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부부가 함께 한옥에 살기로 결심했어요. 어떻게 한옥살이를 선택하게 되었나요?
김진호 이 집에 살기 전에는 원룸에서 혼자 자취를 했어요. 이사 가고 싶다고 생각만 하던 중 당시 함께 일을 하던 분의 집에 가게 되었죠. 마당을 포함해 56제곱미터(17평)쯤 되는 아주 작은 한옥이었는데, 이 정도 크기의 한옥이 있다면 나도 한번 살아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유년 시절을 시골의 한옥에서 보내 그에 대한 그리움도 있었고요.
굉장히 좁은 골목길 안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 집을 어떻게 찾았나요?
장보현 경복궁역 주변 부동산은 한옥 매물을 한두 채씩은 다 가지고 있어요. 저희는 운 좋게 처음 방문한 부동산에서 첫 집으로 이곳을 보여줬어요.
김진호 처음 이 집에 왔을 때는 내부가 지금과 달랐어요. 서까래와 기둥을 합판을 덧대 가려서 겉모습과 달리 집 안은 일반적인 주택 같았죠. 망설이니 부동산 주인이 이 정도 한옥은 매물이 잘 안 나온다며 적극 추천하셨어요. 이 동네에서 오래 부동산을 운영한 어르신이라 집의 원형을 다 알고 계셨던 거죠. 그 말을 믿고 이 집으로 결정했어요.
지금의 모습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장보현 반전세로 들어온 집이기 때문에 첫 2년은 그대로 살았어요. 그러다 문득 낮은 천장에 상부장까지 설치된 주방이 답답하게 느껴진 날이 있었어요. 무작정 주방 가구를 분리했죠. 당시 이케아가 국내에 막 들어온 때라 주방 가구를 우리 손으로 설치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오래된 벽에 붙어 있는 벽지부터 타일까지, 15겹 이상을 걷어낸 후에야 우리가 아는 한옥 기둥이 등장했어요.
김진호 주방을 고친 자신감으로 다음 해에는 천장을 가리고 있던 합판을 제거했어요. 그 전부터 천장에서 흙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조금씩 벽지가 부풀었거든요. ‘한옥 벌레’라고 불리는 흰개미가 나무를 갉아먹은 거예요. 거실 천장을 보면 서까래 2개가 사라지고 없어요.
위험했을 수도 있겠어요. 천장 수리는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하셨나요?
장보현 서까래 사이에 회칠(석회를 바르는 일)을 다시 해야 했는데, 둘이 직접 했어요. 시공 전문가라면 백색 시멘트로 회칠을 했을 텐데, 비전문가는 다루기 어려운 소재여서 저희는 핸디코트를 사용했어요. 어차피 계절에 따라 나무가 수축하고 팽창하며 균열이 생기기 때문에 살면서 계속 손봐야 하니 직접 하는 방법을 익혀두는 게 편리하거든요. 한옥에 살면 핸디코트는 필수품이에요.
수리할 때 정보는 주로 어디에서 찾아요?
장보현 직접 발품을 팔아야 해요. 집을 수리할 때는 을지로에 자리한 ‘영풍종합상사’를 자주 갔는데, 필요한 재료를 구입하면 사용 방법부터 추가로 필요한 도구까지 자세히 알려주세요. 을지로에는 없는 게 없고, 그곳의 직원들은 집 수리에 관해 모르는 게 없어요.
집을 고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장보현 15겹이 넘는 벽지와 타일을 제거하면서 이 집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생활을 상상하게 됐어요. 누군가는 이런 취향을 가졌고, 누군가는 요리를 참 자주 했구나, 누군가는 아이와 함께 살았구나 등등 90년이 넘는 시간이 벽에 켜켜이 쌓여 있던 거죠. 우리도 그중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이 즐거웠어요.
요즘은 한옥 내부를 현대식으로 바꾸는 경우도 많잖아요. 근데 이 집은 오히려 옛 모습에 집중했어요.
장보현 처음 이 집이 지어졌을 때의 생활 방식이 있잖아요. 그걸 억지로 고치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어요. 현대 생활에 맞게 한다면 차라리 부수고 새로 짓는 게 낫지 않을까요? 형식을 파괴하기보다 그 안에 내가 들어가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인테리어를 할 때도 이 공간의 생활에 잘 어우러지도록 좌식 위주로 꾸몄어요.
