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머무는 곳은 결국 집인데, 동네까지 좋아해야 하나요?
반드시 동네를 사랑할 필요는 없죠. 하지만 거꾸로 동네를 좋아하게 되면 어떤 장점이 있는지 생각해 볼까요?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어 힘든 상태로 퇴근하는 날은 유난히 집이 멀게 느껴지잖아요. 근데 만약 동네에 애정이 있으면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부터 안도감이 찾아올 거예요. 벌써 집에 다 온 것처럼요. 이런 안도감, 편안함을 동네에 들어서자마자 느끼는 일이 사소해 보이지만, 매일 이뤄지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삶의 만족감이 달라질 거예요.
8년 정도 후암동에서 살며 일하고 있어요.
도시공감협동조합 건축사무소는 2014년에 창업했고, 사무실을 2016년도에 구했어요. 동네, 마을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그에 걸맞은 동네를 찾고자 했죠. 서울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지인이 SNS에 올린 후암동 사진 한 장에 반해서 들어오게 되었어요. 첫눈에 반한 이유를 생각해 보니 ‘사람 사는 동네’처럼 보였기 때문인 듯해요.
무엇이 후암동을 사람 사는 동네처럼 보이게 하나요?
동네의 특성을 만드는 요소는 두 가지라 생각해요. 하나는 하드웨어인 건물, 즉 집이고, 또 다른 것은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인데요. 이 둘은 상호적으로 작용해요. 집의 형태가 다양할수록 다채로운 연령대, 계층이 살게 되겠죠. 후암동이 바로 그런 동네예요. 1인 가구를 위한 원룸형 빌라, 아이가 있는 가족을 위한 집, 오래된 단층 주택이나 전원주택 등 다양한 주거 공간이 존재해요. 20~30대 1인 가구가 주로 살아 낮에는 텅 비는 원룸촌과 달리 한낮에도 골목에 사람이 오가요.
후암주방, 후암거실, 후암별채 등 동네에서 공유 공간 8곳을 운영 중이에요.
2008년쯤 1인 가구가 전통적인 가정의 형태인 4인 가구의 수를 넘어섰어요. 건축가로서 청년을 위한 집을 고민했는데, 제가 집의 면적을 넓힐 수 있는 방법은 없잖아요. 그렇다면 집의 한 부분인 주방, 서재, 거실 등을 동네에 만들면 어떨까 싶었어요. 내 집은 작아도 동네에 있는 주방에서 친구들과 파티를 열고, 거실에선 큰 화면으로 영화를 보기도 하며 일상이 풍요로워지는 경험을 하는 거죠. 이런 공간을 이용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동네 자체가 매력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할 거예요.
공유 공간이 개인의 동네 생활에도 영향을 줄까요?
공유 공간 자체가 매력적이라기보단 카페나 식당 말고도 선택지가 있다는 점이 중요한 듯해요. 그런 의미로 카페나 식당도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판매하는 메뉴, 가격, 서비스 등이 각기 다른 곳이 존재해야 해요. 가령 우리 동네에 인스타그래머블한 카페가 많은 것도 좋지만, 퇴근 후 초췌한 모습으로 가기는 싫잖아요. 내 상황에 따라 갈 수 있는 장소가 다양하게 있다면 동네에 더 머물고 싶어질 거예요.
갈 수 있는 장소가 대체로 상업 공간이에요.
동네를 돌아다니며 잘 찾아보면 도서관이나 공원 같은 공공 공간이 있어요. 몇 년 전부터 각 지역에서 청년을 위한 공간도 많이 만들었고요. 요즘 SNS에 유행하는 감각적인 공간과는 거리가 있지만 슬리퍼 신고 가서 편하게 머무를 수 있죠. 비록 아직은 서울 중심으로 만들어져 아쉬움은 있지만 점차 이런 공간이 더 늘어날 거라고 생각해요.
사는 동네를 좋아하게 되려면 소속감을 느껴야 할 텐데, 이를 위해선 아는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아요.
최근에는 온오프라인에서 동네를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어요. 하지만 그런 커뮤니티에는 외향적인 성향의 분들이 많이 참여해요. 사실 그런 분들은 동네 외에도 지역 밖에서 일어나는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향이 있기에 어느 한 곳에서든 소속감을 느낄 거예요. 문제는 내향적인 성향의 분들이죠.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로 모임을 주도하거나 나가기 어려워요. 그런 제가 하는 방법은 동네를 알아보는 거였죠.
어떻게 하면 동네를 잘 알 수 있을까요?
동네의 역사 같은 걸 공부해야 한단 뜻은 아니에요. 상황에 따라 내가 갈 수 있는 장소를 더 많이 알아두는 거죠. 주말 아침에 커피 마실 곳, 퇴근 후 조용히 술 한잔이나 식사를 할 곳, 강아지와 함께 산책할 수 있는 길, 친구가 놀러 오면 소개하고 싶은 공간 등인데요. 이때 상점은 동네 주민이 운영하는 곳을 찾으면 좋아요. 은근히 그분들을 골목에서 자주 마주치게 될 테니까요. 그럴 땐 인사를 한번 건네보세요.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동네에 아는 사람이 생긴 기분이 들 거예요.
앞으로 동네에서 더 해보고 싶은 일이 있나요?
현재 운영 중인 공유 공간에서 함께 영화를 보거나 팀 단위로 선정해 후암주방을 무상으로 빌려주는 프로그램 등 개입을 최소화한 활동을 벌여왔어요. 내년에는 저희 공간에서 플리마켓을 열고 싶어요. 8개 공간이 붙어 있어 그곳에서 플리마켓을 열면 자연스럽게 후암동 골목 탐방을 하게 되죠. 또 카페인 후암연립을 제외하곤 예약제로 운영하다 보니 막상 주민들은 들어가보지 못했기도 해요. 플리마켓을 기회로 저희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듯해요. 지난해부터 생각만 해왔으니, 올해 잘 준비해서 내년에는 꼭 해보려고요.
Interviewee 이준형
공유 공간인 후암서재, 후암주방, 후암별채, 후암거실, 후암연립 등을 운영하는 도시공감협동조합 건축사무소를 이끌고 있다. 즐거운 동네 생활을 연구하고 실현시키는 그에게 이상적인 동네는 다양성이 존재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