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도 신입 사원일 때 퇴근 시간에 남아 있는 일들을 보며 한숨을 내쉰 적이 있나요? 제시간에 퇴근하는 선배를 보면서 부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사실 그때도 야근을 많이 하진 않았어. ‘내가 다 하지 못할 일을 계속 주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긴 했지만, 낯선 업무이다 보니까 더 그렇게 느꼈던 것 같아. 물론 버거울 때도 있었지만 그때도 무슨 업무를 빨리 해야 하고, 어떤 업무가 중요한지 내 선에서 우선순위를 세워보면서 감을 익히려 했던 것 같아. 또 한편으론 내가 허겁지겁 일을 처리하고 있을 동안,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급하지 않은 일은 선배나 동료가 백업해 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선배는 업무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하는 편인가요? 순위를 따지는 기준이 있나요?
나는 매일 아침 출근해서 포스트잇에 오늘 할 일을 적고 숫자를 매기고 있어. ‘내가 오늘 할 일은 00개다’ 이런 식으로. 여기서 핵심은 이 포스트잇을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는 것! 노트는 커버를 덮으면 끝이지만, 포스트잇은 항상 내 시야에 있으니까 끝내지 못한 일이 있으면 까먹지 않고 여유가 생기는 대로 처리할 수 있어. 또 끝낸 업무들은 바로바로 완료 표시를 하는 것도 중요해. 사소하지만 여기서 얻는 성취감이 크거든.
일일 업무를 포스트잇에 적는다면, 주간이나 월간 업무는 어디에 적나요?
주간과 월간 업무는 모두 탁상 달력에 적는 편이야. 목록을 적는 순서도 중요한 업무대로 적으면 좋겠지만, 일의 중요도가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 또 탁상 달력이 워낙 칸이 작아 표기할 수 있는 내용이 많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중요한 일만 간추려서 적는 편이야. 예를 들어 모레가 중요한 보고 날이라고 하면, 보고에 필요한 데이터는 내일까지 다 뽑아야 하잖아. 그러면 달력에는 모레가 보고 날이라는 것만 적고, 내가 정한 스케줄, 그러니까 내일까지 해야 하는 데이터 추출 업무는 매일 포스트잇에 적는 거지.
포스트잇을 붙이고 난 다음은요?
메일 회신이나 최신 뉴스 및 칼럼을 찾아보는 업무처럼 짧은 시간이 걸리는 간단한 업무를 먼저 해. 특히 메일 회신 업무는 고민이 길게 필요하지 않거나 내가 아는 걸 단지 설명해 주면 되기 때문에 가장 먼저 끝내려고 하지. 답장을 기다리는 상대방 입장에서도 간단한 메일 한 통 받으려고 5~6시간을 기다리는 건 굉장히 지치는 일이거든. 간단한 업무를 얼추 끝냈으면 그다음으로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일을 하는데, 중요한 일을 할 때 머리가 굳어서 전환이 필요할 때나 누군가의 컨펌을 기다리는 상태에선 시간 틈이 생기잖아. 그땐 또 단순 반복적인 업무를 해. 중요한 일을 처리하는 틈틈이 단순한 일을 집어넣는 편이야.
그럼 직속 상사가 시킨 일을 하고 있는데, 팀장님이 일을 시키는 경우엔 무슨 일부터 해야 할까요?
그럴 경우엔 우선 직속 상사와 이야기를 나눠봐야 해. 회사 내 관계를 잘 생각해 보면 좋은데, 팀장이 보기에 직속 상사와 나는 한 그룹으로 묶여 있거든. 팀장이 나에게 어떤 업무를 시켰다면 직속 상사에게도 같은 책임이 생기는 거야. 그러니까 직속 상사한테 가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지. 이때 멘트는 “저 지금 선배가 시킨 일을 하고 있는데, 팀장님이 일을 시켰어요. ‘우리’ 어떻게 하죠?” 이런 식으로. 이러면 직속 상사와 내가 한편으로 묶이면서 우리의 업무가 되는 거야.
직속 상사가 “왜 우리야? 네가 받은 일이지”라고 말한다면요? 이런 반응을 보일까 봐 말하기가 두렵기도 해요.
그러는 사람은 진짜 일 눈치가 없는 거지만… 물론 그런 반응이 나올 수 있어. 하지만 이런 부류의 상사는 네가 자신의 노동력인 거라, 본인이 원치 않는 데에 네가 사용되는 걸 싫어할 거야. 그러다 보니 ‘팀장님이 시킨 일을 하긴 해. 근데 시간은 조금만 들여’ 하는 식의 답을 내려주겠지. 그런데 이걸 아예 직속 상사와 공유하지 않으면 우리 팀의 정확한 상황과 의중을 알 수가 없어.