한옥에 어울리는 인테리어가 따로 있을까요?
김진호 저희도 처음에는 2m 정도 되는 테이블을 거실에 두고 입식 생활을 했어요. 그런데 한옥의 천장이 낮은 편이어서 다니기가 불편하게 느껴졌죠. 또 커다란 테이블 아래에 그림자가 깊고 넓게 생겨서 공간이 더 좁아 보였어요. 과감하게 좌식 테이블로 바꾸고 나니 공간에 여유가 생기며 서까래, 기둥 등을 더 자연스럽게 즐기게 되었어요.
관리는 어떻게 해주고 있나요?
장보현 가장 주기적으로 해야 할 일은 빗물받이 청소예요. 처마 아래에 달려 있는 빗물받이에 낙엽 같은 이물질이 쌓이면 빗물이 빠져나가지 못해 비가 샐 수도 있거든요. 한옥은 특히 습기에 약하기 때문에 방수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해요. 또 봄마다 목재의 갈라짐을 방지하기 위해 오일 먹이는 일도 해야 하고요. 벽과 천장에 핸디코트를 수시로 발라 수리하는 일도 꾸준히 해야 합니다.
올해엔 이 집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김진호 내부 공사의 마지막으로 주방 천장을 뜯어 서까래가 보이도록 했어요. 예전 주방은 복층 구조로 만들어 위층을 생활 공간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서까래에 벽지가 붙어 있었죠. 벽지를 뜯다 1936년에 나온 신문도 발견했어요. 교과서에 나올 법한 자료가 집에서 발견되어 신기했어요. 10년 넘는 시간 동안 야금야금 집을 고쳐서 이제 내부는 거의 다 고쳤어요.
한옥에서 산 지 10년이 되었는데, 삶이 변화한 부분도 있나요?
장보현 삶의 태도가 좀 더 여유로워졌어요. 한옥은 매일 관리를 해주어야 하는데, 이렇게 내 공간을 내 손으로 직접 가꾸며 이룬 작은 성취가 마음에 평안을 준 거죠. 이렇게 쌓인 경험이 우리에게 앞으로 더 나아갈 힘을 준 셈이에요.
김진호 한옥은 외부 세계와 맞닿아 있어서 자연 그리고 골목의 다른 주민들과 어울려 사는 걸 배웠어요. 1920년대부터 지어진 도심형 한옥은 집과 집이 접해 있고 골목을 공유하기 때문에 옆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다 알 수밖에 없거든요. 한번은 2주 정도 해외 출장으로 둘 다 집을 비운 적이 있는데, 그때 수도가 새는 걸 옆집이 발견해 주어 무사할 수 있었죠. 서울의 다른 동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느슨한 연대와 기분 좋은 간섭이 이곳엔 아직 남아 있어, 타인과 어울려 사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죠.
한옥살이를 시작해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장보현 한옥에서 꼭 살아보고 나서 결정해 보면 좋겠어요. 단열이 잘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겨울이면 무척 춥고, 수리할 곳도 한두 곳이 아니거든요. 또 공간 자체가 협소한 편이라 수납공간을 만들기도 쉽지 않아요. 서울에는 많지 않지만 지방에는 한옥의 원형을 그대로 남겨둔 스테이가 많아서 폭넓게 한옥에 대한 경험을 해본 뒤에 정말 살아도 괜찮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앞으로 이 집에서 어떤 일을 하고 싶나요?
김진호 2년 전에 이 집을 매매하면서 이 공간이 온전히 우리 것이 되었어요. 내부는 다 고쳤으니 앞으로는 마당의 창고와 화장실을 고치고 싶어요. 두 공간은 철거를 하고 새로 지어야 하기 때문에 시공 전문가가 필요해서 더욱 계획을 잘 세워야 할 것 같아요.
장보현 둘이 함께 이 집에 대한 책을 3권 펴냈어요. 내년에는 책 한 권을 더 썼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가꾼 한옥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더욱 깊이 있게 다루고 싶어요.
Interviewee 장보현, 김진호
장보현은 글을 쓰고 김진호는 사진을 찍는다. 두 사람은 함께 사는 집에서 책 〈지금 여기에 잘 살고 있습니다〉, 〈도시생활자의 식탁〉, 〈내추럴 페어링〉 등을 썼다. 공간과 생활을 가꾸는 일을 스스로를 다듬는 일이라 생각해 오늘도 부지런하게 집을 가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