도 있고, 시간이 될 수도 있어요. 뭐가 됐든 스스로 확신할 때까지 갈고닦는 시간을 꼭 가졌으면 좋겠어요.
적자 인생이라고 했지만 돈 벌면 결국 또 드론 사실 거죠?
그럼요. 돈을 벌고 싶은 이유는 원하는 사진을 찍기 위함이에요. 상상했던 작업들을 보여주고 싶어요. 가장 부러운 사람이 항공 사진가로 유명한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Yann Arthus-Bertrand)이에요. 이 정도로 유명하면 이름 자체가 공문이에요(웃음). 그 앞에서는 수많은 제약이 없어져요. 절대 찍을 수 없는 곳인데 이 사람이기에 허락해 주고, 초청받는 모습이 너무 배가 아프고 부러워요. 그래서 저도 항공 사진가로서 대명사가 되고 싶어요. 찍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찍는 그 날까지 쉬지 않고 계속 찍어야 하는 이유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