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팀장이 되었다고요.
10년 동안 실무자로 일을 하다가 갑자기 팀장이 되었어요. 여태 실무 스킬을 쌓아왔는데, 새로운 역할의 스킬을 0부터 새로 쌓아야 한다니 막연했어요. 이런 고민을 이전 팀장님에게 털어놓으니, “지금까지 해온 역할을 확장하는 개념이라고 관점만 바꾸면 됩니다. 잘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조언하더라고요. 당시에는 그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럼에도 저를 믿어주는 말에 시도해 볼 수 있겠다는 힘이 나더라고요.
팀장 역할 중 가장 어려운 게 무엇이었나요?
실무자일 때는 프로젝트의 시작과 끝, 내 역할 범위가 명확했는데, 팀장은 팀에서 일어나는 모든 프로젝트를 살펴야 하잖아요. 몸은 하나인데 일의 범위가 늘어나니 전처럼 모든 프로젝트에 100% 몰입하기 어려웠어요.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죠. 프로젝트의 실무자인 팀원들을 믿고 일을 맡기는 게 내 역할이란 걸 경험을 통해 깨달았어요. 조직이나 비즈니스의 성장 단계에 따라 팀장이 개입해야 할 범위나 역할도 다르기에,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판단력도 중요하단 걸 알게 되었죠.
그런 걸 깨닫게 되기까지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겠어요.
아무리 신입 팀장이라도 팀을 책임지는 역할이기에 이미 ‘팀장’이라는 직급에는 기대치가 있어요.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역할을 잘하고 싶은 마음에 다른 팀장들을 관찰하고, 만나서 질문하기도 했죠. 그러다가 스스로 매일매일 시도해 보며 느낀 것을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그게 ‘팀장 일기’였어요. 하루에도 느끼고 배우는 점이 많다 보니 1년 만에 노트 두 권을 빼곡하게 채웠죠.
하루에 정말 다양한 일을 하잖아요. 팀장 일기에는 무엇을 기록했나요?
처음에는 회사에서 해야 하는 ‘투 두 리스트’를 적는 방식으로 기록을 했는데요. 기록을 통한 회고라면 그보다는 자신이 성장하고 싶은 방향과 닿아 있는 업무에 초점을 맞춰 기록하는 게 좋아요. 이를 위해 가장 먼저 ‘나는 어떤 팀장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했어요. 저는 팀장으로서 리더십을 키우는 관점과 방법에 집중했어요.
한 일을 돌아볼 때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나요?
‘내가 잘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액션 아이템(Action Items)은 무엇인가?’ 이 세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다 보면 무엇을 기록해야 할지 알 수 있어요. 잘한 일도 기록해 나만의 노하우를 축적하기도 하지만, 실수를 통해서도 배울 게 많아요.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도 꼭 고민해 보고,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실행에 옮겨요.
기록을 통한 회고가 실제로 팀장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었나요?
전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하소연을 많이 했어요. 감정적으로 위안은 받았지만 일시적이었죠. 팀장 일기를 쓰면서 업무에서 부딪힌 문제를 명확하게 보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고민하게 되었어요. 팀장에게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한도 있고, 함께 해결할 팀도 있으니 실행에 옮길 수 있잖아요.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감정을 토로하기보단 구체적인 해결책을 궁리하고 시도하며 문제를 풀어가는 방향으로 바뀌었어요. 꼭 팀장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었거나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 적응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업무를 기록하고 회고하기를 권하고 싶어요. 훨씬 주체적으로 일하게 되어요.
회고의 장점을 팀원들과도 나누고 있나요?
큰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거나 분기마다 팀원들과 함께 업무 회고를 해요. 각자 쓴 것을 돌려 보며, 성장한 부분과 새롭게 시도할 수 있는 부분을 말하는데요. 이런 활동이 결국 우리가 같은 방향을 보고 맞춰갈 수 있는 데 도움을 주어요. 팀장으로서도 이런 회고 시간을 통해 팀원 개개인에게 어떤 역할과 기회를 주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죠.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도 부족한데, 매일 기록을 하기 쉽지 않아요.
가장 쉬운 방법은 업무 캘린더에 주기적인 회고 시간을 만들어두는 거예요. 예를 들어 금요일 점심시간이나 퇴근 전 30분 동안은 나와의 일정을 만들어두는 거죠. 또 기록을 시작하기 전 마음에 쏙 드는 노트, 펜을 마련하거나 스마트폰 메모장에 ‘회고’ 폴더를 하나 만들어보세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기록을 남기고 싶게 만드는 나만의 도구가 있는 게 동력이 되어줄 거예요. 저도 팀장이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새로운 마음을 담을 하드커버 노트를 구비하는 일이었어요.
병아리 팀장을 벗어났는데요. 요즘은 어떤 기록을 하고 있나요?
팀장 역할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어떤 업무를 해야 하나를 고민했다면, 팀원과 조직에 필요한 팀장 역할은 무엇일까로 이어졌고, 동시에 나만의 고유한 팀장 스타일을 찾는 고민을 했죠. 이제는 어떤 팀과 조직이 되어야 할지를 함께 고민할 차례예요. 유의미한 비즈니스 결과와 팀을 만드는 게 제가 해야 할 일이기에, 기록도 여기에 초점을 맞출 거예요.
Interviewee 오초이
컬리, 에잇퍼센트 등 스타트업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현재 IT 회사에서 UX팀 팀장을 맡고 있다. 팀장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맡으며 배운 소프트 스킬을 1년 동안 기록했다. 이를 엮어 <팀장일기: 알에서 깨어난 병아리 팀장의 회고록>를 펴냈다. 일하고 싶은 조직 문화에 관심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