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요즘 전 퇴사하고 쉬고 싶어요.
왜 퇴사를 하고 싶어? 이유에 따라 퇴사 후 이직을 할지 쉴지 정할 수 있어. 만약 일하는 환경을 바꿔서 해소가 될 만한 이유라면 지금 팀에서 변화를 주거나 이직을 준비하는 게 좋을 거야. 반면 정말 몸과 마음이 지쳐 더 이상 일을 못 하겠다는 마음이 들면 번아웃을 의심해 볼 수 있어.
번아웃인지 엄살인지 어떻게 구분을 할 수 있을까요?
일을 하기 싫다는 마음과 못 하겠다는 마음은 확연히 달라. 월급날이나 재미있는 프로젝트, 좋은 동료 등 외부적인 자극이 생겼을 때 다시 불꽃이 일어난다면 그건 번아웃이 아닐 거야. 내가 번아웃을 겪었을 때를 돌이켜보면, 내가 일을 할지 말지를 선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져. 몸과 마음의 건강이 완전히 무너져서 더 이상 트랙 위를 달릴 수 없는 선수가 돼버리는 거지. 그렇게 완전히 소진되기 전에 쉼을 가지면 좋겠어.
위험 신호가 오더라도 일을 그만두고 쉬는 게 불안해요.
감이 떨어질까 봐, 세상에서 잊힐까 봐, 이제까지 이뤄둔 한 줌의 성취마저 사라질까 봐 두렵지? 나도 정말 두려웠어. 번아웃이 올 만큼 일을 한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이 다 유심히 지켜보고 있어. 언젠가 회복해서 돌아왔을 때 다시 일할 기회가 찾아와. 허무맹랑한 보장을 하는 게 아니라, 번아웃으로 자신을 재정비하는 쉼의 시간인 ‘갭 이어’를 경험한 사람들을 인터뷰할 때 하나같이 들려준 이야기야. 물론 연차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경우가 많아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다면 고민해 볼 필요가 있어.
연차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이유로도 1년이나 쉴 수 없기도 해요. 한 달이나 일주일만 쉬어도 도움이 될까요?
시간의 양은 중요하지 않아. 갭 이어는 보통 학생이나 청년들이 자아 탐구를 위해 갖는 시간을 말하는데, 나는 이걸 일하는 사람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갭 이어는 무작정 쉬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을 재정비하는 데 목적이 있어. 한 달, 일주일, 주말 하루, 퇴근 후 저녁 시간을 활용해 나를 재정비할 수 있다면 그것도 갭 이어라고 생각해. 나는 그걸 ‘갭 모먼트’라고 부르고 있어.
선배는 갭 모먼트를 길게 가졌는데요. 그때 무엇을 했나요?
처음에는 퇴사를 선택하고 프리랜서로 일을 했고 결국 번아웃을 혹독하게 겪었지. 그때 갭 이어를 가져본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프로젝트를 했어. 그 후 적극적인 쉼의 방식을 택했어.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나를 돌아볼 수 있는 6가지 질문을 찾고, 이에 대한 답을 찾았지. 그 질문과 답을, 다큐멘터리 형태로 정리한 책인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에 썼어. 여태 쌓아온 커리어를 점검하고,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을 찾아 일과 삶의 영점을 다시 조절했지. 그 질문에 답을 내린 후 다시 회사로 돌아갔어. 하지만 전처럼 번아웃이 오지 않도록 꾸준히 시간을 내어 갭 모먼트를 가지고 있어. 갭 이어를 한 번 보냈다고 해서 내 삶을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니라, 완급 조절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
[김진영의 갭 이어를 도운 질문들]
생산하지 않고도 살 수 있을까?
꼭 한계를 넘어설 때까지 달려야 하는 걸까?
일과 삶이 분리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내가 가고 싶었던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
나는 어떤 환경에서 잘 자라는가?
일을 잘한다는 건 무엇일까?
갭 모먼트 때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요?
갭 이어 동안에는 6가지 질문으로 일 하는 삶 전체를 회고했다면, 일을 하는 요즘은 월마다 회고를 하고 있어. 이번 달, 일과 삶에 있어 중요했던 만남, 사건, 콘텐츠 등 카테고리별로 적은 뒤 이 중 내게 강렬했던 일, 좋았던 일, 아쉬웠던 일이 무엇인지 정리해 봐. 그 뒤에 이달의 목표를 다시 보고, 목표한 바를 기준으로 정말 이 일이 여전히 강렬한지, 좋은지, 아쉬운지를 되물어. 처음 생각했을 땐 아쉬웠던 일이 목표와 비교해 봤을 때 중요하지 않았던 일일 수도 있지. 예전에는 회고를 다음에 더 잘하기 위해서 한다고 생각했는데, 기록이 쌓일수록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면서 과거의 일도 긍정할 수 있게 되었어.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자주 하는 타입이라면 꼭 한번 해보기를 권해.
회고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요?
자신에게만은 솔직할 것. 때로는 내가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내 모습과 거리가 있는 답이 나올 수도 있어. 하지만 내 욕구, 욕망을 받아들이면 앞으로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명확해져. 예를 들어, 나는 내가 내적 동기로 움직이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회고를 할수록 타인의 평가에 예민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어. 그래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조직에서 일 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지. 혼자서 자신을 직면하는 게 어렵다면 전문적인 상담도 도움이 될 거야.
회고 말고 도움이 되는 활동이 있을까요?
일과 상관없는 휴식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해. 내 경우 과거에는 책, 방송, 영화 등 콘텐츠를 보는 게 쉬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한 활동이라 일의 연장선이었어. 그래서 찾은 게 목공이야. 지금도 토요일마다 4시간씩 목공을 하고 있어. 이처럼 일과 무관한 자신만의 휴식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해. 다른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쉬는지 알아보는 것도 도움이 될 거야.
일을 하면서 나를 위한 시간을 확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주일 계획표를 세울 때 나를 위한 휴식 시간을 가장 먼저 작성해. 목공, 운동, 회고 시간도 하나의 약속이라 생각하고 쉼도 하나의 일, 중요한 스케줄처럼 대하는 거야. 야근을 하더라도 운동 시간은 지킨 뒤 돌아와 일을 더 하는 거지. 이렇게 스케줄을 짤 때 먼저 내 한계를 알아야 해. 한계를 넘어 일을 한다면 당연히 나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겠지. 시간을 주체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도 자신의 한계를 알아야 해.
자신의 한계를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돌고 돌아 또 회고를 이야기할 수 밖에 없네(웃음). 매달 있었던 일과 목표를 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내 한계 지점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 올 하반기 내 목표는 한계 지점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정리하고 싶어. 그래서 지치지 않으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까지 일을 하는 거야. 나는 앞으로 평생 일하는 사람이고 싶어. 그러기 위해선 내 감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시간이 꼭 필요해. 나뿐만 아니라 일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그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
Interviewee 김진영
다큐멘터리 PD로 커리어를 시작해 콘텐츠 기획자, 브랜드 콘텐츠 전략가로 일을 확장했다. 일을 너무나도 사랑해 자신의 한계를 넘어 일을 하다 보니 어느 날 번아웃이 찾아왔다. 그때 자신처럼 번아웃을 겪은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70명의 사람을 모집해, 그중 19명을 전화 인터뷰하고, 그 안에서 6명을 대면 인터뷰한 후 ‘일하는 사람의 갭 이어’를 주제로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를 썼다. 지금도 자신의 삶에 완급 조절을 하며 일과 건강한 사랑을 하려 노력하고 있다.