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접하게 된 계기
2019년에 일본 영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을 보고 난 뒤 차 문화에 관심이 생겼다. 그러다 어느 날 원 데이 클래스를 통해 차를 접했는데, 말차에 이어 녹차, 백차 등의 클래스를 매주 한 번씩 듣다 보니 어느새 4년이 흘렀다. 뭔가를 이토록 지속한 적은 처음이다.
넓고도 깊은 차의 세계
‘덕질’ 할 요소가 무궁무진하다. 우선 한평생 마셔도 시간이 모자랄 만큼 차 종류가 다양하다. 커피나 와인과 마찬가지로 찻잎의 품종, 수확 시기, 산지 등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 게다가 차를 즐기다 보면 자연스레 다구에도 빠져들게 된다. 도기 다구를 다루다 보니 옻칠 수선 기법인 ‘킨츠키’로까지 관심이 뻗어 나간다. 차 산지를 찾아 중국, 일본, 인도 등지를 여행하는 경우도 생긴다. 차의 세계는 파면 팔수록 흥미로운 일로 가득한 듯하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차 한 잔
일과를 모두 마친 저녁에 집에서 혼자 마시곤 한다. 차에도 커피처럼 카페인이 함유되어 있지만, 테아닌이나 GABA 같은 숙면에 도움 되는 성분도 함께 들어 있다. 여러 다구를 복잡하게 차리기보단 표일배를 사용해 마신다. 표일배는 본체와 우림통이 한 몸을 이룬 찻주전자로, 찻잎을 우린 뒤 뚜껑의 버튼을 누르면 찻물만 본체로 떨어진다. 설거지거리도 적어서 편리하다.
차 생활의 효용
차를 우리고 내리고 마시며 생각을 덜어내게 된다. 찻물이 뜨겁기 때문에 자칫 손을 델 수도 있어 딴생각을 할 수 없고, 손을 바삐 움직여야 하니 이 순간에만 집중하기 쉽다. 마치 명상을 하는 기분이 든다.
평소 자주 마시는 차
그날그날 끌리는 차를 마시는데, 유독 우롱차 계열에 자주 손이 간다. 종류가 다양하고, 향이 화려해서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편이라 초심자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햇차가 나오는 봄에는 녹차를 많이 마신다. 사실 차를 처음 접할 땐 백차나 황차와 같이 덜 익숙한 차를 고르곤 했다. 그간 맛있는 녹차를 만나보지 못한 탓이었다. 좋은 녹차를 정성 들여 우리니 감칠맛이 풍부하고 향기로웠다. 산뜻하면서도 구수해 한국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알고 보면 다채로운 우리 차
한국에도 다양한 종류의 전통차가 있다. 녹차 말고 유명한 건 홍차나 잭살차라고도 부르는 발효차다. 그중 청태전은 찻잎을 쪄서 동전(엽전) 모양으로 꾹꾹 눌러 만든 것으로, 귤피를 넣고 끓여 마시면 감기에 효과가 좋다. 중국에서 배워 오거나 자체 연구를 통해 만든 우롱차도 있다. 우리나라처럼 직접 찻잎을 키우고 가공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그런 면에서 차 애호가가 살기 좋은 곳이 아닐까.
즐거움을 알리는 일
2년 전부터 ‘윤팽주’라는 이름으로 차 이야기를 전하는 뉴스레터 〈더티레터〉를 발행하고 있다. 한 달에 두 번, 금요일 아침에 발송한다. 젊은 세대가 즐길 만한 차 문화도 소개하고, 개인적인 경험도 아카이빙 하고자 시작했다. 취미로 하고 있지만 콘텐츠의 퀄리티는 신경 쓴다. 매거진의 형식을 갖춰 추천 차는 물론이고 찻집, 차 산지, 차를 즐기는 사람들의 인터뷰 등 다채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 찻집, 다원, 도자기 공방 같은 차 관련 장소를 공유하는 테마 맵 〈더티맵〉도 운영 중이다. 직접 찾은 곳 외에도 제보 받은 곳을 비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한다.
차 생활에 입문하기
차에 관심이 생겼다면 일단 다양하게 마셔보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그 전에 차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면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가 통칭해 ‘차’라고 부르지만, 사실 식물의 이름이다. 품종과 가공 방식에 따라 녹차, 홍차, 보이차 등으로 분류된다. 그 밖에 국화차, 대추차, 보리차처럼 찻잎을 사용하지 않은 건 대용 차에 속한다.
일상에서 시작하는 다도
집에서 사용하는 다구로는 앞서 말한 표일배를 추천한다. 좀 더 격식을 차리고 싶다면 도기로 된 개완(蓋碗)을 들이는 것도 좋다. 한자가 지닌 뜻 그대로 ‘뚜껑 달린 그릇’을 말하는데, 다도의 멋과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다양한 차를 마시기에 적합하다. 사무실에서는 숙우, 거름망, 찻잔을 포함한 여행용 다구 세트를 쓰면 편리하다. 찻잔 대신 숙우 자체를 머그잔처럼 사용해 부담 없이 차를 마실 수 있다.
나의 차 취향 찾기
우선 친구와 함께 찻집을 찾아 서로 다른 차를 시켜 마셔보는 걸 추천한다. 우롱차와 홍차, 녹차와 백차처럼 두 종류 이상의 차를 동시에 마시면 색과 맛, 향이 확실히 비교된다. 다음 단계로 하나의 종류 안에서 두 가지 이상의 품종을 마셔본다. 같은 종류라도 산지나 수확 시기, 가공 방식에 따라 다른 맛이 느껴질 것이다. 이를 반복하다 보면 자신의 차 취향을 점점 세밀하게 알 수 있다.
마신 것을 기록하기
온·오프라인 상관없이 내게 편한 방식으로 마신 차에 대한 기록을 남겨보자. 차의 이름과 생산 연도, 생산지, 탕색도 중요하지만, 짧더라도 솔직한 감상을 구체적으로 적는 것이 핵심이다. 차 특유의 향과 맛을 익숙한 음식이나 물건에 빗대는 것도 좋다. ‘백차에서 오이 향이 난다’라든지, ‘오래된 보이차에서 번데기 국물 맛을 느꼈다’처럼 서툴더라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다 보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차를 오래 즐기는 법
느슨한 연대를 맺은 차 친구가 있을 때 더욱 꾸준하고 풍성한 차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 혼자서는 그 많은 차를 다 사기도, 마시기도 어렵다. 더욱이 한 가지 차도 여러 번 우려낼 수 있기 때문에 여럿이 나눠 마시기에 딱이다. 주변에 차를 즐기는 사람이 없다면 SNS 소셜링을 찾아 참가하거나 자신이 직접 소셜링을 열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