이럴 때도 난감해요. 만약 오늘까지 마쳐야 하는 일이 있는데 상사가 갑자기 오늘 마쳐야 할 다른 일을 또 주는 거죠. 기존 업무를 마무리 짓고 상사가 시킨 일을 하려면 업무 시간 내에 끝낼 자신이 없어요. 그렇다고 상사의 지시를 먼저 따르자니 야근 확정이고요.
내 일을 마감하기도 빠듯한데 새로운 일이 들어온다면 상사한테 꼬치꼬치 물어봐야 해. 일부러 나를 부추기려고 마감 기한을 오늘까지라고 말한 것일 수도 있거든. 지금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부터 시작해서 더 낱낱이 캐어 물으면 언제 이 일이 필요하고 얼마나 중요한 건지 대략 감이 와. 만약 정말 중요해서 오늘 시키는 일이라면 수긍해야지 어쩌겠어. 대신 ‘저 지금 이런 업무를 하고 있는데 최대한 주신 일까지 해보겠습니다’ 식의 말을 반드시 하는 게 중요해. 좋은 상사라면 명쾌한 답을 내려줄 수도 있거든. ‘그럼 이 건은 오늘 되는 데까지만 해서 줘’ 이렇게 말할 수도 있고.
저는 ‘오늘 되는 데까지만 해서 줘’라는 말을 들으면 이상한 승부욕이 발동해요. 다 끝내서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고 할까요. 그것도 완벽하게요!
신입 사원일 때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클 테니까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해. 작은 일도 완벽히 끝내고 싶어 하는 마음가짐도 훌륭하고. 그런데 중요한 건 인사이트가 부족한 시기에 완벽한 결과물을 내기 위해 애쓰다 보면 지난한 고민의 시간이 필요할 거거든. 그럴수록 스스럼없이 선배나 동료에게 질문을 많이 해야 해. 나도 신입 사원일 때 막막하거나 업무상 고민이 생기면 인사이트가 깊은 선배의 ‘짬’을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서 물어봤어. 그러면 선배의 답으로부터 확신을 얻고, 고민의 시간도 짧아졌거든. 연차가 쌓일수록 나 혼자 고민하지 말고 누구에게라도 터놓는 게 답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돼.
일하다 보면 상사의 컨펌을 기다리는 시간도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해요. 컨펌이 돌아오는 시간은 제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기도 하고요.
그래서 컨펌을 요청하는 타이밍이 중요한 거야. 마감 기한이 한참 남은 상황에서 컨펌을 요청하면, 상사로서는 마감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자잘한 일까지 시킬 수 있거든. 과도한 정보를 요구한다거나 ‘A’까지만 조사하면 되는데 ‘C~D’의 자료 조사까지 요청한다거나 하는 것들. 그래서 컨펌을 요청할 땐 이 모든 걸 고려해서 적절한 때를 찾아야 해. 마감 기한 내에서 일부러 늦게 내는 것도 방법이야. 그러면 컨펌을 요청하기 전까지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을 충분히 해둘 수가 있는 거지. 마감 기한 전에 냈으니 눈치 볼 일도 없을 거고.
선배는 컴퓨터 모니터 바탕화면이나 창도 참 깔끔한 편이에요.
나는 창을 모니터 크기에 최적화해 두고 조금이라도 클릭 수가 덜 드는 방법으로 배치해. 불필요한 브라우저는 바로바로 종료하고. 또 시작표시줄을 어떻게 세팅하는지도 중요한데, 나는 기본으로 업무에 필요한 날짜와 요일, 시간이 다 보이는 선에서 최소한의 간격으로 조절해 뒀어. 또 많은 프로그램을 나열할 필요 없이 같은 프로그램끼리 하나의 아이콘으로 묶을 수가 있는 기능을 사용하지. 이 기능을 활용해서 내가 자주 사용하는 프로그램별로 분류해 두는 것도 클릭 수를 줄이는 방법이야.
클릭 수를 줄이면 어떤 점이 좋나요?
원하는 파일을 빠르고 간편하게 찾을 수 있다 보니 한눈팔 틈이 없어. 업무를 진전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지. 반면 예외도 있어. 폴더 정리를 할 때는 일부러 클릭 수를 늘려야 하거든. 왜냐하면 업무를 하다 보면 파일 수가 점점 늘어나는데 일일이 파일명을 기억할 수 없잖아. 은근히 파일명을 기억해 내느라 들이는 스트레스도 상당하고. 그래서 클릭 수가 늘어나더라도 세세하게 폴더를 정리하는 게 중요해. 폴더를 정리하는 방식은 내가 생각하는 업무의 계위별로 폴더를 설정하고, 이에 맞는 세세한 하위 분류를 만들면 훨씬 편리해. 이때 가장 큰 계위의 폴더명 앞머리에는 꼭 숫자를 매기고!
신입 사원일 때부터 계위별로 폴더 정리를 해오셨던 거예요?
처음엔 업무 단위로 비슷한 성격의 파일끼리 분류했는데, 그러다 보니 점점 범위가 커지는 거야. 그러면 바탕화면에 놓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거든. 그러던 중에 동료들끼리 공유 폴더를 쓰기 시작하면서 폴더 정리에 계위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어. 보통 폴더의 정렬 기준이 ‘가나다순’이잖아. 예를 들어 내가 ‘가나’라는 폴더를 사용하다가 누군가 ‘가가’라는 폴더를 생성하면 내가 줄곧 쓰던 ‘가나’ 폴더가 한 줄 아래로 밀리게 돼. 그러면 내가 습관적으로 누르는 위치가 달라져서 혼돈이 생기거든. 별것 아닐 수 있어도 업무 흐름에는 영향을 끼쳐. 반면 생성한 폴더 순대로 앞머리에 숫자를 적으면 폴더의 자리는 고정이 되는 거지. 그럼 마우스를 잡은 손은 파일의 위치를 기억하게 될 테고, 단번에 원하는 파일을 찾을 수 있어. 여기서 더 나아가서 종료된 프로젝트나 더 이상 열어볼 일이 없는 폴더는 높은 숫자를 매겨서 아예 하단으로 옮겨버리면 더 좋겠지?
그럼 미처 다 완성하지 못했거나 작성 중인 문서들은 어디에 보관하나요?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임시 문서들은 ‘작업방’이라는 폴더에 몰아 넣어뒀어. 완성이 되면 정식 폴더로 옮기는 식이지. 그런데 작업방에 넣어둔 문서들도 주기적으로 삭제를 해줘야 해. 당장 편해서 거기에 놓으면 이게 완성본인지 아닌지 헷갈릴뿐더러 찾는 데 또 시간이 걸리거든. 자, 폴더 정리를 하려면 이것만 기억해. 폴더 안에는 대분류부터 소분류 순서로 정렬하여 계위를 만든다, 폴더명 앞에는 숫자를 매긴다, 임시 폴더를 두어 삭제 주기를 두고 관리한다. 이 세 가지만 체화되면 수년 전 파일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거야.
마지막으로 매일 시간 관리를 못 해 야근에 허덕이는 저에게 ‘당장 내일 이것부터 시작해 봐라’ 하고 추천해 줄 만한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일일 업무 목록부터 써봐. 그게 아까 말한 메모 방식일 필요는 없어. 일일 업무 목록이 필요한 이유는 내가 어느 정도의 업무량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야. 내 업무 수행 능력을 모르면 더욱 일의 순서를 깨닫기 어려울뿐더러 아마 열거식으로 업무를 쳐내게 될걸. 그리고 한 가지 더 있는데, 신입 사원일 때는 내가 스스로 어떤 업무를 싫어하고 부담스러워하는지를 알아가보는 게 좋아. 신입 때는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우리 회사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파악하기란 힘들거든. 거기에 시간을 쏟기보다는 나의 업무 스타일을 파악하는 게 더 현명하다고 말해 주고 싶어. 자신인 버거워하는 업무 종류를 파악하고, 나는 이 일을 빨리 해야 잘하는 사람인지, 시간을 갖고 해야 잘하는 사람인지를 알아가는 거지. 물론 상사의 업무 스타일, 프로젝트의 일정도 중요하지만, 결국 내가 해내야 하는 일이잖아. 그렇다면 나에게 이 일이 어떤 존재와 부담감으로 다가오는지를 귀 기울이고, 이를 바탕으로 업무 순서를 정해 보는 걸 추천해.
Interviewee 공여사들
유튜브 ‘공여사들’의 운영자. 사회 초년생 혹은 신입 사원이 겪는 수만 가지 애로 사항을 해결하기 위한 실무 노하우부터 직장 생활 팁 등의 영상을 올린다. 고구마 같은 상황 앞에서 경험치가 적어 작아지곤 했던 후배들이 다시는 똑같은 상황을 겪지 않도록 돕고 싶다는 천생 선배 마인드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